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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묵]나로호, 아픔 털고 다시 날자


'과학 담당 2주차' 기자가 본 나로호 2차 발사

얼마 전 '춘향'을 기리는 전북 남원의 한 단체가 신작 영화 '방자전' 제작사를 방문해 상영 중지를 요구한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영화가 '지고지순한 순결의 춘향을 양다리 걸치는 요염한 여자로 묘사하는 등 춘향과 남원시의 이미지를 타락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있었든 없었든, 비범한 인물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 있다. 누구나 이순신 장군을 사랑하는 경상남도 통영에는 세병관(洗兵館)처럼 장군을 기리는 흔적들이 곳곳에 많다. 쿠바의 아바나(Habana)에는, 타지 사람이었지만 쿠바 혁명을 주도했던 체 게바라의 사진이 집집마다 걸려 있는 것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어느 횟집에는 '나로호실'이 있었고, 여관에는 나로호 1차 발사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나로호 성공 발사를 기원합니다 - OO식당', '나로호 발사, 고흥의 새로운 미래 - OO읍리우회' 같은 정겨운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6월 중에는 '제1회 고흥 우주청소년 트롯트 가요제'까지 열린다.

나로호가 그저 우주발사체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처럼 여겨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번엔 꼭 날아야 할텐디." 2차 발사가 연기됐을 때 어느 할머니는 기자에게 "그래서 언제 날아간댜"라며 안타까워했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로호를 하나의 생명체처럼 묘사하곤 한다. "나로호가 10일 우주로 향하는 재도전에 나선다" "나로호가 제대로 음속을 돌파하지 못하면…" "나로호의 재도전도 실패했지만 국민들이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사람이 우주로 쏘는 쇳덩이'라는 객체가 아닌, '우주를 향해 나는' 주체로 인격을 부여받은 것 같다.

인구 7만여명의 외딴 지방 도시가 나로호로 인해 우주 산업의 진원지가 됐다는 데서 오는 경제 효과와, 인지도 상승에 대한 기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흥 주민들에게는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부심과 사랑이 있었다.

준비 단계부터 기립이 '전기적 문제'로 지연되며 말썽을 일으켰다. 발사 3시간 전에는 뜬금없이 소화장치가 터져 희뿌연 소화액이 나로호 주변을 덮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는 통에 '준비해 둔' 기사를 써먹지 못했다며 투덜댔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나로호가 솟았다. 10일 오후였다.

러시아제 1단 로켓의 성난 화염이 뿜는 진동이 땅을 거쳐 두 다리를 통해 전달돼, 심장을 두드렸다. 나로호의 승천은 감동적이었다.

우주발사체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엄연한 과학의 영역이다. 하지만 나로호 발사에는 종교적 제의가 주는 엄숙함까지 있었다. 일단 쏜 뒤에 사람은 그것의 생사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고흥의 OO교회는 '나로호 성공 발사를 위한 기도회'를 열기까지 했으니.

결국 마저 날지 못하고 망망대해로 사라졌지만,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나로호를 보며, 나로호에 대한 고흥 주민들의, 언론의 의인화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로호가 단순히 우주로 쏘는 쇳덩이가 아닌 우주를 향한 꿈의 응집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로호의 실체는 모호하다. 33.5m의 길쭉한 쇳덩이인가, 러시아제 1단 로켓인가, 과학기술위성 2호인가.

4분의 3을 차지하는 1단 로켓은 발사 232초만에 떨어져나간다. 2단도 9분 만에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가닿아 과학기술위성 2호를 제궤도에 올려놓고 수명을 다하게 돼 있다. 우리가 보는 길쭉한 나로호는 완벽한 해체와 소멸이 존재 목표다.

나로호는 넓고 거친 우주를 동경하는 오랜 꿈이 모인 실체가 없는 덩어리다. 하늘과 우주를 향한 동경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다. '차세대 고부가가치 산업', '스페이스 클럽'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현실적 명목이다.

나로호 2차 발사 실패가 가슴아픈 이유는 우주를 향한 도전과 꿈이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밤낮 없이 성공 발사에 매진했던 연구원들의 아픔과, 멋지게 제 자리를 찾아가길 기대했을 고흥 주민들의 실망이 전해져 온다.

3차 발사가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언제일지 모른다. 당국이 현재 원인 규명에 들어갔다. '5천억원짜리 전시행정 폭죽쇼'라는 오명을 듣지 않기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실패 원인 및 책임의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직접 만든 1단 추진체로 우주를 향해 비상하게 되기를 바란다. 성공하는 날, 나로호가 고흥 주민뿐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마음 속에서 살아 숨쉬게 되리라 믿는다. 남원의 춘향처럼, 통영의 이순신처럼, 아바나의 게바라처럼.

◆ 나로호 2차 발사 직접 촬영 영상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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