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권용삼 기자]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 미래 산업의 패권을 두고 글로벌 주요 국가들이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며 자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역시 이들 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강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7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발표한 '주요국 첨단산업별 대표기업 지원정책 비교' 보고서에서 따르면, 미국과 중국, 일본은 경제안보 측면에서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국의 지원 수준은 매우 미흡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분야의 경우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022년 칩스법 서명식에서 국가안보는 반도체 산업에 달려있다고 언급하며 같은 해 10월 반도체 수출통제 개정 조치로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통제를 강화했다. 또 아시아 기업들에 의존하던 반도체 생산을 자국에서 해결하기 위해 인텔에 85억달러(약 11조4500억원) 보조금 투입 계획도 발표했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2023년부터 반도체 대표 기업 SMIC에 2억7000만달러(약 3600억원)의 보조금 지급을 시작했다. 정부가 대주주(지분비율 30% 이상)로서 투자 및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도 반도체 산업 재부흥을 목적으로 연합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 설립에 63억달러(약 8조5000억원)가 넘는 보조금을 투입했다. 최근에는 추가 지원방안까지 고려 중이다.
이차전지 분야에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전기차 시장 보호로 대응 중이다. 이 분야에서 뚜렷한 대표기업이 없는 미국은 IRA를 통해 부품의 최소 50% 이상이 북미 지역에서 생산ㆍ조립된 경우 등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에 CATL과 LG에너지솔루션 등 많은 기업들이 미국에 생산 공장을 건설했거나 계획 중이다.
중국 정부는 현재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인 CATL에 2011년 설립 당시부터 최근까지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 범위를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로 확대해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서도 선두를 점하고자 한다.
일본도 이차전지 산업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중국산 이차전지가 시장을 주도하자 도요타에 8억5000만달러 규모의 이차전지 연구개발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다. 또 국내 이차전지 생산시설 확보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 이어 이차전지 산업에도 보조금 지급 정책이 없는 실정이다. 한국 주요 이차전지 생산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21년 30.2%에서 2022년 23.7%, 2023년 23.1%로 불과 2년 만에 7.1%포인트 하락했다.
이와 함께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한국은 LCD에 이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까지 위협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자국 LCD 및 OLED 생산업체인 BOE에 4억2000만달러(약 56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토지·건물 무상 제공과 지방정부 출자 등도 제공 중이다.
한때 한국 업체들은 전 세게 LCD 시장을 석권했으나, 중국 정부가 지난 2012년부터 '전략적 7대 신성장산업' 중 하나로 디스플레이 산업을 선정해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한 이후 시장을 완전히 빼앗겼다.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OLED 부문에서도 미세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중국의 대규모 보조금과 투자 앞에 위태로운 상황이다.
한경협은 주요국이 공통적으로 첨단 산업에서 보조금 정책을 통해 경제 성장을 달성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선점효과와 승자독식 양상을 보이는 첨단산업에서 보조금 정책이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 확보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기업 대상 세액공제와 같은 간접적인 지원은 있으나, 막대한 생산시설 확보 및 연구개발에 필요한 보조금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한경협은 미국이 시행 중인 '직접환급' 제도와 같은 정책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직접환급' 제도는 기업이 납부할 세금보다 공제액이 더 크거나 납부할 세금 자체가 없는(적자) 경우, 그 차액 또는 공제액 전체를 현금으로 지원해 즉각적인 기업 현금 유동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밖에 일원화된 경제안보 컨트롤 타워 수립을 통한 관련 법 및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미국은 2021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고, 단일 조직에서 산업과 안보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총리 산하였던 과학기술부를 작년에 국가주석이 관할하는 당 중앙위원회(중앙과학기술위원회)로 격상해 지도부가 직접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한다. 일본도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 이후 2021년 장관급 조직인 경제안보담당관실을 설치해 총리 주도의 범부처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주요국들의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에 대한 지원정책 강화는 첨단산업 주도권 상실이 곧 국가안보 위협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결과"라며 "급격한 기술발전과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 이들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는 안보는 물론 재편되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용삼 기자(dragonbu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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