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며칠전부터 군대가는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고별전을 마치고 입대를 앞두고 있는 '황제' 임요환의 '소회'는 입영전야의 평범한 청년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능을 앞두고 뒤늦게 게임에 빠져 입시를 망친 그는 99년 20살의 나이에 프로게이머로 데뷔했고 7년여만에 70만명의 팬 카페 회원을 거느린 '국민게이머'로 자리매김했다.
입시지옥을 벗어난 '청춘'들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며 즐길만한 시기에 모니터 앞에 앉아 하루 15시간씩 게임에 몰두하는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한 끝에 그 자신도 예기치 못한 부와 명성을 얻었다.
스스로 "많은 것을 잃었고 그 댓가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 이야기하듯 '절제'와 '희생'속에 얻은 것들을 '잠시' 놓아두고 가는 심경이 편치많은 않을 듯 하다.
회색 빛 청춘.... 게임에서 찾은 인생의 '비전'
뒤늦게 접한 스타크래프트로 입시를 '말아먹고' 재수생활 중에도 독서실이 아닌 PC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그의 스무 살 청춘은 '회색 빛' 그 자체였다고 한다.
게임이 좋아 계속 게임을 할 뿐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어떠한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을 때다. PC방에서 우연히 알게 된 소녀와 시작한 첫 사랑이 삶의 유일한 위안이었을 때다.
배틀넷을 통해 그의 게임 실력이 알려지며 김양중 전 IS 사장에게 '픽업'돼 그는 프로게이머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물론, 위로 누나만 셋인 집안의 '귀한' 막내둥이로 자란 그가 "나 게이머가 될래요"라고 인생의 진로를 밝혔을 때 그의 부모가 '옳거니'하고 반겼을리는 만무하다.
이후 숱한 우승을 경험하고 2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게이머가 됐지만 그가 가장 기뻤던 순간은 데뷔 후 2000년에 열렸던 어느 PC방 대회에서 우승해 300만원의 상금을 손에 쥐었을때.
"그날의 우승으로 날마다 한숨으로 아들 장래 걱정하는 부모님께 당당히 설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재수생활 중 시간을 보내던 PC방에 우승 트로피 들고가 자랑하고 술이 취해 PC방 쇼파에 누워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나 좋아 웃음이 가시지 않았지만 어느새 눈시울이 젖어들던 7년전 그날밤의 기억은 입대를 앞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승승장구하는 '황제'... 성공의 '명암'
전성기의 임요환은 정형화된 패턴이 없는 '프리스타일'이자 화려한 컨트롤러 였다. 전장이 되는 맵을 치밀하게 분석해 준비한 기발한 전략을 선보이며 상대를 압도했다. 본인이 "이기고 지는게 문제가 아닌 어떻게 이기느냐를 연구하던 때"라고 회고하듯 2001년 당시의 그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최강의 게이머였다.
그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수많은 팬들이 생겨난 것도 이때. 스타크래프트의 3종족 중 가장 열세였던 인간종족 '테란'을 플레이한 그에게 '테란의 희망'이란 닉네임이 붙기 시작했다.
그의 남다른 플레이 스타일은 스타크래프트를 직접 하는 것이 아닌 보는 것도 충분히 재미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99년에 스타크래프트가 게임리그로 출범한 것이 게임 자체의 인기에 기인했다면 2001년을 기점으로 그 인기가 급증했던 것은 임요환을 필두로 한 2세대 게이머들이 '보고 즐기는 유희'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기 때문.
2001년 한 해 동안 그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2연패를 비롯 각종 대회를 석권한데 이어 세계대회인 WCG에서도 우승하기에 이른다. 그에겐 '희망'이란 닉네임 대신 '황제'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게이머' 임요환의 외연은 CF, 영화 출연, 기업과 대학 특강으로 넓혀져 갔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e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
그 해 임요환은 서울대생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물론 그의 성공가도에 찬사와 성원만 따랐던 것은 아니다.
전략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힘싸움을 즐겨 하지 않는 스타일로 인해 일부 동료 게이머들에게 비겁한 플레이를 한다고 비난받기도 했다. 연습에만 몰두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던 그와 동료 게이머들의 불화 또한 적지 않았다.
팬들이 많은 만큼 안티도 무시못할 정도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의 신출귀몰한 플레이를 칭송하고 추앙하는 '찬미가'가 울려퍼질수록 그를 질시하는 목소리 또한 드높았다.
가수로 비유하자면 조용필 처럼 절대적인 추앙을 받으면서도 동방신기 처럼 '까이는' 그런 존재였다고 할까.
"내 자신을 비난하고 싫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플레이 자체가 비겁하다고 욕하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저도 괜히 싫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신경은 쓰지 않습니다. 전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게임하는게 아니니까요."
