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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스토리텔링 하는 법] <2> 깨달음의 공간을 꾸며라


소설이나 영화에서 영웅이 깨달음을 얻는 '소명의 순간'은 장엄한 음향과 함께 갑자기 시간이 멈추면서 공간은 천상의 빛으로 환해진다. 어리둥절한 영웅은 문득 소명의 주인공이 자신인 것을 깨닫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도는 아크샷(Arc Shot), 그가 주변을 둘러보는 로테이트샷(Rotate Shot)의 공간이다.

깨달음의 순간을 찾았다면, 깨달음의 공간을 꾸밀 차례다. 스토리텔링에 성지(聖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지가 있어야 사건에서 서사(敍事)를 풀고, 서정(敍情)을 끌어내며, 성지순례로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삼국지연의'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만나 황건적이 날뛰는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의형제를 맺는 도원결의(桃園結義)의 공간인 '복숭아밭'이 필요한 것이다.

◇이정규 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왼쪽)과 허두영 라이방 대표.

미국 테크 스타트업에서 성지의 대명사는 '개러지'(garage)다. 차고(車庫)와 창고(倉庫)가 섞인 창작과 창업의 공간이다. 차고 창업의 신화는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으로 시작해서 '휴렛팩커드'(Hewlett Packard) '애플'(Apple) '구글'(Google)로 이어진다. 차고가 아니라 모텔에서 창업한 빌 게이츠는 가장 두려운 경쟁자로 '실리콘밸리 차고에 있는 두 사람'(two guys in a garage in the Silicon Valley)을 꼽기도 했다.

차고 창업이 정보통신 분야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타코타임'(Taco Time)을 창업한 론 프레드릭이 새로운 소스를 개발해 50갤런짜리 통에 부은 곳도 '양키캔들'(Yankee Candle)을 세운 마이크 키트리지가 크레용을 녹여 빈 우유 팩에 향기나는 양초를 담은 곳도 '맥라이트'(MagLite)를 설립한 앤서니 맥리카가 좀처럼 깨지지 않는 튼튼한 손전등을 처음 켠 곳도 차고였다.

낭만과 욕망의 소굴인 대학 기숙사나 궁핍하게 어질러진 자취방은 어떤가? '페이스북'(Facebook)을 편 마크 저커버그는 남학생끼리 낄낄거리는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에 투표하는 프로그램을 코딩했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게 된 브라이언 체스키는 샌프란시스코의 허름한 자취방에서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Air B&B)를 떠올렸다.

'페이스북'(Facebook)을 편 마크 저커버그는 남학생끼리 낄낄거리는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에 투표하는 프로그램을 코딩했다. [사진=픽사베이]

오가는 사람과 자동차로 붐비는 거리는 어떤가? 트래비스 캘러닉은 택시가 잡히지 않는 짜증 나는 파리의 거리에서 차량공유서비스 '우버'(Uber)를 생각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휴대용 메모리(USB)를 깜박한 드류 휴스턴은 파일공유시스템 '드롭박스'(Dropbox)를 구상했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친구와 함께 출근길에 비싼 연체료를 헐뜯다가 '넷플릭스'(Netflix)를 궁리하고, 에릭 위안은 10시간 떨어진 여자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줌'(Zoom)을 꿈꾸었다.

왁자지껄한 술집이나 한가로운 휴양지나 의료봉사단의 천막도 좋다. 젠슨 황은 친구들과 커피를 홀짝이다가 '엔비디아'(NVDIA) 창업을 결심했고, 밥 스완슨은 떠들썩한 맥주집에서 허버트 보이어 교수를 3시간 넘게 설득해서 '제넨텍'(Genentech)을 설립했다.

여자 친구에게 사진을 못 찍는다고 면박받은 케빈 시스트롬은 멕시코 휴양지에서 '인스타그램'(Instagram)을 스케치하고, 마이클 리오던은 뎅기열로 드러누운 필리핀의 의료봉사 현장에서 '길리어드'(Gilead)를 꿈꿨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해 8월 8일(현지시간) '시그래프2023'에서 연설 중인 모습. [사진=엔비디아]

깨달음의 공간이 꼭 창업하는 장소에 머물 필요는 없다. 창업을 고민하거나 결심하는 순간부터 제품 개발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순간을 거쳐 스타트업을 세우는 순간까지, 깨달음의 공간은 나름대로 의미 있게 끌어낼 수 있다.

멋진 스토리텔링을 준비하려면 창업자의 독특한 습관이나 제품의 특징이 잘 배어 나오는 곳을 찾으면 된다. 스타트업의 역사는 바로 그곳을 '깨달음의 공간'이자 성지로 꾸며가는 것이다.

◇이정규 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은 IBM, 보안회사, 테크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재단, 감리법인에서 중간관리자, 임원,대표이사, 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지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벤처창업을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프로세스/프로젝트/IT컨설팅을 강의하고 있다. 또 프로보노 홈피에 지적 자산을 널어 놓는다.

◇허두영 라이방 대표는 전자신문, 서울경제, 소프트뱅크미디어, CNET, 동아사이언스 등등에서 기자와 PD로 일하며 테크가 '떼돈'으로 바뀌는 놀라운 프로세스들을 30년 넘게 지켜봤다. 첨단테크와 스타트업 관련 온갖 심사에 '깍두기'로 끼어든 경험을 무기로 뭐든 아는 체 하는 게 단점이다. 테크를 콘텐츠로 꾸며 미디어로 퍼뜨리는 비즈니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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