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무자년 2008년. 올 한해는 격동의 해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10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탓에 한해 내내 대결과 파행으로 점철돼 '사상 최악의 정쟁'으로 얼룩진 해라고 평가할 만하다.
'경제 살리기'를 화두로 내건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압승,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이 승리하면서 10년만에 진보에서 보수로 명실상부한 권력교체가 이뤄졌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순항을 예고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인수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영어몰입교육 등 인수위가 내놓은 정책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고소영·강부자' 내각 비판이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내각 후보자 3명이 낙마하는 등 이명박 정부는 첫단추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4월 공천파동으로 여당은 깊은 내상을 입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급기야 이 대통령은 2번의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민심이반, 지지율 급락 등으로 이명박 정부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금강산 관광객 피습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경색됐고, 여기에 미국發 금융위기로 인한 국내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원구성 협상을 놓고 진통을 겪다 결국 80여일 만에 18대 국회가 열렸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터져나온 쌀직불금 문제는 新舊 정권을 뒤 흔드는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정부여당이 진보정권 10년 적폐 일소 차원에서 '우향우' 전략을 구사하며 정치권의 이념 갈등은 극에 달했다. 또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속에서 내년도 예산안은 졸속으로 처리됐다. 여당이 한미FTA를 단독 상정하면서 그 여파로 연말 정국은 한파에 휩싸여 있고, 내년도 정국도 시계제로의 상태다.
◆MB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고소영·강부자?…집권초부터 난맥상
이명박 대통령은 2월 25일 공식 출범에 앞서 새 정부 각료 후보자를 발표하면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Best Of Best)"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당시 소개했던 남주홍 통일, 박은경 환경,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낙마해야 했다.
장관 후보자 중 상당수가 수십억원대 재산을 가진 것으로 드러나 '강부자(강남 땅부자)'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또 청와대 참모진과 대통령직인수위도 이 대통령과 배경이 같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위주로 구성돼 '제 식구 챙기기'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정권 초반 여론은 급속히 등을 돌렸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증폭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 대통령의 용병술은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대선 공신인 김광원·홍문표·임인배 전 의원을 공기업 사장에 임명했고, '대리 경질' 논란을 부른 최중경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을 주 필리핀 대사로, 촛불집회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중수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내보냈다. 돌이켜 보면 출범 초 조각(組閣)은 이명박 정부의 결코 순탄치 못한 집권 1년차를 예고한 '전초전'이었다. 조각작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혼선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 이명박 정부의 도덕성과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했다.
◆'친이-친박' 공천파동, 내년 4월 재보선서 재연될까
지난 18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친이-친박간 계파 갈등으로 양측은 사선을 넘나들었다. 당시 '친박 대학살'로 점철된 공천 파동은 한나라당 친박계 인사들의 무소속 출마와 친박연대 탄생의 계기가 됐다.
이 과정에서 친박 무소속 연대와 친박연대는 18대 총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힘을 얻어 대거 당선됐고, 이후 이들의 복당 문제로 당 지도부·친이계와 친박계간 첨예한 대립이 시작됐다. 당시 강재섭 대표가 친박계 복당을 거부하자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향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며 일침과 함께 최후통첩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총선에서의 친이-친박 공천 갈등은 내년 재보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공천 주범'으로 지목된 이방오, 이재오, 정종복 전 의원이 4월 재보선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의 친형이 이상득 의원의 핵심측근인 정종복 전 의원이 경주에서 설욕을 벼르고 있으나 친박계 인사인 정수성씨가 정 전 의원과 같은 지역구에서 출마할 예정이다. 때문에 내년 4월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다시 한번 계파간 공철 갈등이 재연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촛불집회, 제2 촛불 살아날까
지난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면서 촛불집회는 시작됐다. 광우병 전염 우려가 있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척추 등 부위에 관계없이 수입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체결된 이 협상을 두고, 야당과 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광우병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는 인터넷과 PD수첩 등 공중파 방송을 통해 확산됐고, 지난 5월 다음 아고라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청계광장에서 첫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이후 한반도 대운하 등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불만이 확산되면서 100일 동안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로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집권 초기부터 최대 위기를 맞은 이명박 정부는 결국 미국과의 추가 협상을 통해 일정부분 양보를 얻어내면서 일단락 지었지만, 지금도 집시법 개정, 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 추진을 통해 촛불민심에 대한 경계를 여전히 감추지 않고 있다.
◆끊이지 않는 대운하 논란…2009년에도 논쟁 예고
지난 2007년 17대 대선과정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던 '한반도대운하' 논란은 2008년을 지나 2009년에도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6월 촛불파동 당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원치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정부 부처의 대운하팀도 해체하는 등 대운하를 폐기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언급 이후 청와대·정부측 인사들이 대운하 추진을 시사하는 발언을 이어왔다. 그때마다 이명박 정부가 물밑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發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지면서 정부여당은 건설 경기부양책으로 '4대강 살리기'를 위해 14조원 규모를 투입키로 했다.
