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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4> 블라디보스토크, 편안하게 소요(逍遙)하기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하리라...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보리라"미국 켄터키주에 살던 나딘스테어 할머니가 85세에 쓴 시'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소개되면 널리 알려졌다. 지난1970년대 소년 윤영선도 김찬삼교수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세계여행을 꿈꾼다. 그의 꿈은 바쁜 관료생활로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랬던 그가 고교 졸업 50년만에 꿈을 실천했다. 나딘스테어 할머니의 시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이르기 까지 50일간의 자동차 여정이다. 그는 여행기간동안 멈춤과 느림의 시간속에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태고적 고원의 웅장함을 느꼈다고 한다. 70 나이에 꿈을 이룬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의 횡단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블라디보스토크는 관광도시가 아니다. 자동차가 나올 때까지 5일간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목적 없이 시내를 소요(逍遙)하기로 정했다.

소요(逍遙) 어원은 기원전 4세기 활약한 중국의 장자와 아테네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한다. 장자는 목적 없이 산책하며 즐기는 '소요유(逍遙遊)'를 수양의 한 수단으로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요학파'라고 부른다. 정원에서 자유롭게 산책하며 제자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나와 미세스 송은 향후 여행을 복잡한 일상을 떠나서 소요(逍遙)하는 마음으로 보낼 생각이다.

러시아가 서쪽에서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지만, 이곳은 전쟁의 긴장감이 전혀 없다. 시내의 곳곳에 군인 동상이 많다. 박물관도 군사 역사박물관, 육군박물관, 잠수함박물관, 태평양함대 박물관 등 군 관련 박물관이다. 군인 존중의 상무 정신,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 고취는 전체주의 국가의 일반현상이다.

우리의 경우 북한의 핵무장, 휴전선 군사도발 등 안보 현실은 군인 존중,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근현대 한반도 격동기 역사는 러시아와 직, 간접 관련이 크다. 고종의 아관파천, 2차세계대전 후 남북한의 38도 분단, 북한의 6.25 전쟁 사주 등 러시아의 제국주의 팽창주의는 우리 근대사의 비극과 관련이 크다. 망국(亡國)의 슬픔이 가장 큰 서러움이라고 선조들은 말한다.

태평양 연안 야외에 있는 군사역사박물관의 모습. [사진=윤영선]
태평양 연안 야외에 있는 군사역사박물관의 모습. [사진=윤영선]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에 향한다. 입장료는 500루불(약 7500원)이다.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에서 수집한 샤머니즘(무속신앙) 관련 자료가 매우 풍부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샤먼(무당, 무속인)의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라고(약 10만 명 추정) 말한다.

샤먼(무당)의 본거지인 시베리아나 몽골 지역은 현재 무당이 거의 없다고 한다. 점(占)을 보는 역술인 포함하면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IT 강대국이라는 현실과 역설적이다. 이곳은 발해유적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한국의 중앙박물관은 발해유적이 전무하다. 박물관 1층에 발해관이 있는데 한국어로 된 설명서가 있다. 다음은 박물관에 비치된 한글 설명서 첫 장이다.

"발해는 중국으로부터 파괴된 고구려 터를 기반으로 7세기(698년)에 건국됐으며, 훗날 동해안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발해는 현재의 만주, 연해주, 북한 지역의 영토를 지배하였으며, 말갈인들을 비롯해 자국 멸망 후 새로운 나라를 구하던 고구려인들이 거주하였다…수도는 상경(현재 중국 헤이룽성 동경성 인근)이고, 동쪽 수도는 동경(현재 두만강 건너 혼춘)이다…채굴, 금속가공, 가죽 가공 등 기술이 상당히 발달…"라고 설명한다.

전시품은 8세기 궁궐과 사찰의 지붕 장식물, 무덤에서 발굴한 불교 조각상, 청동거울 등이다. 발해사는 고려시대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이 우리 역사에서 제외함에 따라 오랫동안 잊혀 왔다. 조선 후반기 실학자 유득공이 '발해고'에서 발해 역사를 재발견했다.

발해유적을 전시 중인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의 전경. [사진=윤영선]
발해유적을 전시 중인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의 전경. [사진=윤영선]

동해안을 따라서 원산 이남의 땅은 통일신라, 원산 북쪽의 땅은 발해 땅이다. 유득공은 거란족에 의한 발해가 망함(926년)으로써 만주 지역 고구려의 옛 영토가 영원히 우리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의 일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발해 멸망 후 왕족과 주민 수만 명이 귀순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의 후계국인 고려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태조 왕건은 발해 왕자에게 왕씨 성을 하사하고, 잘 보살펴주었다고 전한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우리 고대 역사의 숨어있는 망국의 유물이 현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음에 역사의 순환을 생각해 본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국인 관광객이 매우 많다. 인접한 흑룡강성에서 버스를 타고 놀러 온 관광객이다. 시내 음식점 등의 간판은 중국어가 병기되어 있다. 시내 중심가 어디를 가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목소리 소리가 요란하다. 러시아인의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비하를 경험했다.

영화 '왕과 나'의 의상을 입고 있는 영화배우 율브리너의 동상. [사진=윤영선]
영화 '왕과 나'의 의상을 입고 있는 영화배우 율브리너의 동상. [사진=윤영선]

내 부부가 미국 달러를 루블화로 교환하기 위해 은행에 갔다. 은행원이 미화 백 달러 지폐를 약간 구겨졌다. 기스가 있다고 환전을 거부한다. 은행은 서비스업이 본업임에도 매우 불친절하다. 러시아정교회 예배를 구경하기 위해 건물에 들어가려고 하니 경비원이 한 시간 후에 오라고 못 들어가게 막는다.

"우리는 한국 관광객이다. 예배에 참석하고 싶다"라고 말하니 친절하게 들어가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은행과 교회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

향후 러시아인을 만나게 되면 한국인임을 먼저 말해야 할 것 같다. '왕과 나' '십계' 영화로 유명한 미국 배우 율브리너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시내를 배회하다가 율브리너 생가에 들렸다. 주택은 수리 중이고, 마당에 동상이 서 있다. 1950년대, 60년대 활약한 배우로, 대머리에 카리스마 넘치는 눈매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이다. 요즘도 크리스마스 때 ‘십계’ 영화를 TV에서 가끔 상영한다. MZ 세대는 율브리너를 모를 것이다.

딱히 갈 곳을 정하지 아니하고 시내 여러 곳을 자유롭게 소요(逍遙)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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