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지영 기자] 작년부터 이어져 온 기업공개(IPO) 시장의 과열이 스팩까지 번졌다.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한 스팩이 증시에 상장된 직후 100~200% 오르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단기 차익을 노리고 몰려든 기관 투자자들로 인해 스팩의 기관 경쟁률이 두 달째 1000대 1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증권스팩12호는 지난 17, 18일 양일간 진행된 기관 수요예측에서 경쟁률 1189.41대 1을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에 기관 수요예측을 마친 HD현대마린솔루션(201.13대 1)과 코스닥 입성을 앞둔 코칩(988.32대 1)과 비교해도 스팩의 경쟁률은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네 자릿수를 넘나드는 스팩의 수요예측 경쟁률은 작년 7월 이후 6개월 만에 다시 투자 과열 구간에 진입했다. 작년 7월 당시 한 달간 1000대 1을 넘는 경쟁률을 보이다 소폭 가라앉았다. 그러나 올해 IPO 열풍이 지속되자 스팩으로 열기가 번진 것이다.
2월부터 현재까지 기관 수요예측을 실시한 스팩 중 비엔케이스팩2호, 유안타스팩15호를 제외하고 9개(유진스팩10호, SK증권스팩11호, 하나스팩31호, 하나스팩32호, 신한스팩12호, 신한스팩13호, 하나스팩33호, 유안타스팩16호, SK증권스팩12호)의 스팩이 1000대 1을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이 중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스팩은 신한스팩13호로, 1337.88대 1을 기록했다.
스팩은 인수합병(M&A)을 위해 상장하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다. 스팩을 상장해 모은 자금으로 비상장회사를 찾아 인수하거나 서로 합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비상장회사를 찾기 전까진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공모주 과열 분위기가 스팩까지 넘어가자 실체 없는 회사에 기관과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스팩의 기관 경쟁률이 1000대 1을 넘어가며 상장 당일 공모가 대비 2배 뛴 4000원에 시초가를 형성하고 최대 6000원까지 상승하는 현상이 비정상적이라고 진단했다.
배승욱 벤처시장연구원 대표는 "자산 운용 실적이 뛰어난 투자사를 담았으면 뜨거운 투자 열기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간 벤처업계는 대부분 상장으로 자금을 회수했다.최근엔 일반 상장도, 기술특례상장도 어려워져 자금이 막혀 있는 '돈맥경화'"라며 "그러다보니 벤처업계에서도 우회상장 비슷하게 자금 회수를 시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도 "현재 공모주 시장은 좋은 것을 넘어서 과열에 가깝다"며 "올해 상장한 기업 전부 다 공모가 예상 밴드를 상단 초과했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스팩 수요예측 경쟁률이 심해진 것도 공모 투자의 광풍이 스팩까지 번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업계에선 갈 곳 잃은 운용사, 연기금의 자금이 결국 공모주, 스팩 투자 과열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본다. 올해 가장 기관 경쟁률이 높았던 신한13호스팩의 경우, 수요예측에 1870곳의 기관이 참여했는데, 확약을 건 곳은 1곳뿐이었고 이마저 1개월 확약을 약속했다. 나머지 1869곳이 미확약을 신청했다. 실체 없는 회사에 투자해 많은 물량을 확보한 뒤 상장 당일 매도하겠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공모 시장이 워낙 과열되다 보니 대다수의 기관이 단기 차익을 노리고 청약에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작년 6월 IPO 제도 개편 이후 기관에서 아무리 높은 가격을 써내도 그 가격에 사려는 수요가 있으니 시장이 자정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공모 규모가 큰 기업에서 '공모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사례가 나와줘야 시장의 거품도 꺼질 것"이라며 "상장 당일 공모 수준에서 큰 움직임이 없으면 인식도 변화면서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영 기자(jy1008@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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