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신수정 기자] 안타까운 죽음이 신록의 계절에도 이어지며 보내는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강원 인제군 모 부대에서 벌어진 일을 돌아보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육군 훈련병 A씨는 '전날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얼차려를 받던 중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후송 사고 이틀 만인 지난 25일 숨졌다.
조사에 따르면 A씨 등은 무게 20~25kg가량 완전군장 상태로 연병장을 뛰는 등 군기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군기 훈련 규정상 완전군장 상태에서는 걷기만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갓 성인이 된 젊은이가 허무하게 세상을 뜨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지휘관의 역량 부족이 겹쳐 또 한 번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는 지적이 사방에서 터져나온다.
훈련병의 건강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군기 훈련 규정을 위반한 채 직접적으로 과도한 훈련을 시킨 지휘관은 그 책임을 지고 많은 비판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간 당연하게 행해진 훈련을 가장한 얼차려, 불합리한 지시 등 군대 내의 부조리를 없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이 사건의 원인이 '젠더갈등' 때문이라는 엉뚱한 주장도 나온다. 이렇다 보니 사건의 본질은 점점 흐려지고 있는 듯 하다.
해당 사건의 지휘관 성별이 여성으로 알려지자 전여옥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이 사건은 '페미니즘'이 그 속내에 도사리고 있다"며 "철저한 상명하복의 군대에서 '극렬 페미니스트의 남혐'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이번 훈련병 사건이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정치권 행보에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는 "여군은 병사 지휘를 못 하게 해야 한다" "여자가 중대장인 게 문제" 등의 반응이 확산되고 있다.
본질을 흐리는 쓸모없는 젠더갈등으로 그동안 군 지휘체계 맥락 안에서 묵과돼 온 무분별한 폭력의 문제가 다시 뒷전이 될까 걱정스럽다.
전문가들은 해당 중대장의 '성별'에 초점를 맞추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고성균 전 육군훈련소장은 지난달 31일 "성별과는 관계없이 '규정위반'과 '안일한 태도 탓'에 빚어진 일이며 전적으로 육군의 책임이다"이라고 언급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해 "피의자가 성실히 수사를 받고 피의자가 그에 합당한 법적 책임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피의자를 심적으로 압박하거나 공개적으로 망신 주는 방식이 과연 사건의 수사나 향후에 피의자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묻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인지에 대해서 물음표가 있다"고 전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여성이 상급자고 피교육생은 남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젠더갈등 이슈를 증폭시킨 요인이 있었다. 젠더갈등에 편승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막고 대응책을 논의하기보다 왜곡된 젠더혐오를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갈 우려 있다"고 밝혔다.
그간 군대 내에서의 이 같은 사건은 셀 수 없이 일어나왔다. 소중한 생명의 희생으로 다시 드러나게 된 군대 내 불합리한 폭력 문제가 해소돼 다시는 가슴 아픈 비극이 들려오지 않기를 바란다.
/신수정 기자(soojungsi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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