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기후위기는 누구 책임이며 어느 나라가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전 세계가 기후위기로 천문학적 피해를 보고 있는 가운데 그 책임 여부를 두고 세기의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번 주 월요일부터 기후위기와 관련된 청문회가 시작됐다. ‘기후정의’를 두고 국제적 판단이 나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는 그동안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를 29차례 개최하면서도 기후위기 원인과 책임 판단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됐음에도 여전히 온실가스는 줄지 않고 있다.
누가 봐도 산업혁명의 중심 무대였던 유럽과 이후 대규모 경제성장을 이룬 미국, 이를 뒷받침한 산유국이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음에도 이들 나라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자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섬나라들이 절박한 심정을 호소하고 나섰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국가의 대표들은 ICJ 판사들에게 소수의 국가(미국과 유럽, 산유국 등)들이 기후변화의 지속적 영향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월요일에 시작된 헤이그 평화궁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바누아투의 기후변화와 환경 특사인 랄프 레겐바누(Ralph Regenvanu)는 “기후위기는 기후변화를 낳은 ‘소수의 국가’에 책임이 있다”며 “(지구 가열화의 원인인)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에서 이들 나라에서 비롯되고 그 영향으로 인한 손실은 가장 적다”고 직격했다.
법원은 이날 바누아투와 같은 태평양 섬나라들이 해수면 상승과 점점 더 잦고 심각한 기후재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레겐바누 특사는 “우리가 만들지도 않은 위기의 최전선에 (오히려)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 유엔 총회는 ICJ에 △국가가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어떤 법적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문 의견을 제공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한 바 있다.
ICJ는 앞으로 2주 동안 영국, 러시아 등 기후위기에 역사적으로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부유한 선진국과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 거의 책임이 없음에도 여전히 기후위기가 지속하는 국가를 포함해 98개국의 진술을 듣는다.
온실가스 세계 최대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은 ICJ의 권위를 완전히 인정하진 않았는데 관련 성명은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레겐바누 특사는 “관련 과학자들이 ‘점점 더 심각한 경고’를 하고 있음에도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1990년 이후 50% 이상 증가했다”고 ICJ에 설명했다.
한편 남태평양에 있는 피지,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바누아투를 포함하는 지역 하위 그룹인 멜라네시아 스피어헤드 그룹(Melanesian Spearhead Group)의 법률 고문인 일란 킬로에(Ilan Kiloe)는 “(기후위기에 따른) 가혹한 현실은 우리 민족 중 많은 사람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킬로에 법률 고문은 “우리는 우리가 만들지 않은 시스템 내에서 우리 자신을 재건하고 주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우리에게 가해진 계속되는 폭력으로부터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처참한 심경을 토로했다.
바누아투와 멜라네시아 스피어헤드 그룹의 수석 변호사인 마가레타 싱(Margaretha Wewerinke-Singh)은 “(기후변화에 책임 있는) 일부 국가들이 그들의 행위와 부작위를 통해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기후변화에) 책임 있는 국가가 자신이 초래한 피해에 대해 완전한 배상을 해야 하고 이는 해로움에 대한 역사적 기여에 비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COP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여전히 합의되지 못하고 있는 ‘손실과 보상’과 연계된 것으로 해석된다. ‘손실과 보상’은 기후변화에 책임있는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 그동안의 손실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COP에서 여러 차례 언급됐는데 29번 열리는 동안 여전히 그 책임은 물론 누가, 어떻게, 얼마나 많은 보상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 ‘헤이그 기후정의’에서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이 구속력이 있는 조약인지에 대해서도 해석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UN은 2015년 파리에서 통과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을 ‘기후변화에 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조약’이라고 설명한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은 지구 가열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줄이자는 협약이다.
다만 이를 지키는 국가는 거의 없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참여했던 대부분 국가는 자신들이 결정한 국가온실가스 감축 등에서 자유롭게 목표와 정책을 설정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ICJ는 국제해양법재판소, 미주인권재판소와 함께 기후변화에 대한 자문 의견을 작성하는 3개 국제재판소 중 하나이다. ICJ는 다양한 의견을 들은 뒤 이후 ‘헤이그 기후정의’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매체 가디언 지는 관련 보도를 통해 “ICJ의 권고적 의견이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며 “다만 이번 ICJ의 ‘기후정의’ 판단은 앞으로 기후 소송과 국제 기후 협상에서 권위 있는 문서로 참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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