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화약은 8세기 무렵 당나라에서 처음 군사용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661년 고구려와 신라의 아차산성 전투를 근거로 화약을 사용한 무기가 중국보다 적어도 1세기 먼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옛날에는 화약에 의해 생겨나는 불을 ‘번개’‘벼락’‘별’ 등으로 묘사했다. 화약무기의 구조 및 작용 원리를 ‘신술’‘신법’ 등으로 표현했으며, 화약무기를 ‘신기’라고 불렀다. 옛 기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러 문헌에 비슷한 내용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661년 아차산성 전투에 등장한 ‘벼락같은 빛’(光耀)은 화약 형태 무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만 해도 화약 기술이 높지 못해, 살상력보다는 특유의 폭발적인 소리 때문에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데 유용했을지 모른다.
설령, 완전한 화약무기가 아니더라도 김유신 장군은 ‘그리스의 불(Greek Fire)’처럼 인화성이 강한 연소체를 대형 노포를 사용해 발사했을 수 있다. 염초, 인, 나프타 등과 황의 화합물은 인화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신라 경주 근방에는 유황과 인화성이 강한 토탄(土炭)이 풍부했을 것으로 보이는 증거가 많다.
황은 고대로부터 유황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황을 태워 그 연기로 소독하는 데 사용됐다. 약용과 화약 재료로 널리 쓰였다. 황철석 형태도 있지만, 보통 화산지대에서 많이 채취한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 썼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조정에 군수품으로 유황을 지원해 달라는 장계를 올리기도 했다. 유황은 귀하고 값이 비싸, 왜란 이후에 일본과의 밀무역이 성행했다.
조선 인조 때 경상좌수사를 역임한 이의립(1621~1694)은 유황과 무쇠를 찾는 데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유황 산지를 발견했는데, 바로 토함산 줄기 만호봉이었다. 당시 병자호란이 일어난 지 50년밖에 안 되었고, 철과 유황은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숙종은 상으로 울산 달천 철광산을 하사했다. 그는 조선의 철강왕으로 불린다. 경주에서 단석산(827m) 다음으로 높은 산인 토함산(746m)은 경주의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신라 시대 오악 중의 동악(東岳)이다. 만호봉(522m)은 이 토함산의 북서쪽 봉우리다. 경주 주변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화산암의 분포지다. 화산 폭발로 인해 생긴 만호봉에는 지금도 화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1500년 전 신라 토함산은 활화산이었다
토함산은 화산이다. 토함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머금고 있는 것을 토해내는’ 화산이었음을 뜻한다. 화산으로 용암을 뿜어내는 활화산일 때는 토함산이 되지만, 휴화산일 때는 토(吐) 하지 않기 때문에 함산(含山) 이 바뀌었을 것이다. 토함산은 이미 과거에 화산이 폭발했던 휴화산이라는 이야기다.
'삼국사기'에는 ‘609년 (26대 진평왕31) 정월에 모지악(毛只嶽) 산의 땅이 타서 넓이가 4보요, 길이가 8보 깊이가 5척이었고, 10개월 후 10월 15일에 이르러 꺼졌다’는 기록이 있다. 화산이 폭발해 10개월 동안 분화구에서 용암을 토해 낸 것이다. 또 ‘657년 (29대 태종무열왕4) 7월에 토함산 동쪽의 땅이 타서 3년 만에 꺼졌다’는 등의 화산 기록이 있다. 이 두 기록은 일반적인 산불이 아니다. 땅의 이상 현상에 의한 연소 내지는 가스 분출을 의미하는 것으로 무척 중요하다.
11세기 무렵 고려 조정은 전국 각지에서 날아드는 지진 발생 소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1002년과 1007년(현종10) 제주 한라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킨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그중 유독 경주 일대는 지진 발생 빈도가 높았다. 국내 지질학계 연구에 의하면 토함산을 포함한 경주-울산을 잇는 ‘울산 단층’은 지진 활동이 활발한 국내 대표적인 ‘활성단층’ 지대로 꼽힌다.