정상에서 내려온 후 팬이 보였다
"응원해주면 고맙고 욕하는 사람들은 그냥 신경끄고 그렇게 살았습니다"라고 스스로 인정하듯 임요환은 팬이든 안티든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런 그의 눈에 팬들이 '가깝게'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그가 정상에서 내려온 2002년 가을 이후였다고 한다. FA로 풀린 후 연습생들을 모아 팀을 스스로 만든 후 기업의 후원을 받으려 협상을 진행할 무렵,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팬들이 보이던 관심에 "팬들이 내가 보여주는 게임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구나"하고 느꼈다고.
매 시합마다 구름같은 여성팬들이 몰려와 함성을 지르는 걸 보고도 "이 사람들도 다 스타크래프트 좋아해서 응원하는 사람들이겠거니"하던 '둔한' 청년의 마음이 흔들린 것은 2003년 8월 15일.
스타리그 사상 최대의 역전극으로 꼽히는 도진광 선수와의 '패러독스' 맵에서의 경기를 끝낸 직후였다. 헤드셋을 벗고 감격에 겨워 터질듯한 가슴을 안고 방청석을 돌아본 순간 미친 듯이 함성을 지르는 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감격의 눈물을 쏟는 여성팬들도 보였다.
"그 순간, 처음으로 '임요환'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팬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보다도 더 내 승리를 바라고 간절히 기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못다 채운 갈증... 그와 e스포츠의 미래
"제 자신은 게이머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보다 더 내 승리를 바라는 팬들의 기대를 다 채우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직 전인미답의 고지로 남아있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통산3회 우승을 비롯해 개인전에서의 우승 기록을 입대전에 꼭 한번 더 채워 '황제의 귀환'을 기다려온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는 것.
우리 나이로 27세인 그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2년 6개월 남짓한 SK텔레콤과의 잔여 계약이 남아있다. 이 시간을 채우면 자연스레 30대 프로게이머가 된다.
"그 이후의 일은 아직 정확히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FA로 한차례 더 계약을 해 선수생활을 연장하든지, 아니면 지도자나 해설자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도자 쪽이 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아이콘'인 그의 부재가 e스포츠의 앞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우려도 높다. 아직 그를 이을만한 대형 스타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
공군 소속으로 개인리그에는 출전할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그가 군대라는 환경에서 리그 본선에 잔류할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e스포츠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현 시점에선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저조차 스타크래프트가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을 받으리라 예상하진 못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상당 기간 동안 유지되고 그 재미를 넘어서는 게임이 언젠가 나올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게임문화를 즐기는 젊은층이 사회주류로 자리잡는 순간 e스포츠는 'e'자를 뗀 '스포츠'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게임의 수명보다는 현역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안정적이고 높은 승률을 보장하는 플레이만 천편일률적으로 답습해 게임의 흥미와 박진감이 많이 떨어지고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
젊은층 뿐 아니라 기성 세대에게도 흥미를 줄 수 있도록 다채롭고 재미있는 플레이를 선보여 e스포츠가 주류문화로 자리잡는데 걸리는 '시간'을 좀 더 앞당기는 것이 후배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당부한다.
못다피운 청춘...입영전야
임요환은 게임에 모든 것을 불사른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로 인해 희생해야 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종종 '억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한다.
어떤 때냐고 묻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게임 때문에 여자친구랑 헤어져야 할 때"라고 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아직 청춘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그가 여자를 선택하는 첫번째 기준은 "게임에 빠져 살아야 하는 내 환경을 이해해 줄 수 있느냐"의 여부. 물론 외모와 성격은 '기본 옵션'이다.
혹시나 잘 안됐을 경우 인터넷을 통해 눈덩이 처럼 불어날 '소문'이 두려워 자신을 따르는 팬과의 연애는 상상해본적 조차 없다고 한다.
"이해해 주는 것 처럼 보이다가도 막상 사귀어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얼마전까지 사귀는 사람이 있었지만 결국 입대를 앞두고 혼자가 됐다"고 토로하는 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9일 입대하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할 것 같지는 않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게임팬들이 별도의 사이트를 개설해 그의 '잠정은퇴'에 애도를 표할 만큼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깎은 그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며 연인보다 더 '진한' 눈물을 흘릴 무수히 많은 여인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의 '부재' 중 e스포츠의 미래가 어찌될지, 그가 복귀후에도 정상의 게이머로 남을 수 있을지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그가 지난 7년여동안 흘린 땀과 노력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고, 공부가 아니라도 열정을 다해 성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열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처음 프로게이머가 됐을때, 그리고 이후에도 척박한 e스포츠의 토양때문에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한 끝에 '기적'이 일어났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의 제 삶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다시 여러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서정근기자 antilaw@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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