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태현 기자] "한정적인 사안에만 적용되는 데다 사후 처방에 불과합니다. 주주 보호도 의무가 아닌 노력할 사항으로 규정해 정책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정부가 발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한 한 전문가의 촌평이다. 이 뿐이 아니다. "30년가량 반복된 사후 땜질", "신종 수법에 속수무책",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를 정당화하는 셈"과 같은 강도 높은 비판이 여러 전문가 입에서 나온다. 한두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다수가 공통으로 정부 대책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비판의 논점은 크게 두 가지다. 적용 대상이 4가지로 한정적이고, '노력'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는 일반주주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개정안에 명시해 주주들을 다양한 꼼수로부터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4가지 조항은 합병, 분할합병, 주식의 포괄적 교환, 중요한 영업 자산의 양수도 등 합병 관련 특례다. 정부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상장사는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할 예정이다.
정부 방안으로 두산그룹의 두산밥캣 분할합병같은 불공정 분할합병을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고려아연의 대규모 유상증자나 HL홀딩스의 자기주식 재단 무상 증여같은 꼼수는 막을 수 없다.
두더지 잡기식으로 튀어나온 곳만 잡는 대책으론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애초 상법 개정 논의는 정부에서 불을 지폈다. 올해 1월2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사회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호응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공개적으로 상법 개정을 지지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상법 개정의 방향성을 잡지 못한 채 11개월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두산그룹 사태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 두더지 잡기식 대책으로 사안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안이한 인식이 엿보인다.
최근 국회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탄핵 정국에 빠져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 처리 시점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차제에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여러 사항을 반영한 법안 마련에 나설 때다. 정부는 눈앞에 보이는 두더지에 매몰되기보다, 왜 두더지가 계속 튀어나오는지 뒤돌아보기 바란다.
/정태현 기자(jt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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