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파브리병부터 고셔병까지."
전통 제약사들이 미충족 수요가 높은 희귀질환 신약 개발을 위해 서로 협력하거나 후보물질을 도입하며 임상 시험에 나섰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은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세금 감면 등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도전해볼 만한 분야로 평가된다.
14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GC녹십자와 한미약품은 세계 최초로 월 1회 피하주사 방식의 파브리병 치료제 'LA-GLA'를 공동 개발 중이다. 파브리병은 유전적으로 발생하는 희귀 대사 질환으로, '알파-갈락토시다제 A(α-Galactosidase A)'라고 불리는 효소가 부족해서 생긴다. 이 효소는 리소좀이라는 세포 내의 작은 기관에서 당지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효소가 결핍되면 당지질이 체내 축적돼 세포독성과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혈관과 신경, 신장, 심장 등 여러 기관이 손상될 수 있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된다.
LA-GLA는 기존 1세대 치료제의 2주 간격 정맥주사 투여 방식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 중인 약물이다. 월 1회 투여가 가능한 피하주사 요법으로, 환자들의 편의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GC녹십자와 한미약품은 LA-GLA가 신장 기능과 혈관질환, 말초 신경 장애 개선 등에 효과를 발휘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올해 5월 해당 약물을 희귀의약품(ODD)으로 지정했고, 최근에는 임상 1/2상 시험 계획(IND)을 승인했다.
이번 임상에서는 파브리병 환자를 대상으로 LA-GLA의 안전성과 내약성, 약동학, 약력학 등을 평가한다. GC녹십자 관계자는 "FDA가 요구하는 최신 임상 프로토콜을 반영하고 양사의 전문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협업한 결과, 임상 단계로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GC녹십자는 노벨파마와 산필리포증후군 A형 치료제 'GC1130A'를 공동 개발 중이다. 산필리포증후군 A형은 유전자 결함으로 중추신경계에 특정 당질인 '헤파란 황산염'이 축적돼 중추신경계가 점진적으로 손상되는 열성 유전질환이다. 일반적으로 2~6세 이른 시기에 발병돼 15세 전후에 숨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초기 증상으로는 발달 지연, 행동 과다, 수면 장애 등이 있다. 아직 허가받은 치료제가 없어 미충족 수요가 큰 질환이다.
GC1130A는 환자 체내에서 발현하지 않는 효소인 '헤파란-N-설피타제'를 뇌실에 직접 투여하는 방식인 효소대체요법 치료제(ERT)로 개발되고 있다. GC녹십자의 고농축 단백질 제제 기술이 적용됐다. 올해 5월 GC1130A는 FDA로부터 임상 1상 IND를 승인받았고, 7월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8월에는 일본 규제 당국으로부터 각각 임상 1상 IND 승인을 받으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앞으로 각국에서 안전성과 초기 효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유한양행의 경우 고셔병 치료제 'YH35995'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셔병은 유전적 변이로 인해 특정 효소가 결핍돼 체내에 지방질이 축적되는 희귀질환이다. 주로 간·비장·뼈 등에 영향을 미치며, 증상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형은 신경 증상이 없고, 간과 비장 비대, 빈혈, 뼈 통증 등이 나타난다. 다만 2형과 3형에서는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며 경련과 신경 퇴행 등 1형보다 심각한 증상을 보인다.
YH35995는 유한양행이 2018년 GC녹십자로부터 도입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으로, 고셔병 환자의 체내에 축적되는 중성 당지질인 '글루코실세라마이드'의 생성을 억제하는 기전의 저분자 화합물이다. 전임상 시험에서 우수한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됐으며, 혈액뇌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뇌에서 글루코실세라마이드 수치를 더 크고 오래 억제하는 특징을 보였다. 유한양행은 3형 고셔병 치료 목적으로 YH35995를 연구하고 있으며, 지난 6월 말 식약처로부터 임상 1상 IND를 승인받은 상태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지난달 23일 여의도 콘래드서울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파이프라인 중에서 고셔병 치료제가 항암제보다 임상 규모도 작고, 비용도 적게 들 수 있다"며 "한 단계씩 밟아가면서 실력과 자금력을 쌓는다면 현재 임상 1상 중인 YH35995에 대해 우리가 임상 3상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 따르면 전 세계 희귀질환은 총 7000여종, 환자 수는 3억5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은 5%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해외에서는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연구개발 세금 감면과 심사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등 제도를 통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들이 개발 중인 약물이 FDA의 희귀의약품 지정 제도에 포함되면 여러 혜택을 볼 수 있다"며 "또한 신약이 완성되면 최대 10년 동안 특허를 보호받을 수 있기에 도전해볼 만한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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