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영준 기자] 지난해 카카오와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공개매수 사례를 기점으로 '공개매수'가 자본시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공개매수를 단순한 주식 매입 수단이 아닌 자발적 상장폐지, 경영권 강화, 자기주식 공개매수 등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적대적 M&A 목적의 공개매수는 드물다. 2003년 현대엘리베이터, 2006년 KT&G, 2020년 한진칼 정도가 적대적 M&A 목적으로 공개매수를 활용한 사례다. 공개매수 활용 빈도를 보면 주로 지주회사 요건 충족을 위한 지분 확보가 과반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2024년은 달랐다. 상장폐지 목적의 공개매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공개매수로 자사주를 취득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경영권 안정 목적의 공개매수도 다수였다.
◇'상장폐지' 공개매수 역대 최대
올해는 상반기에만 상장폐지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선 기업은 7곳이나 됐다. 지난해 4곳, 2022년에는 2곳 등 역대 최대 규모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성통상이다. 신성통상은 최대주주에 의한 상장폐지 시도로 이목을 끌었다.
신성통상은 지난 7월 자발적 상장폐지를 위해 최대주주 가나안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77.98%를 제외한 잔여지분 22%에 대해 공개매수에 나섰지만 목표치를 채우지 못헸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규정에 따르면 최대주주 등은 자진 상장폐지 신청 시점에 9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신성통상이 확보한 주식은 83.9%에 그쳤다.
신성통상은 헐값에 주식을 사들여 상장폐지하고 3100억원대의 이익잉여금을 대주주 일가가 독식하려 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었다. 2세에 대한 승계 구도가 완성된 점도 이같은 의구심에 힘을 실어줬다. 염태순 회장 외아들인 염상원씨는 가나안 지분 82.4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가나안이 신성통상의 최대주주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염상원씨가 신성통상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신성통상 사례는 공개매수가에 대한 문제로도 번졌다. 주당 2300원이란 공개매수 가격이 주당 순자산(3136원)보다 낮고, 52주 신고가(2520원)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공개매수가가 적정한 지 판단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
적대적 M&A는 공개매수의 주된 활용 목적이다. 5% 이상 지분을 취득한 상태에서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불특정 다수로부터 주식 등을 사와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주식의결권신탁계약을 통해 공동 경영 체제를 유지해왔던 고려아연은 올해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대주주 영풍은 PEF MBK파트너스를 통해 경영권 안정을 꾀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9월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자사주 공개매수로 역공에 나섰다.
PEF의 공개매수는 2020년 한진칼에 대한 강성부펀드('그레이스홀딩스') 사례나 2023년 한국타이어그룹에 대한 MBK파트너스'벤튜라')의 사례 등에서처럼 낯설지 않다. 그러나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낯선 사례였다. 1999년 공개매수를 통한 자사주 취득이 허용된 이후 2001년 연합철강공업 이후 새롭게 등장한 자사주 공개매수였다.
더구나 자사주 공개매수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었기에 더욱 이목을 끌었다. 최윤범 회장 측과 MBK파트너스·영풍 간의 경영권 다툼의 결과에 따라서는 자사주를 활용한 공개매수가 빈번히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분쟁없는 '경영권 안정' 공개매수
적대적 M&A 수단으로 활용되는 공개매수를 경영권 강화에 활용한 이례적인 사례도 나왔다.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 공개매수가 대표적인 예다.
한화그룹은 2001년 ㈜한화 정보부문을 분사하면서 경영승계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화 정보부문은 그룹 석유화학 계열사와의 인수합병(M&A)으로 외형성장을 이뤄내 자산총계 13조원의 거대 종합에너지 회사인 한화에너지로 성장하게 됐다.
올해 들어 한화그룹은 한화에너지를 중심으로 경영승계에 대비하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김동관‧김동선‧김동원 등 오너3세가 각각 지분 50‧25‧25%를 보유한 회사다. 한화에너지가 ㈜한화의 지분을 늘리면서 오너3세→한화에너지→한화→그룹 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한화에너지는 지난 7월 공개매수로 ㈜한화 지분 5.2%를 약 1170억원에 매입했다. 이어 12월 고려아연이 보유한 ㈜한화 지분 7.25%를 1520억원에 취득했다. 이에 따라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율은 22.16%로 김승연 회장이 가진 22.65%와 비슷한 수준이 됐다. 여기에 김동관(4.91%), 김동원(2.14%), 김동선(2.14%) 등 3형제가 ㈜한화의 지분을 보유해 실질적인 지분 영향력은 김 회장보다 커지게 됐다.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 공개매수는 흡수합병(M&A)이 아니라는 점에서 예상을 벗어난 선택으로 평가한다. 한화에너지와 한화가 '대등하게' 합병하면 삼형제의 한화 지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김승연 회장에서 삼형제로 경영권을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순자산 규모나 기업가치 측면에서 한화에너지가 대등한 비율로 한화와 합병하기는 어렵다. 이 점을 고려해 합병 대신 한화 지분 공개매수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처럼 2024년의 공개매수는 단순히 주식 매입 수단이 아닌 자발적 상장폐지, 경영권 강화, 적대적 M&A 등 기업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다양하고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수단이 됐다. 향후 공개매수 또한 기업들의 경영 전략을 한층 더 복잡하고 다각화된 방식으로 바꾸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며 이러한 변화는 시장과 주주들에게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영준 기자(seo0703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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