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여전히 반지하에 살고 있어요. 지상층으로 이사를 할 여건이 되지 않으니까요."
지난해 8월 발생한 반지하 침수 참사 약 1년이 돼가고 있으나 열악한 주거여건 그대로 방치된 가구가 태반인 것으로 나타났다.올해 본격 장마철을 앞둔 가운데, 서울 반지하주택 중 주거이전이 완료된 곳은 1% 정도에 불과하다.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된 침수 우려 반지하주택은 40% 수준에 그쳤다.
14일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 풍수해 대책 추진사항'에 따르면 반지하주택 중 1천280가구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 지상층 이주 시 월 20만원을 지원하는 반지하 특정 바우처 지급은 970가구에 대해 진행됐다. 서울시내 전체 반지하주택 23만 가구 중 1%가 안 되는 2천250가구(0.9%)에 대한 주거이전이 이뤄졌다.
침수방지시설 설치 실적도 전체 대상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서울시가 반지하주택 23만호 중 1만5천543가구를 대상으로 물막이판과 역지변(역류방지기)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추진했고, 지난달 말까지 모두 6천310가구(40.6%)에 대한 설치가 완료했다.
시는 시설 설치 시 현장조사와 대상가구의 동의가 필요한데, 연락이 끊기거나 동의가 이뤄지지 않아 설치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는 이달 말까지 1만320가구에 대한 설치를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반지하주택 매입 속도도 더디다. 현재까지 2천584가구가 매입을 신청했지만, 이중 매입계약이 완료된 주택은 98가구에 그쳤다. 올해 목표치가 5천250호가구인 점을 고려했을 때 2% 정도만 매입이 완료됐다.
◆'반지하 철퇴'에도 연립·다세대 거래는 진행 중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반지하 퇴출'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음에도 반지하 임차거래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집중호우로 신림동 반지하에서 살던 장애인 가족 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고 많은 이들이 침수 피해를 겪었지만, 여전히 반지하를 찾는 수요에 맞춰 거래가 이뤄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만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 연립·다세대 주택에서 임차거래된 반지하 물량은 전세 1천623건, 월세 1천188건으로 집계됐다.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난 지난해 8월 서울 연립·다세대 기준 257건의 반지하 임차거래가 이뤄졌고, 같은 해 9월 268건, 10월 337건으로 늘어나다 11월 301건, 12월 200건으로 점차 감소했다.
올해 1월에는 156건, 2월 199건, 3월 181건, 4월 135건, 5월 95건의 반지하 임차계약이 맺어졌다. 수치상 서울 연립·다세대의 반지하 거래 건수는 점진적으로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반지하 매물을 찾는 서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용 부담 큰 서민들 "그래도 반지하 없나요?"
서울시와 정부가 지난해 폭우를 계기로 반지하주택 폐지 및 지상층 이주 대책을 내놨지만,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사회초년생, 대학생 등 서민층 위주로 여전히 반지하를 찾는 분위기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가 지난 3월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월세를 분석한 결과 보증금 1천만원 기준 원룸 평균 월세는 59만6천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51만7천원보다 15.14% 오른 수치다.
원룸 월세마저 치솟자, 조금이라도 주거 비용 부담을 낮춰야 하는 서민들 입장에선 반지하가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실제 일선 중개업소에서도 비용 부담 때문에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하는 서민들이 여전히 많다고 전했다.
관악구 일원에서 25년간 중개업소를 운영해온 G부동산 대표는 "이 일대는 사회초년생이나 학생들이 많아 연립·다세대 매물이 유독 많은데 최근 지어진 빌라 포함 반지하 방이 없는 곳이 매우 드물다. 지금 시장에 나온 반지하 매물도 넘쳐난다"며 "지난해보다 거래 건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비용 부담 때문에 반지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반지하 살고 싶어서 살겠냐, 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악구 일대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해 인근에서 발생한 반지하 침수 참사 사건 이후 우리도 굳이 반지하 매물을 소개하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보증금과 월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먼저 반지하 매물을 보여달라고 하는 고객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표적으로 한 연립·다세대 기준 지상으로 올라오려면 보증금 1천만원, 월세 50~60만원부터 시작한다. 기준으로 제시한 지상 매물은 심지어 최저 마지노선인데 관리비도 고려해야 한다"며 "반면 반지하 매물은 보증금 100만원대부터 시작하고, 월세도 보증금 규모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적어도 20~30만원을 아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는 올해부터 민간임대주택 추가 물량을 확보하고 현행 매입임대주택 공급 규정을 15%에서 30%까지 확대해 물량 확보에 나선다고 밝혔다. 한병용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올해 목표량에 달성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며 "LH공사에서도 반지하주택 공공 매입에 참여하도록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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