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 든 가운데 올해 6월 등장할 예정인 애플의 첫 혼합현실(Mixed Reality·MR) 헤드셋이 분위기를 반전 시킬 지 주목된다. 애플이 그동안 스마트폰 시장에서 역량을 보여줬던 만큼 MR 헤드셋으로 메타버스 시장의 본격 개화를 이끌어 갈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면서 이미 제품을 출시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뿐 아니라 삼성전자도 기대감을 높이는 분위기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오는 6월 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WWDC(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수 년간 준비해 온 MR 헤드셋을 공개할 예정이다.
애플이 매년 개최하는 WWDC는 애플의 최대 연례 개발자 행사로, 애플은 이 자리에서 새로운 제품을 공개하거나 차세대 iOS 기능 등을 공개해 왔다.
이번에 공개되는 MR 헤드셋의 이름은 '리얼리티 원' 또는 '리얼리티 프로'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2014년 '애플워치' 출시 후 약 10년 만에 애플이 내놓는 새로운 형태의 디바이스 폼팩터(기기 형태)다.
MR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의 장점을 혼합한 기술로, 기존 VR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반투명 렌즈를 통해 AR처럼 현실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리얼리티 프로'는 신형 맥북에 들어가는 'M2' 칩과 혼합현실 전용 칩인 '리얼리티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기기 외부·내부에 10개 이상의 카메라, 8K(7천680x4천320) 해상도(한 렌즈당 4K) OLED 디스플레이 등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품은 애플의 OS인 iOS 기반의 새로운 확장현실(XR) OS가 적용되고, 페이스타임, 애플북 독서, 게이밍경험 등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iOS 애플스토어에서 제공 중인 앱들도 함께 연동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애플은 가상현실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헤드셋용 애플 북스 버전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헤드셋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앱, 차분한 그래픽과 사운드, 보이스 오버를 통해 명상을 할 수 있는 명상 앱도 준비 중이다. 피트니스+ 앱을 통해선 가상현실 환경에서 피트니스+ 강사를 보면서 운동할 수 있다.
더불어 애플은 메이저리그(MLB), 미국프로축구(MLS)를 가상 현실 환경에서 볼 수 있는 전용 TV 앱을 비롯해 가상 회의실을 사용하는 헤드셋 전용 페이스타임, 가상현실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할 수 있는 프리폼 협업 앱도 개발 중이다. 손·눈 트래킹을 통해 XR 경험을 고도화하고, 이를 아이폰의 지문 인식처럼 사용자 인증에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가격은 3천 달러(약 396만원)에 책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아이폰14 프로'보다 2배가량 비싼 가격이다.
애플 전문 분석가인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발표는 AR·VR 헤드셋 시장의 마지막 희망"이라며 "기존 소니, 메타 등에서 출시한 헤드셋 제품은 매력적인 소프트웨어가 부족해 제품 보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관련 시장은 최근 침체를 겪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NPD그룹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해 VR 헤드셋 판매량은 전년보다 2% 줄었고, 전 세계적으로는 AR 헤드셋과 함께 12% 이상 판매량이 감소했다. 시장분석업체인 CCS인사이트 조사에서도 VR 헤드셋과 AR 헤드셋의 지난해 전 세계 출하량은 960만 대로 전년 대비 12% 감소했다.
이처럼 시장 상황이 악화되자 메타버스에 공을 들였던 기업들은 잇따라 포기하는 분위기다. 2021년 사명까지 '페이스북'에서 바꾼 '메타'는 지난해 11월 이후 2만 명 이상을 해고하는 계획을 밝혔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메타버스 부문 직원이었다. 글로벌 콘텐츠 기업 월트디즈니는 최근 메타버스 전략 부서를 해체했고, MS도 최근 가상현실 작업 공간 프로젝트인 알트스페이스VR(AltspaceVR) 서비스를 중단했다.
소니는 올해 플레이스테이션 VR2 헤드셋의 생산 계획을 약 20%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MR 헤드셋 브랜드 피코(Pico)의 지난해 출하량은 당초 예상보다 40%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식은 것은 메타버스에서 인공지능(AI)으로 시장의 관심이 옮겨갔기 때문"이라면서도 "과거 '애플워치'가 첫 발매 시기에는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광범위하게 보편화된 것처럼, 애플이 '리얼리티 프로'로 MR 기기의 대중화를 이뤄내 메타버스 관련 시장을 키워갈 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팀 쿡 애플 CEO는 미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MR 기기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팀 쿡은 "사람들이 의심했던 분야에서 애플은 성공을 거둬왔다"며 "구글과 메타의 가상현실 제품과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의 움직임에 맞춰 이미 시장에 진입한 메타, 소니 등도 올해 대응에 나섰다. 소니는 지난 2월 신형 VR 기기 '플레이스테이션 VR2'를 출시했으나, 첫 달 판매량은 27만 대에 그쳐 기대보다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메타는 올해 말 신제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참전'을 예고한 상태다. 앞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2월 말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 2022에서 "메타버스 플랫폼 기기가 요즘 화두"라며 "삼성전자도 잘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달라"고 밝혔다. 또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는 메타버스와 로봇을 신성장 사업으로 꼽고 "고객이 언제 어디서든지 메타버스 경험을 할 수 있게 최적화된 메타버스 디바이스와 솔루션을 개발하겠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올해 2월 '갤럭시 언팩' 행사에선 구글, 퀄컴과 함께 XR 삼각 동맹을 선언하며 차세대 XR 사업에서의 협업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퀄컴은 '칩셋 설계력', 구글은 AR 글래스 등을 만들고 운영체제(OS)와 생태계를 만든 '노하우',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등 기기 '제조 능력'을 강점으로 지니고 있어 서로 시너지를 낼 것이란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MX사업부에 관련 조직을 만들고 거래처들과 신제품 양산 논의에 나선 상태지만, 구체적인 제품이나 플랫폼 출시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 사장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건 한 회사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며 "큰 의미에서 XR 생태계를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애플에 이어 삼성전자·퀄컴·구글의 삼각동맹이 시장에 참가하면 XR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에 따르면 세계 XR 관련 시장 규모는 2025년 540조원에서 2030년 1천700조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1년 1천100만 대였던 글로벌 XR 기기 출하량이 2025년 1억500만 대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규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빠르면 상반기에 삼성전자의 XR 기기가 출시될 것"이라며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삼성전자에 부족했던 센싱 전용 반도체와 XR 전용 플랫폼이 보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XR 시장은 미래 IT 기기를 대표할 것"이라며 "중국도 국가적으로 XR 산업을 키우려 하는 만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심해질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일각에선 애플이 자체 헤드셋 출시를 통한 메타버스 대중화에 성과를 내지 못 할 경우 관련 시장 자체가 존립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애플이 내놓는 제품 가격이 고가라는 점도 발목을 잡는 요소라고 봤다.
궈밍치 애널리스트는 "애플도 세계 경제상황 악화, 하드웨어 사양 등을 이유로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헤드셋의 성공 가능성을 매우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애플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헤드셋 공개 시점이 3분기로 재차 미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AR·VR 헤드셋이 가까운 미래에 소비자 가전 분야의 차세대 스타 제품이 될 수 있다는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메타버스가 한 때 전 세계 산업의 흐름을 바꿔낼 잠재력이 있는 기술로 주목을 받았지만 곧 시장에서 잊혀지고 말 기술에 불과할 수도 있다"며 "애플이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XR 시장 진입을 앞둔 삼성전자도 적극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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