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권용삼 기자] 애프터서비스(AS) 지연으로 최근 한국 시장에서 비판을 받은 영국 가전기업 다이슨이 '72시간내 무상수리'를 앞세워 고객 달래기에 나섰으나, 반쪽짜리 대책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내놓은 해결책이 '헤어케어' 제품에만 한정돼 있어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다이슨은 지난 22일 고객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보증기간(2년) 내 제품 무상 수리 혹은 교환·환불을 해주겠다는 AS 정책을 내놨다. 또 한국에서 지연되는 수리를 이달 말까지 모두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헤어케어 AS 정책 시행"…청소기·공기청정기 뺀 '미봉책'
하지만 다이슨이 내놓은 사과문에는 교묘한 허점이 있다. 다이슨이 발표한 내용에는 최근 많이 지적된 헤어케어 제품에 대한 AS 언급만 있을 뿐 청소기, 공기청정기 등 다이슨이 선보이고 있는 다른 제품에 대한 것은 빠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과문에서 다이슨은 "한국 소비자들이 AS 과정에서 겪은 불미스러운 지연 사태를 즉각 해결하고 고객의 불편을 줄이는 보다 강화된 AS 정책을 도입할 것"이라며 "한국 고객들의 프리미엄 헤어케어 제품 경험과 지속적인 제품 만족을 위해 강화된 AS 정책을 시행하고, 모든 헤어케어 제품 고객에게 약속된 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만 밝혔다.
다이슨이 이처럼 나선 것은 최근 한국소비자연맹의 발표 영향이 컸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다이슨 관련 불만 신고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7% 증가한 총 864건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특히 AS 불만이 62%(538건)로 가장 높았다. 이어 △품질 불만16%(142건) △계약해지 불만 8%(70건) △계약불이행 6%(55건) △표시광고·안전·가격 등 기타불만 7%(59건)순으로 나타났다.
품목별 신고 건수를 살펴보면 다이슨의 대표 상품인 헤어기기 관련 불만이 572건(66%)으로 가장 많았다. 청소기 181건(21%), 공기청정기 65건(8%), 기타 46건(5%) 등이 뒤를 이었다. 헤어기기는 전원불량으로 인한 신고가 많았다. 청소기는 급격한 배터리 소진으로 인한 작동 시간 부족, 공기청정기는 소음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AS의 경우 구입한 지 짧게는 수개월 길어도 2∼3년이 채 안 된 제품임에도 고장 났을 때 부품 수급이 제때 안돼 수리가 장기화하는 사례가 많았다. 소비자연맹에 따르면 다이슨은 제품을 판매하면서 부품이 없어 수리를 못할 경우 리퍼 제품으로 교체해 준다고 안내해왔다. 하지만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부품이 없다는 핑계로 수개월을 기다리게 한 뒤 일방적으로 사후관리 정책을 변경해 할인쿠폰을 제공하거나 소액 보상하는 식으로 대응한 사례가 많았다. 사실상 할인을 미끼로 재구매를 유도한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도 다이슨은 국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헤어케어 제품만 AS 대책을 내놨다. 청소기, 공기청정기, 가습기 등은 삼성, LG 등에 밀려 헤어케어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지 못해 보급률이 낮은 탓으로 보인다.
특히 무선청소기의 경우 다이슨은 2016~2017년까지 약 90% 점유율을 차지했으나, 지난해에는 10%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품질, AS, 높은 가격 등의 문제로 소비자들에게 점차 외면 받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제품 내구성을 두고 국내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문제가 됐다. 지난 2019년에는 미국 최대 소비자 전문평가지인 컨슈머리포트가 다이슨 제품의 5년내 고장률이 무선청소기 브랜드 중 가장 높았다고 분석하며 추천 리스트에서 제외시킨 후 현재까지도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다이슨이 이번에 헤어케어 제품만 AS 정책을 내놓은 것은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며 "그간 AS 문제를 두고 소비자들의 불만이 계속 제기됐음에도 '나몰라라'식으로 방관하다가 최근 헤어케어 제품이 잘 판매되고 있던 상황에서 문제가 확산되자 보여주기식으로 대책을 내놓고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습"이라고 일침했다.
