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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기름값 전쟁' 치룬 정유4社, 이번엔 '과징금 전쟁'


공정위 '원적지관리는 시장분할 담합' vs 정유사 '억울해'

[정진호기자] 올 초 고유가 행진으로 정부와 '기름값 전쟁'을 벌였던 국내 정유 회사들이 주유소 원적지관리, 소위 '주유소 나눠먹기식 담합'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그야말로 최근 1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으로 활짝 웃었던 정유사들이 초상집 분위기다.

26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는 정유 4社(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가 시장 점유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소위 원적관리 원칙에 따라 주유소 확보경쟁을 제한하기로 담합한 행위(공정거래법 제19조 제1항 제4호 시장분할:거래상대방 제한 담합)에 대해 과징금 총 4천 348억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사진설명=지난 25일 오후 2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열린 '정유사 원적지관리 담합' 심의를 위한 전체 회의 모습.>

아울러 공정위는 시정조치와 함께 담합에 적극 가담한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3개사를 검찰에 고발조치키로 했다.

업체별 과징금 부과 내용은 SK계열이 1천379억7천500만원(SK주식회사 512억9천900만원, SK이노베이션 789억5천300만원, SK에너지 77억2천300만원), GS칼텍스 1천772억4천600만원, 현대오일뱅크 744억1천700만원, S-Oil 452억4천900만원 등이다.

이번 공정위의 정유사 과징금은 지난 2009년 액화석유가스(LPG) 업체들이 담합 행위로 받은 6천689억원의 과징금에 이어 역대 2번째로 많은 금액이다.

◆원적지 관리는 '담합'…왜?

공정위는 '원적지 관리'를 정유사들간 소위 시장분할을 통한 담합 행위라고 판단했다. 1년 가까이 이뤄진 이번 조사에서 무폴과 유폴 등에 상관없이 전체 자영주유소를 (정유사간)합의(담합)의 대상으로 본 셈이다.

'원적'은 주유소가 상표(폴 사인)를 변경하는 경우, 종전 상표의 정유사를 뜻하는 용어다. 가령 갑 주유소가 A정유사 상표로 영업을 시작했다면 A정유사는 갑 주유소의 원적사가 된다. 일종의 주유소 호적 개념과 같은 셈이다.

따라서 '원적관리'는 정유사들이 자기 계열주유소 또는 과거 자기 계열주유소였던 무폴 주요소에 대해 기득권을 서로 인정해 경쟁사의 동의없이 타사 원적 주유소를 임의적으로 유치하지 않는 영업 관행을 의미한다.

실제로 정유 4사들은 1993년 6대 도시 주유소 거리 철폐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시장점유울 확대를 위해 치열한 주유소 확보 경쟁(이른바 폴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치경쟁으로 자금 시설지원 증가와 공급가격 인하 압력 등으로 영업이익이 크게 저하되자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현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선에서 주유소 확보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적지 담합'에 이르렀다는 게 공정위 측의 판단이다.

공정위가 결정적인 담합으로 본 시점은 정유 업계의 지난 2000년 3월 부터다.

공정위는 당시 정유 4사 소매영업 팀장들이 여의도 모 일식집에서 열린 '석유제품 유통질서 확립대책반' 모임에서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원적관리 원칙'따라 원적사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타사 원적 주유소 확보 경쟁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는 모 업체 임직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공정위 시장감시국 신영선 국장은 "그동안 업계에서 관행과 소문으로만 무성한 원적지 관리의 실체를 이번에 1년여의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입증했다고 보면 된다"이라며 "업체들이 부인하고 있지만 2003년 당시 모임에서 업체간 기득권 인정과 상호 불가침 협정 등이 논의됐고 이것이 바로 명백한 담합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또 정유사들의 원적지 관리는 치밀하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타사 원적 주유소 거래 거절 ▲주유소 협의 교환(트레이드) ▲주고 받는 정산 등이 대표적이었다.

신영선 국장은 "주유소가 거래 정유사 변경을 요청하더라도 원적사의 포기각서 등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거래를 거절한다거나 불가피한 타사 주유소 유치(침탈) 등이 발생할 경우 서로 대응 유치를 협의, 양해하고 서로 주고 받는 정산도 이뤄졌다"고 언급했다.

합의실행 이후인 2000년부터 2008년 정유사들의 주유소 점유율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는 것도 공정위가 원적지 관리담합이 이뤄졌다고 판단한 이유다.

이 기간동안 정유사들의 주유소 점유율은 SK가 36%→35.3%, GS 26.5%→26.8%, 현대오일뱅크 20.9%→18.7%, S-Oil 13.2%→14.7% 등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신영선 국장은 "주유소 확보 경쟁제한은 석유제품의 주유소 공급가격 인하를 억제해 결국 소매가격(소비자가격) 인하도 억제했다"며 "특히 주유소의 정유사 선택기회를 봉쇄해 실거래 가격인하(할인)를 제한하게 됐다"고 했다.

◆정유사, "원적지관리가 담합? 피 흘린 '경쟁'의 결과" 반발

하지만 정유사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논리부터가 다르다. 원적지 관리가 정유 업계의 오랜 관행인 것은 맞지만, '합의(담합)'의 결과가 아니라 '경쟁'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들 정유사들은 "원적지 관리는 구조적으로 성립할 수 없으며 개인자영 주유소를 (정유사가)관리할 수 있다는 것은 오해다. 합의를 통해 성립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구조 탓에 이뤄진 구조"라고 항변했다.

결국 원적지 관리를 경쟁의 결과로 볼 것이냐, 아니면 담합의 결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인데 정유사들은 결코 의도적인 '담합이 아니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시장 플레이어가 수십개에 달하면 달라지겠지만 4개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엔 숫자(점유율 등)가 같아지게 되어 있다.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봐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번 조사결과에서 가장 낮은 과징금을 부여 받은 S-Oil은 "그동안 선발 3사와는 180도 다른 정책으로 행동해 왔다. 담합은 말도 안된다"며 "'정유 업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3사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펼치고 있다. 우리를 빼고는 경쟁을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독자적인 행동을 해왔다"고 토로했다.

현대오일뱅크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담합'이라니 참으로 참담하다. 제주도 카르텔을 깨고 2006년 SK, GS를 상대로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인 것도 바로 우리다."며 "2000년 3월 당시 모임에도 단순히 팀원급이 피동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모든 정황들이 (우리가)단합 의지가 없었다는 반증이다"고 억울해 했다.

◆향후 전망은?

현재 이들 정유사들은 각 사별로 과징금 부과액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행정소송 등 법적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담합'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와 S-Oil의 경우 후속 조치를 심각히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사들은 일단 과징금을 내고 법적 수단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의결서가 전달되는 데에만 2개월 정도가 소요되고 이후 대법원 판결까지 갈 경우 1∼2년 상당의 물리적 시간이 요구된다.

이래저래 연초부터 정부와 '기름값 전쟁'을 거친 정유사들이 이번엔 '과징금 전쟁'을 치루게 됐다.

정진호기자 jhj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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