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태현 기자] 올해 정부가 띄운 밸류업 정책으로 주주 행동주의도 부활했다. 과거 일회성 소액주주 운동으로 나타났던 주주 행동주의가 소수 주주의 위상 강화와 플랫폼을 활용한 단체 행동으로 힘을 받고 있다. 두산, 고려아연, 이수페타시스, 디아이(DI)동일 등 소수주주의 행동주의 사례가 잇따른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와 헤이홀더 2곳 가입자 수는 지난해 말 4만6410명에서 올해 8월 말 9만7000명가량으로 두배 넘게 늘었다.
소액주주 플랫폼은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로 실제 주주 여부와 보유 주식 수를 인증해, 주주의 권리 행사를 돕는 서비스다. 이전에도 인터넷 카페나 오픈 채팅을 통해 소액주주의 의견을 공유하는 장이 있었지만, 주주들의 실제 지분 규모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올해 자본시장을 뜨겁게 달군 두산 그룹의 분할합병 중단도 플랫폼 액트가 기점이 됐다. 액트는 두산이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한다고 밝히자, 주주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자로 나서 소액주주들의 반대표를 모으는 데 앞장섰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철회도 소수주주 운동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대규모 차입금을 상환하는 방안으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발표하자, 소수 주주의 반발이 거셌다. 기존 주주의 권리 침해 여론이 형성됐고, 이에 금융감독 당국이 칼을 빼 들었다. 소수주주의 반발을 고려하지 못했던 고려아연은 증자 계획을 접었다.
최윤범 회장은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소액주주 보호와 참여를 위한 방안을 추진해, 주주와 시장의 목소리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면서 일반주주를 세심히 신경 쓰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주주 행동주의란 상장회사의 일반주주가 보유 지분을 활용해 기업 경영에 영향을 주는 활동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제일은행에 대한 부실 대출 손해배상 소송 이후 27년여 중 올해가 가장 소액주주들의 영향력이 큰 해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 소액주주 운동은 지배주주에 맞선 소액주주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올해는 '개미' 내지는 '소액주주'라는 용어를 넘어서 일반주주라는 표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여기엔 플랫폼을 동원한 지분 확보 효과가 상당했다.
일반주주의 결집과 플랫폼을 통한 지분 확보는 주주 운동의 성공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액트에 모인 소액주주들이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제시한 21개 기업의 주주제안 중 13개가 수용돼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랐다.
15%가량의 지분을 확보한 DI동일 소액주주 모임이 대표 사례다. 소액주주들은 DI동일의 감사위원 해임을 지속 요구해 왔다. 해임안은 지난달 임시주총에서 59.6%의 찬성표를 받아 부결됐지만, DI동일로부터 내년 1분기 안에 감사위원의 겸직을 해소하겠다는 공식 답변을 얻었다.
자사주 소각에 늦장 부린 아세아제지에도 압박을 가해 긴장을 불어넣었다. 아세아제지는 주주가치 제고 계획과 달리 자사주를 취득한 뒤에도 이를 소각한다는 계획을 공시하지 않았다. 이후 여러 차례 소액주주 연대의 서한을 받은 뒤에서야 소각 계획을 공시했다.
호전실업이 신현규 파이코앤컴퍼니 이사를 IR 고문으로 영입한 것도 소액주주 운동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소액주주 연대는 올해 10월 임시 주총에서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신 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라고 주문했다. 그간 주주들은 호전실업에 여력에 비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행동주의 펀드와 맞붙은 DB하이텍 소액주주 연대의 행보도 관전 요소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최근 국내 대표 행동주의 펀드인 KCGI를 검찰에 고소하고 금융감독원에 진정서를 냈다. KCGI가 고의로 DB하이텍의 경영권을 위협한 뒤, 단기 차익을 얻고 빠져 주주들에게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에서다.
소액주주가 기업 오너가 아닌 행동주의 펀드의 일탈에도 브레이크를 건 건 이례적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소액주주가 자본 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더 커질 전망이다.
/정태현 기자(jt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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