그러면서 "무선청소기, 공기청정기 등 다른 제품은 헤어케어 제품에 비해 소비자들이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을 노리고 AS와 관련해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도 문제"라며 "결국 한국 소비자를 여전히 '봉'으로 여기는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019년에 내놓은 '72시간내 AS'…"공약 이행 여전히 안돼"
업계에선 다이슨이 이번에 내놓은 AS 대책에 대해 여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앞서 지난 2019년에도 청소기 AS 문제가 발생해 '72시간내 AS'에 나서겠다고 말했지만, 최근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소비자연맹이 이번에 발표한 자료에서도 헤어케어 다음으로 청소기 AS 문제가 많다는 수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2020년 4월 홈쇼핑을 통해 다이슨 청소기를 구매했다는 권 모씨는 "구매한 지 두달만에 청소기 밑부분 롤러 마개가 빠지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빠질 때마다 다시 끼워서 사용했다"며 "플라스틱 마개마저 잃어버리면서 아예 청소기를 사용할 수 없게 돼 AS를 요청하자 부품이 없어 대기해야 한다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다이슨 측은 '72시간 내 AS'를 강조했지만, 72시간이 의무가 아닌 목표라고 주장한 바 있다. 소비자들은 실제로는 AS 대기 시간이 720시간이 넘는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청소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최근에도 여전했다. 다이슨 청소기를 구매한 한 소비자는 "1년도 안된 청소기가 먼지가 많이 끼었다고 작동이 안됐다"며 "2년 무상 AS라 보냈더니 소비자 과실로 유상처리되고, 부품 교체한 후 수리 비용 2만원까지 받아 황당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도 다이슨 측은 헤어케어 제품에 비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이번 발표에서 청소기 AS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다이슨 측은 "공기청정기 및 청소기 제품군에 대한 AS 서비스 정책의 경우 기존과 같이 2년의 무상 품질보증기간을 제공한다"며 "품질보증기간(2년) 이후에도 추가 2년 동안 유상 수리 서비스 또는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제품 사용 기간 만큼의 감가상각 처리 후 환급을 도와주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이어 "기존 정책 외에도 다이슨은 고객들이 양질의 AS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혁신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고, 한차원 높은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내 진출 이후 계속 지적됐던 소비자들의 문의에 대응할 콜센터 인력, 서비스 센터 부족 등을 개선하겠다는 구체적 대책도 내놓지 않아 '미봉책'에 불과하단 지적이 많다. 특히 다이슨 서비스 센터 수는 2018년 50개에서 올 상반기 기준 52개로, 이번에도 이를 더 늘리겠다는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문제만 일단 막아보자는 식으로 제일 잘 팔리는 헤어케어 AS만 언급했다는 점이 아쉽다"며 "다이슨이 특정 제품이 아닌 AS 정책 전반에 대한 개선에 나서야 할 뿐 아니라 이번에 공약한대로 얼마나 '72시간 내 무상수리' 대책을 잘 이행할 지도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몇년 전에도 내구성이 좋지 않은 탓에 잦은 청소기 고장과 수월치 않은 AS 문제가 논란이 되자 대책을 내놨지만 땜질식에 불과했다"며 "이번에도 크게 개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韓서 '스타일러' 잘 팔리자 가격 인상 잦아…수익은 英 본사에 '올인'
다이슨이 AS 문제는 소홀히 하고 있는 반면 '프리미엄'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국내에서 유난히 제품 가격을 자주 인상하고 있다는 점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실제로 다이슨은 지난해 1월 '에어랩 멀티 스타일러' 가격을 기존 59만9000원에서 64만9000원으로 5만원 올렸다. 6개월뒤인 같은 해 7월에 또 다시 5만원을 올렸다. 올해도 3월 1일에 한 차례 더 인상해 현재 74만9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 2018년 첫 출시된 이 제품의 출시 당시 가격은 53만9000원이었다.
또 다른 인기 상품인 드라이어 제품 '슈퍼소닉'의 가격도 잇따라 올렸다. 이 제품의 가격은 지난해 1월 46만9000원에서 49만9000원으로 3만원 인상됐다. 올해 3월부터 54만9000원으로 판매되고 있다.
덕분에 다이슨코리아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다이슨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21.9% 늘어난 6739억6218만원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IT 업계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벌어들인 수익은 대부분 영국 본사로 흘러 들어갔다. 다이슨코리아는 지난 2020년 감사보고서를 공개하기 시작한 이래 지난해 첫 배당금을 보냈는데, 금액은 590억원에 달했다. 이 탓에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무려 69.8% 줄어든 197억7709만원으로 집계됐다.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1% 오른 787억7709만원이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것에 비해 기부는 굉장히 인색했다. 다이슨코리아의 지난해 기부금은 1억876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5% 줄였다. 2021년 기부금도 1년 전에 비해 14.3% 줄인 2억950만원에 불과했다. 기부금 규모가 쥐꼬리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이슨이 가격 인상, AS 정책 등에 대한 논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헤어기기에서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없었다는 점에서 배짱 영업에 나섰던 듯 하다"며 "다이슨 제품 AS를 맡길 때 1~2개월이 소요된다거나, 제품을 새로 구입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해 사설 업체를 찾는 소비자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청소기뿐 아니라 헤어기기에서도 샤크, 유닉스 등 다이슨 스타일러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들이 저렴한 가격에 쏟아지면서 다이슨의 입지도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라며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AS 문제뿐 아니라 가격 인상 등 여러 측면에서 다이슨이 보여줬던 성의 없는 태도에 소비자들도 실망감을 느끼고 돌아서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공동=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권용삼 기자(dragonbu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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