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미국이 대통령 선거 이후 자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세계 공급망 재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통상정책에서 '상호주의'를 앞세우며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이 주요 타깃이 될 우려도 있어 공급망 다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원목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아이포럼 2024'에서 '미 대선 결과에 따른 통상 정책 변화와 대응'이라는 주제로 한국 산업이 마주한 통상 현안과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실전형 통상 전문가'다. 한국 국제경제법학회장, 에너지법제연구회장, ABS포럼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이화여대 통상법률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최 교수는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글로벌리스트' 진영과 공화당의 '내셔널리스트' 진영 간 통상 정책의 역사적 흐름과 그에 따른 미국 관세율 추이를 분석했다. 자립적 경제주권과 안보를 강조하는 공화당은 집권 시 관세 인상을, 글로벌리즘을 추구하는 민주당 집권 시 자국 관세 인하와 함께 다른 나라를 동시에 압박해 다자적 관세 인하를 추구했다.
최 교수는 "공화당의 기본 노선은 작은 정부와 감세에 중점을 두면서 재정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는 정책으로 관세 인상을 선택했다"며 "민주당은 반대로 관세를 내려도 증세 등으로 재정 여력이 있어 관세 인하 정책을 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화당 관세인상, 민주당 관세인하의 추세는 최근 바뀌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구도가 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상당 부분 보복관세가 필요하다는 양 측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 기업이 경제주권을 확보하고, 세계화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자국 제조업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컨센서스(합의)가 형성되면서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에서 올린 관세를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가 이후에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 교수는 "미국은 과거 소련이 부상하자 봉쇄정책을 펼치며 소련 해체의 실마리를 제공했고, 1970년대 일본이 부상하고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미국 GDP의 70%까지 접근하자 여러 관세 정책으로 일본을 견제했다"며 "그와 같이 공화당과 민주당 할 것 없이 현재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통해 중국을 봉쇄해서 나름대로 패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통상 정책 방향을 세분화해 항목별로 살폈다. 해리스는 공정무역과 환경노동주의에 기반한다. 미국이 수출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열려있어야 하기 때문에 보호주의적 정책은 지양하고 수출을 늘리는 방향의 정책이 예상된다. 다만 노동, 환경 분야와 관련해 불공정 무역에 대응하는 형태로 선별적인 관세 보호와 기술 통제, 무역협정을 업그레이드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이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MA)와 같은 정책을 미국도 도입해 환경보호주의에 미국이 가세하는 형태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트럼프는 모든 항목에 보편관세 10%포인트(p)를 추가로 부과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수출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에 대비해 본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호관세 적용 가능성도 높다. 상호관세는 미국과 상대국의 관세율 차이로, 미국과 교역하는 나라가 무역흑자를 많이 보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를 유지한다면 상호성이 맞지 않기 때문에 그 차액에 대한 관세를 제품이 들어올 때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對)미국 무역 흑자가 많이 나는 한국과 같은 나라가 상호관세의 타깃(target)이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트럼프는 '눈에는 눈, 관세에는 관세'라는 말을 하고 있다"며 "고율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미국 제품 경쟁력 증대, 무역수지 개선 유도, 미국 내 일자리 확보, 임금상승 효과 등을 기대하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상호관세의 도입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공급과잉 규제를 통한 한국 산업의 부정적인 영향도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일정 수준 이상 제품을 특정 나라가 더 수출하면 공급 과잉 상태라는 것이다. 철강을 예로 들면, 중국에서 1억5000만 톤이 잉여 생산되는데 미국에선 700만 톤 부족한 상황이라면, 이는 불공정을 넘어 미국의 국가 안보를 해치는 상황이라고 보고 쿼터(할당량)를 설정하는 등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보편관세 10%, 대중관세 60%, 상호관세, 과잉생산 규제, 여기에 중국과 연결되는 나라의 우회 수출 규제까지 나선다면, 한국은 사면초가에 몰릴 수 있다"며 "한국 제조업체들이 해외생산기지를 구축한 국가까지 미국과의 관계에서 상호관세와 공급과잉 규제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로, 향후에는 해외 투자처도 이를 고려해 선별적으로 생산 물량을 배분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상호주의와 경제 블록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장기적으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미국 통상정책의 타깃이 되지 않도록 미국의 경제블록에 참여하는 형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면, 옛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현재의 '미국·멕시코·케나다조약(USMC)'과 같은 경제블록에 한국이 참여하면서 가칭 'KORUSMC'와도 같은 경제블록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반발에 대비한 중국과의 경제블럭을 형성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최소한 우리나라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것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미국의 상호관세, 보편관세 등에 대비해 공급망 다변화 정책을 미리 추진해서 정부와 기업이 대응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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