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주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전반에서 배제됐다. 초유의 권력 공백이 발생하면서 여야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빈 왕좌를 먼저 확보하기 위한 수싸움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권은 오는 14일 윤 대통령의 탄핵을 재시도할 방침이다. 첫 번째 탄핵 표결 당시 의결정족수 미달로 폐기됐지만, 국민의힘 일부에서 동요가 일어난 만큼 2차 표결에선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번 주말 탄핵 표결을 앞두고 가시적인 1차 수사 결과가 나올 경우, 여당 내 이탈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대통령 탄핵'을 단일 방안으로 설정하고 관철에 총력을 쏟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탄핵에 대해선 우선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향후 정국 방향성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나오면서 총의를 모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여야의 행보 이면에는 차기 권력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실상 공백이 생긴 대통령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정당 간 주도권 싸움에 돌입했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복잡한 속내다. 1차 대통령 탄핵은 겨우 봉쇄했지만, 소위 '플랜B'에 대해선 일치된 의견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결국 친윤(친윤석열)계와 친한(친한동훈)계 간 차기 권력을 둘러싼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친한계 입장에선 한 대표라는 차기 권력 후보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조기 대선'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 대표가 전면에서 탄핵 정국을 수습한다면,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친한계도 대통령 퇴진 시점과 정국 정상화 방안 등 핵심 사안에 대해 한 대표 의중이 중요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몸집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친한계인 조경태 의원은 이날 중진 회동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할 시기를 먼저 말해야 한다고 보는가'라는 질의에 "이 부분은 한 대표가 판단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시점도 한 대표가 말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친윤계가 '조기 대선'을 반대하는 이유도 명확해진다. 가능성이 적은 장기전을 노리는 것은 사실상 차기 권력 경쟁에 내세울 후보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 판결을 비롯해 여러 사법리스크의 현실화 가능성이 있는 만큼, 견제를 이어가면서 정국 추이를 지켜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윤상현 의원은 "조기 대선을 하면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만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조기 대선에 반대한다"면서 "(대통령의 내란 행위는) 학계 여러 인사가 내란 행위의 고의 목적성을 입증하기 힘들다고 얘기하니, 대법원 판례 등 위헌성 여부는 더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당 나름의 플랜B와는 달리, 야권에선 불필요한 '시간 끌기'라고 보고 있다. 이미 판세는 야당에 넘어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한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이 '정국 안정화 TF'를 추진한다는데, 대통령 탄핵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결국 대통령과 어떻게 하면 담판을 지을 수 있을지 골몰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개혁신당 한 관계자도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가 정리됐다면 이렇게까지 밀리지 않았을 텐데, 계파 갈등에 수습 국면을 주도하지 못하면서 기회를 잃은 것 같다"며 "한 대표가 당 장악력이 없다보니 대통령 권한을 본인이 위임받은 것처럼 행동하는데, 사실상 당의 추인을 받기 어려울 것이고 당내 수습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은 향후 정국 계획은 명확하다. 이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 탄핵 정국을 주도한 이후, 차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실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선 당장 차기 대선을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 있지만, 국민의힘 주도의 정국 정상화 방안에 대해선 경계하고 있다. 자칫 정국 주도권을 여당에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민주당이 탄핵 정국 고삐를 당기는 것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무관치 않다. 불과 2주 전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미 선거법 위반은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면서 사법리스크는 현실화됐다. 나머지 혐의에 대한 재판 고비도 남은 만큼, 이 대표 입장에선 조기에 대선을 치르지 못하면 대선 후보로서 역할도 불투명하다. 더욱이 계엄 사태는 당내 대권 잠룡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비롯해 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 인사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키우는 상황으로 연결되면서, 이른바 정계 격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선 개혁신당 관계자는 "탄핵 정국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이 대표에 대한 우려가 다시 올라올 것"이라며 "사법리스크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닌 만큼, 민주당 주류가 생각하는 것처럼 판세가 흘러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개혁신당을 비롯해 민주당, 조국혁신당 등 대선 후보를 가진 정당 입장에선 지금 상황은 정계 격변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본격적인 차기 권력 경쟁이 본격화 된 상황에서 수세에 몰린 것은 국민의힘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여당도 대통령과 각을 세울 뿐 아니라, 새로운 얼굴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정당 영향력은 장담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이 본인이 살겠다고 계엄령을 발동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다시 집권하겠다는 생각은 허황된 것 아닌가"라면서 "국민의힘의 생각과 국민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을 모르는 것 같고, 국민의 선택을 다시 받기 위해선 윤 대통령하고 완전 결별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국민 입장에선 민주당에 대한 호감이 낮아서 차기 대선에서 찍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상황으론 국민의힘은 아니다"라면서 "그러다 보니, 민주당 내에선 대선 경쟁이 물밑에서 벌써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 대선 후보 경쟁이 본격화됐더라도 대세인 이 대표를 위협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여야 차기 권력 구도 분수령은 역시 '사법리스크 현실화'에 달렸다고 한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주권자 입장에서 현재로선 이 대표 이외의 대안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만큼, 명분을 확보한 이재명의 시간이라고 봐야 한다"면서도 "주권자가 판단할 문제지만, 이 대표가 탄핵 국면에서 중형을 선고받는다면 논란 시작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살 수 있는 방안은 여당 프리미엄을 버리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보수 지지층이 결집할 수 있다"며 "국민보다 당리당략을 우선하는 순간 명분이 없어지는 만큼, 탄핵을 받아들이고 대선에 돌입해야 보수가 다시 정치할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주훈 기자(jh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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