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서울 서초구 신반포2차아파트 상가 조합원들의 아파트 분양 산정비율이 잘못 됐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며 재건축 사업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일부 아파트 조합원이 상가 조합원의 아파트 분양 여부를 결정짓는 산정비율과 관련한 정관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소송에서 재판부가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7민사부(판사 이상원)는 전날 신반포2차아파트의 조합원 58명(원고)이 재건축정비사업조합(피고)을 상대로 제기한 총회결의무효확인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22년 2월 조합의 정기총회에서 의결한 정관 42조2항에는 상가 조합원들의 자산 가치를 계산하는 산정비율이 담겨 있다. 조합원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조합원 전원이 동의해야 하는 사안인데, 법원은 동의요건을충족하지 못해 정관 자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결론을 내렸다.
상가 조합원들의 아파트 분양 여부를 결정 짓는 주요 요소인 '산정비율'과 관련 정관을 무효화하는 소송에서 법원이 아파트 조합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어서 다른 재건축사업 등에도 작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가 조합원들의 아파트 분양 여부와 관련한 판례를 추가한 셈이다. 하지만 당장 신반포2차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됐다.
◇사건의 발단, 2020년 조합-상가 조합원 간 합의서
소송은 4년 전 조합과 상가 조합원이 작성한 합의서에서 싹텄다. 상가 조합원도 향후에 분양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터준 내용의 합의서다.
2020년 9월 조합(당시 추진위원회)과 상가 조합원들(신반포2차 잠원상가 재건축협의회)이 작성했는데, 같은 해 10월 열린 조합 창립총회에 참석한 조합원 1146명 중 1016명(71.5%)이 합의서를 승인하는 데 동의했다. 이어 2022년 2월 정기총회에서는 이 합의서를 정관에 반영하는 안건을 상정해 참석한 조합원 955명 중 820명, 전체 조합원(1497명)의 54.7%가 동의했다.
이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조합은 상가 조합원에 대한 아파트 분양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인 산정비율을 보통의 기준인 1이 아닌 0.1로 정했고, 상가의 독립정산제를 명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독립산정제는 재건축사업을 대표하는 조합은 하나이지만, 상가와 아파트 조합원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각각 재건축 사업의 수익과 비용을 구분해 계산한다는 뜻이다.
산정비율은 상가 조합원이 주택(도시정비법)을 분양받을 경우 적용하는 산정 가치에서 상가의 가치를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일례로 상가 조합원의 권리가액이 15억원인데 재건축 후 새로 지은 아파트의 가장 작은 주택형인 전용면적 59㎡의 최소 분양가가 20억원이라면, 산정비율이 1일 때는 상가 가치가 더 작아져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한다. 이에 비해 산정비율 0.1이면 같은 방식으로 새 아파트의 가치가 2억원으로 줄어 상가 가치가 커지기 때문에 상가 조합원도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
당시 조합은 재건축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상가 조합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판단, 상가 조합원에 유리하게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파트 필지 안에 위치한 상가의 경우 재건축 추진 시 상가 조합원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신반포2차아파트 조합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 추진 시 상가를 하나의 동으로 보기 떄문에 동별 의결수를 충족하기 위해 상가 조합원들과 합의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경우에 따라 쉽게 동의해주는 상가 조합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 동의해 주지 않기 때문에 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조건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원 동의' 못 받아…법원, "정관 무효" 판결
일부 아파트 조합원들은 이 합의서에 대해 뒤늦게 인지하고 지난해 4월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상가 조합원과 맺은 합의서를 반영한 것은 의결 정족수도 충족하지 못했고, 설명도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도시정비법 시행령 63조 제2항2호에 따르면 부대시설·복리시설(상가)의 소유자에게는 상가를 공급하되, 재건축사업의 경우 조합이 조합원 전원의 동의를 받아 따로 기준을 정하는 경우 상가 조합원에게도 1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재건축 사업 추진 시 예외적으로 아파트 분양을 허용하는 것이다. 새 상가를 짓지 않거나 새 상가를 짓더라도 규모가 기존보다 현실적으로 크게 감소하는 경우, 가장 작은 분양주택의 분양가액에 일정 비율을 곱한 금액보다 크면 아파트 분양을 허용하고 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산정비율을) 1보다 완화해 정하려면 조합원 전원의 동의가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게 상당하다"며 "정기총회(2022년) 조합원 54.7%만이 동의했을 뿐 전원이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조합이 이 안건을 가결시켜 의결정족수가 미달한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판시했다.
◇신반포2차아파트 재건축 '브레이크' 우려
최근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며 속도를 내고 있는 신반포2차 아파트 재건축은 이번 판결로 인해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현대건설은 '디에치 르블랑'으로 단지명을 제안한 바 있다. 상가 조합원은 합의서에 따라 재건축 사업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큰데, 산정비율이 무효화될 경우 반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 불복해 조합이 항소를 하려면 판결서가 송달된 날로부터 2주 이내에 항소장을 제출해야 한다.
조합 관계자는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 중"이라며 "여러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는 과정에 있으며, 상가 조합원들과도 대화를 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정비율을 1보다 낮추기 위해서 조합원 전원의 동의 필요하다는 조건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얘기"라며 "조합 설립도 하지 말고 재건축도 하지 말란 얘기다나 다름 없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은 소송과 관계없이 관련 절차를 이어갈 것"이라고도 했다.
조합이 항소를 하더라도 향후 판결이 조합의 구상대로 재건축사업 추진 일정에 차질 없게 결론이 나올지도 지켜봐야 한다. 앞서 대법원은 서울 서초구 방배6구역 조합원이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총회 안건가결 확인’ 소송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단을 내렸다. 다시 다툴 필요없이 지난 3월의 판결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상가를 포기한 조합원에게 잔여 가구 중에서 1가구를 공급하는 등 정관 변경은 조합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상가 조합원에게 상가를 공급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거나 상가 조합원에게 부당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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