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동현 기자] 이강철 감독이 이끈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무대로부터 또다시 조기 귀국했다. 지난 9일 원대한 꿈을 품고 출항했던 이강철호는 불과 5일 만에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대표팀은 지난 2013년과 2017년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3대회 연속 조별리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표팀은 B조 1차전 경기부터 호주에 8-7로 패했다. 대표팀 마운드는 호주 타선에 8점이나 내줬고 7점을 뽑은 타선도 메이저리그 콤비인 김하성과 에드먼이 도합 8타수 1안타를 기록하는 등 아쉬운 부분을 보였다. 강백호는 7회 대타로 나와 2루타를 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가 했으나 눈을 의심케 하는 '세리머니死'를 보이며 분위기를 2배로 다운시켰다.
1차전 충격패를 당한 대표팀은 한일전에서 더 무참히 무너졌다. 다르빗슈를 상대로 3회 3점을 뽑아내며 희망을 보여주는가 했으나 이는 회광반조였고 7회말부터 콜드게임을 걱정하다 결국 4-13으로 대패했다. 이후 3차전을 승리했지만 4차전을 앞두고 일본과 호주의 8강 진출을 지켜봐야 했다. 조기 귀국인 확정된 상태에서 치른 중국전은 22-2로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다. 뒤늦은 화풀이였다.
이 같은 초라한 성적에 야구팬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참담한 성적에는 항상 비판이 따라오며 이번 대회는 이강철 감독이 특정 투수를 지나치게 혹사시킨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원태인은 개막 이틀 전인 한신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에서 27구를 던졌다. 이틀 뒤 호주전에서 26구를 던졌고 하루 뒤 일본전에도 29구를 역투했다. 등판이 잦다는 비판에도 이강철 감독은 탈락이 확정된 중국전에서 원태인을 선발로 출전시켜 또 26구를 던지게 했다. 혹자들은 선발인 원태인이 108구를 던진 게 혹사냐고 물을 수 있지만 한 경기에 100구를 던지고 5~6일을 쉬는 것과 7일간 4번 등판해 100구를 던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신체 리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등판 전후로 던지는 연습 피칭까지 감안한다면 원태인의 팔에는 후자가 더욱 무리가 갈 것이다.
두산 베어스의 정철원과 롯데 자이언츠의 김원중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난 6일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연습경기를 시작으로 한신 타이거즈, 호주, 일본, 체코전까지 5경기 연속 등판했다. 도합 투구수는 각각 62구와 41구다.
이강철 감독의 소속팀 투수인 고영표와 소형준도 연습경기를 포함해 각각 2경기 63구, 3경기 59구를 던졌다. 그러나 호주전 패배로 분노에 휩싸인 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강철 감독이 정규 시즌 개막을 앞두고 타팀 선수들을 무리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런 불같은 상황에서 이강철 감독이 본인이 기름을 부었다. 그는 지난 14일 귀국 자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부 투수 혹사 논란'에 대한 질문을 받자 "한국시리즈에서 투수 몇 명 쓰는가 좀 알아보시고 할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시 불과 몇 초 전 "비난은 모두 자신에게 해달라"고 말했던 사람이 막상 비난 아닌 비판에도 '잘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식의 대답을 내놨다. 흔히들 한 분야의 전문가임을 자처하거나 호소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화법이다. 팬들은 의견조차 내지 말고 야구인들의 말만 듣겠다는 것인가.
감독 이강철이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았다면 주장 김현수는 야구인의 목소리에 불쾌감을 내비쳤다. 김현수는 중국과의 경기 후 진행된 "역대 대표팀에서 뛰었던 선배들에게 위로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아닌 분들이 굉장히 (대표팀을) 쉽게 생각하시는 걸 봤다. 아주 아쉽다. 우리와 같은 야구인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아쉬운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해당 발언 이후 팬들은 김현수의 발언이 양준혁, 추신수 등 대회 전후로 대표팀에 쓴소리를 내뱉은 선배들을 저격한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양준혁은 일본전 이후 개인 방송을 통해 "비행기를 탈 선수들은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배 타고 귀국해라. 중국에 진다면 일본에 남아 사회인 야구나 하라"며 비판했고 추신수도 대회 전 "김현수를 비롯해 김광현, 양현종 등 베테랑이 많다. 실력 있는 선수지만 나라면 성적보다는 미래를 봤을 것이다.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이냐"고 말했다.
김현수의 발언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그가 주장을 맡은 대표팀이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고 팬들의 실망이 최고치에 달했다는 것이다. 야구계에서 십수 년 이상 몸담았던 선수가 이런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위로가 아닌 비판을 받았다고 오히려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을 자초하고 팬들을 두 번 실망케 했다.
야구를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만들어 준 수많은 야구팬과 본인들이 활약 중인 무대를 현재 모습으로 끌어올리는데 헌신한 선배들의 진심 어린 비판을 감독과 주장이 번갈아 가며 묵살했다.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의 충고조차 듣지 않는 이들이 서로를 비판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강백호의 황당한 아웃은 미국에서 5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웃음거리가 됐고 한 북미 방송사는 3번 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한 한국 프로리그 관중 수가 610만 명이라고 의아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의 비판조차 하지 말라는 뜻인가. 그게 아니라면 최강 일본을 상대로 잠시나마 3점을 앞섰고 약체 중국에 22점을 내며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으니 위로의 말을 해달란 뜻인가. 질타와 비판 없이 위로와 격려만을 바라는 것인가. 대표팀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김동현 기자(rlaehd3657@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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