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을 사실상 철회한다는 정부 발표 다음날. 누리다온 직원 11명 전원이 회사를 그만뒀다. 누리다온은 우뭇가사리를 이용해 친환경 종이빨대를 만드는 업체다. 정부 발표 이후 대형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주요 거래처 대부분이 거래 중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남은 건 일회용품 규제가 본래대로 시행될 것에 대비해 미리 생산해 둔 물량 뿐이다. 지금은 어떻게 처리할 방도가 없는 '악성 재고'가 됐다.
누리다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1개 종이빨대 업체로 구성된 '종이 빨대 생존 대책 협의회(가칭)'는 회원사의 현재 종이 빨대 재고량이 약 1억4000만개에 달한다고 토로했다. 협의회 미참여 업체까지 포함하면 재고량은 약 2억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회원사 기준 종이빨대 월 생산량은 약 2억7000만개. 하지만 현재는 생산 기계 가동을 멈춘 상태다.
이들은 카페 등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하겠다는 정부 약속만 믿고 설비를 구해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직접 환경부를 찾아 다시 한번 '무조건 시행하겠다'는 확답을 받기도 했다. 누구보다 정부 방침을 성실히 따르며 준비했는데, 정책이 180도 뒤집히면서 사업이 사실상 망할 위기에 처한 셈이다.
뒤늦게 종이빨대 업체들의 고충이 알려지자 정부는 "업계가 받을 타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주요 정책을 수정하면서 이에 따른 관련 업계의 예상 피해 범위조차 제대로 추산하지 못했다니, 기가 찰 일이다. 종이빨대 업체들은 구체적인 피해보상 범위나 지원 방안 등에 대한 논의 진척이 전혀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관련 보도에 달린 일부 댓글을 보면 씁쓸하다. "정부 정책 믿고 사업한 게 바보"란다. 정부 정책과 법령에 맞춰 사업자금을 투자한 기업을 두고 바보라고 놀리는 저급한 수준이 놀라울 뿐이다. 종이빨대 업체 관계자들 역시 정부를 믿은 것이 후회된다며 "다신 믿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자연히 장기적인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 악순환이다. 정책 번복으로 피해를 입게 된 업체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마련하길 바란다. 정부가 신뢰를 저버리면, 국민은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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