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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우장춘, 과연 씨 없는 수박 최초 개발자!?


‘씨 없는 수박’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를 떠올릴 것이다. 1999년 부산시는 우장춘 박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동래구에 씨 없는 수박 모양을 한 우장춘기념관을 건립했다. 하지만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개발한 과학자는 우장춘 박사가 아니라, 일본 교토대의 기하라 히토시 박사다.

당시 과학적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언론사 기자들은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크게 부각시켰다. 이 일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우장춘 박사를 세계 최초로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사람으로 믿고 있다.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들지 않았지만 우장춘 박사는 그보다 더 중요한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기초 원리를 규명했다. 바로 우장춘 박사가 1935년 실험적으로 증명한 ‘종의 합성 이론’이다. 이 이론은 우장춘 박사의 가장 큰 업적으로 기하라 히토시 박사도 이 이론을 바탕으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종의 합성 이론’이란 무엇일까?

1936년 우장춘 박사는 세계 육종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한다. 바로 ‘배추 속(屬)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같은 종끼리만 교배가 가능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우장춘 박사는 종은 달라도 같은 속의 식물을 교배하면 전혀 새로운 식물을 만들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식물을 교잡해 만든 새로운 식물을 ‘우장춘 트라이앵글’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배추와 양배추 등 기본 종(배추속)을 교배하면 유채와 같은 새로운 식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배추(염색체수, n=10)와 양배추(염색체수, n=9)의 합성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유체(염색체수, n=19)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 과정을 유전학적으로 규명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장춘은 일본 동경제국대 농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 취직했다. 1924년에는 어머니의 소개로 고하루(小春)라는 일본 여인과 결혼했다. 그런데 고하루의 부모가 우장춘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에 반대하자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분의 소개로 고등학교 교사였던 스나가 고헤이의 양자가 됐다. 이로서 우장춘은 스나가 나가하루(須永長春)란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우장춘은 연구 논문을 발표할 때 이 ‘스나가’라는 성을 결코 쓰지 않았다. 일본어 논문에서는 禹長春으로, 영어 논문에는 Nagaharu U.로 표시했다.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이하자 이미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손꼽히던 우장춘 박사를 모시기 위한 ‘우장춘 박사 한국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평소 인생의 절반은 어머니 나라에서 나머지 절반은 아버진 나라에서 살고자 했던 우장춘 박사는 마침내 1950년 3월 8일 귀국했다. 그는 곧바로 부산 동래에 있는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일본인 아내와 2남 4녀의 자식이 있었지만 모두 일본에 두고 왔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1951년 우장춘 박사는 채소 종자를 생산하기 알맞은 땅을 찾아 제주도를 방문했다. 제주도는 기후가 온화하고 장마가 빨라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시가가 겹치니 좋은 종자를 생산하기 어려웠다. 대신 감귤 재배에는 적당했다. 이후 우장춘 박사의 권유로 제주도의 농업관계자와 농민에게 감귤 재배를 적극 권장했고, 제주도는 우리나라 최고의 감귤 생산지가 됐다.

또 우장춘 박사는 맛 좋고 병에 강한 배추와 무 품종을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됐던 강원도 감자의 품종을 개량해 세계적으로 맛 좋고 튼튼한 강원도 감자도 생산했다. 하지만 1959년 5월 원예시험장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마친 그는 병원으로 직행해야 했다. 평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십이지장 궤양’이란 진단을 받은 것이다.

3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병세가 악화되던 순간에도 그는 “벼를 직접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제자들이 동래 한국농업과학연구소에서 가져온 벼가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8월 7일 농림부 장관이 와서 문화포장을 수여하고 기념 메달을 우장춘 박사의 목에 걸어줬다. 8월 10일 그는 “이 벼! 끝을 보지 못하고 내가 죽어야 하다니”라는 말을 하면서 벼 연구의 새로운 결실을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숨을 거뒀다. (글 : 서금영 과학전문 기자)

/ *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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