이로 인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대운하 예고편'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있다. 여론이 확산되자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연일 '녹색뉴딜', '물길 살리기', '강주변 환경정비' 라면서 '대운하와 설계자체가 다르다'며 4대강 정비와 대운하의 연계성 차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야당은 이 대통령에게 대운하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내년 안동에서 4대강 살리기 첫 삽을 뜨기로 해 대운하 논란은 내년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악화일로 남북관계, 개성공단 멈춰설까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천명한 남북 상호주의에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남북관계는 지난 10년간의 진전이 모두 무위로 돌아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의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3000'에 반발한 북한이 연일 이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악화되던 남북관계는 금강산에서 박왕자씨 피살사건이 일어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등 악화일로를 걸었다.
더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 등에 대해 보수단체들이 북측으로 삐라를 보낸 것이 문제가 되면서 개성관광이 중단되고,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도 위기에 처하고 있어 남북관계가 중대한 기로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지리멸렬 진보, 대안 제시 성공할까
지난 대선에 이어 18대 총선 결과 진보라 칭할 수 있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의 세력은 크게 줄었다. 가히 진보의 위기라 칭할 수 있는 시기다.
보수세력인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의 의석을 합하면 개헌의석인 200석에 달하는 현실이지만, 현재 뚜렷한 대안마저 없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된 인사정책 이후 연이은 정책실패로 지지율이 낮아졌지만, 진보정당들은 반사이익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서는 정부 여당의 밀어붙이기 정책들에 최대한으로 연합해 각을 세우면서 정체성에 충실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국민을 감동하게 할 수 있느냐가 2010년 지방선거와 이후 정국에서 진보가 부활될 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용두사미 '쌀 직불금' 특위, 청문회 한번 못 열고 기한 만료
2008년 10월 성난 농심이 끓어올랐다. 가난한 농민에게 가야 할 쌀 직불금을 실제로 경작하지 않는 공무원과 지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착복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쌀 직불금을 불법 수령한 의혹이 있는 이들이 무려 20만명이고 이 중에는 고소득 전문가와 정치인, 공무원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농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결국 정치권은 국정조사를 통해 의혹을 파헤치고, 정책적 대안을 내놓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정부의 쌀 직불금 불법 수령 의혹자 명단 제출 미비와 쌀 직불금을 수령한 한나라당 김학용 의원의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의 무한 대결로 인해 청문회 한번 열어보지 못한 채 국정조사 특위가 시한을 넘기게 돼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美 대통령 오바마 당선, 미국의 흑색혁명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압도적인 차로 이기면서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로써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게 됐고, 민주당은 8년 만에 공화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게 됐다.
'변화와 통합'을 내세운 오바마의 승리는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 사회 전반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또 미국의 변화로 세계 정세는 큰 변화를 앞두게 됐다.
한편 국내 정치권에서는 오바마 당선을 아전인수 격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으로만 해석하는 등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 정치권의 연이은 오바마 줄대기 미국행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與 내년도 예산안 단독 처리…대규모 SOC로 경기부양
2009년 예산안이 여야 협상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여당인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내년도 정책 방향의 지표가 되는 예산안에서 정부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예산을 대규모 확충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정부여당이 마련한 이번 예산안은 한마디로 감세와 적자재정 증가로 인한 경기부양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야권은 부자감세, 경기부양 효과 미진 등을 문제로 제기하며 반대했지만 거대 여당의 단독 상정에 밀려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한편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 이후, 여야는 급속한 냉각기를 맞게 됐다. 이어 매년 예산안을 두고 벌어지는 여야의 갈등으로 인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임위화, 예산편성권한 국회 위임 등 각종 논란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與 한미FTA비준 단독 상정…해머·전기톱 등 등장 '초유사태'
한미FTA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는 2008년 연말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한나라당의 내년도 예산안 강행 처리 여파로 정국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도 여당은 '돌격'을 선언, 한미FTA비준 동의안을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원회에 단독 상정했다.
외통위 회의장을 점거한 한나라당은 민주당 등 야당의 회의장 진입을 봉쇄해 개회 2,3분만에 전격으로 상정한 것. 이 과정에서 회의장을 진입하기 위한 야당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여당측 당직자들은 정면으로 충돌, 고성과 막말을 비롯해 주먹질까지 오갔다.
급기야 국회 개원 사상 처음으로 해머와 전기톱이 동원됐고, 외통위 회의장 문이 박살이 나는 등 이른바 '전기톱 국회'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민주당 등 야당은 한나라당의 한미FTA 상정의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으며 무효임을 주장하는 권한쟁의 심판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 논란은 법적 분쟁으로 옮겨 붙고 있는 형국이다.
/아이뉴스24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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