고려 때까지 경주 인근에는 무려 60여 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1024년과 1036년, 1038년 연이어 불국사 석가탑을 중수한 원인도 지동(地動)으로 인한 붕괴, 즉 지진으로 밝혀졌다. 지진과 화산은 형제지간이나 마찬가지다. <삼국유사>나 <고려사>에서도 토함산의 화산 활동과 경주 근방의 지진을 여러 차례 기록하고 있다.
◇ 토함산 북쪽 만호봉에서 발견된 화산석
현재 만호봉 정상 주변에는 화산석이 산재해 있다. 마그마가 가스 형태로 분출하다가 급하게 식어서 생긴 돌이다. 해발 470m부터 정상부까지 봉우리 전체에 널린 거품 돌 표면에는 소금을 뿌려 놓은 듯이 미세한 수정체가 가득 붙어 있어 햇빛에 반짝인다. 20세기 초반까지 벌목 운반차량을 동원해 정원석으로 쓸 큰 돌들을 반출하면서 조금씩 알려졌다.
이 거품 돌은 609년 ‘모지악의 땅이 타서 10개월 만에 꺼졌다’와 657년 ‘토함산 동쪽의 땅이 타서 3년 만에 꺼졌다’는 '삼국사기' 기록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다. 제주도 이외에 이런 부석을 볼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토함산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결국 만호봉에 있었다. 1500년 전 신라 토함산은 분명하게 활화산이었다.
한편 포항의 옛 지명 흥해는 신라의 퇴화군(退火郡)이었다. 불이 물러간 고을이란 뜻이다. 태곳적부터 종종 분출되는 가스로 불길이 솟구쳤던 지역임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포항 북구 신광면의 신광(神光)이라는 지명 유래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영남 영해부 송현(松峴)에서 땅 불(地火)이 발생해 유황냄새가 나고, 최대 6년에서 수개월씩 계속됐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세종·성종·중종·현종·경종실록 등에도 비슷한 현상이 실린 것을 볼 때,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고 자주 발생했던 것 같다. 실제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와 영해면 벌영리·성내리를 이어주는 송현 고개에서는 일제강점기 토탄(土炭; 땅속에 묻힌 지 오래되지 않아 완전히 탄화하지 못한 석탄)을 채취했다. 지금도 간간이 남은 토탄이 출토된다.
◇ 우리나라가 로켓 종주국?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북한이 ‘우리나라는 로켓 종주국’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지난 2005년 5월 3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민족이 일찍이 화약을 이용한 로켓 병기 제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며 “일찍이 삼국 시기에 벌써 로켓 무기가 제작돼 사용됐다”라고 말했다. 중앙통신은 “당시의 로켓은 오늘의 현대적인 기관을 가진 로켓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 원리는 같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 ‘(삼국사기 등에 나오는) ‘벼락같은 빛’(光耀)과 같은 분사추진식 무기가 제작돼 661년 북한산성 싸움에서 위력을 과시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15세기 초에는 다단계 로켓의 시조 격인 ‘신기전’도 개발됐다고 말했다.
고려 시기에 들어와 실제 화살에 달린 약통에 불을 붙여 쏘는 방식인 화전이 실전에 사용됐다. 북한 중앙통신은 “로켓의 모든 속성을 갖춘 세계 최초의 로켓들은 조선 민족의 슬기와 창조적 재능, 애국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유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661년 아차산성 전투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기록임이 틀림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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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곤 대표 22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지곤폭죽연구소를 창업해 30대 시절 한국 대표 불꽃연출가로 활동했다. 독도 불꽃축제 추진 본부장을 맡아 활동 하면서 본인과 세 자녀의 본적을 독도로 옮긴 바 있으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괌 불꽃축제, 하와이 불꽃축제 감독을 맡았다. 지금은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강일 기자(ki0051@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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