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정민 기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사 탄핵,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낙마 등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사법통제(司法統制)'를 이어가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에는 윤 대통령이 지명한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정조준하고 있다.
현직 헌법재판관, 문재인 정부 시기 임명 이력 등이 이종석 후보자 임명 통과의 이점으로 꼽히고 있지만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 보수 성향 등을 이유로 이 후보자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내부는 연이은 '사법갈등' 구도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대통령실 "李, 실력과 인품"…野 "尹 동기, 너무하다"
앞서 윤 대통령은 내달 10일 퇴임하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의 후임으로 지난 18일 이종석 후보자를 지명했다. 현재 헌법재판관인 이 후보자는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으나 연임이 가능하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실력과 인품을 갖춘 명망 있는 법조인", "법치주의 실현과 사법행정능력도 검증됐다"며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후보자 지명 직후부터 불편한 기색을 표출했다. 우선 '대통령의 법대 동기'라는 이유가 크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아무리 친분이나 인연을 인사 기준으로 삼아왔다고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며 "(대통령은) 공사 구분이 되지 않느냐(18일 브리핑)"고 직격했다. 앞서 민주당이 이균용 전 후보자를 낙마시킨 이유 중 하나도 이 전 후보자와 윤 대통령의 친분(서울대 법대 선후배) 논란이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제대로 된 인사를 국회에 보낼 생각은 않는다"고 꼬집었다.
홍 원내대표는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 조건으로 △사법부 독립을 지킬 수 있는 인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제시한 바 있다. 앞서 민주당이 이균용 전 후보자를 낙마시킨 주요 이유는 △비상장주식 재산신고 누락 정황 △성범죄 판결 감형 이력 △뉴라이트 역사관 의혹 등이었다.
◇2018년에도 '진통'…공수처·검수완박도 '반대'
일각에서는 이종석 후보자가 현재 헌법재판관이며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국회 임명동의를 통과했다는 점을 들어 이 후보자의 임명 청신호를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헌법재판관 임명 당시 정황을 보면 변수는 남아있다.
이 후보자는 당초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였다. 그런데 한국당이 청문보고서 채택과정에서 민주당이 추천한 김기영 재판관을 '국제인권법연구회(법원 내 진보 성향 학술단체)' 이력을 이유로 반대하자, 민주당이 이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을 근거로 반대 맞불을 놨다. 결국 당시 바른미래당의 중재로 이영진 후보자(바른미래당 추천)와 함께 김기영·이종석 재판관 모두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통과했다.
이 후보자의 '보수 성향'도 민주당이 임명을 탐탁지 않아 하는 요소다.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재임 중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반대 의견, 2020년 '전두환 추징법' 위헌(반대) 의견, 2021년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위헌 의견 등 민주당·진보 성향과 꾸준히 맞서는 행보를 보였다. 올해 3월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에서는 검수완박법의 입법 절차가 위법하다(권한침해)는 의견도 냈다. 이 후보자는 민주당이 주도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의 주심(主審)을 맡기도 했는데 헌법재판소는 지난 7월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을 기각했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20일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자의 판결 이력을 보면 우리 당에 반대한 길을 걸어온 건 확실하다"며 "후보자가 우리가 생각하는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기준에 맞는지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2018년 당시 인사청문위원이었던 제윤경 전 민주당 의원은 청문보고서에서 "(위장전입 의혹 등) 재판관으로서 다소 부족하다"면서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재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 사법부의 독립성은 어떠한 이유로든 훼손해서는 안 되는 점을 표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與 "생산적 검증 요청"…'차분한 청문회' 전망도
이 후보자가 18일 지명됨에 따라 곧 국회에서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실시될 예정이다. 국회 일정상 국정감사가 끝나는 이달 27일 이후 계획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인사청문요청안이 넘어오면 바로 청문회 준비 절차를 하지 않겠느냐"며 "아직 내부 논의된 바는 없지만 특별히 미룰 이유도 없다"고 전했다. 여당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신상 털기식 흠집 내기가 아닌, 국익을 위한 생산적인 정책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야당에 협조를 요청한다(19일 논평)"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은 이종석 후보자의 도덕성과 역량을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에 이어 이 후보자까지 낙마시킬 경우 부담도 염려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난 검수완박 이후 민주당과 검찰, 사법부의 갈등이 꾸준히 부각됐다. 일반 국민은 물론 내부적으로도 피로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균용 전 후보자 청문회보다는 다소 차분한 분위기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이 대법원장에 이어 이 후보자 낙마를 노릴 경우 이재명 대표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이 대표가 지난 6일부터 '대장동·성남FC 의혹' 공판 등 다수의 법원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 민주당의 강경 기조가 법관을 상대하는 이 대표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친명계(친이재명계)는 일단 '상관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한 법조인 출신 친명계 인사는 "이 대표 재판과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임명과의 상관관계는 별로 없다고 본다"며 "이 대표는 재판과 정무(政務)를 연관시킬 생각이 없다. 이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 대로 (재판을) 소화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19일 이 대표가 오는 23일 당무에 복귀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 대표는 검찰 출석이든 법원 출석이든 성실히 임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일 통화에서 "민주당도 여론 역풍을 경계하며 수위를 조절할 것이고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장 통과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며 "민주당은 헌법재판소장 보다 오히려 새 대법원장 후보자에 촉각을 세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부터 4박 6일간 중동 순방(사우디, 카타르 등) 이후 새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이균용 전 후보자 낙마 사태를 계기로 대한변호사협회 추천 후보자에 무게를 둘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정민 기자(pjm8318@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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