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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안에서 새는 'K-반도체'…밖에서도 샌다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가 휘청이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서 반도체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이지만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액은 1년 전에 비해 42.5% 줄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화상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화상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AP/뉴시스]

글로벌 경제 위기 속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실적 부진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에 1조7천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분기 적자를 냈고, 올해 1분기엔 2조7천22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됐다. 삼성전자도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3.2% 줄어든 2조3천727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시장 상황이 열악한 상태에서 국내 반도체 업계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해외에서도 전방위 압박을 받으며 어려움에 봉착했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 패권 장악 시도에 나서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연일 압박하고 나섰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과학법(칩스법)에 따라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원), 연구개발(R&D) 분야에 132억 달러(약 17조원)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말도 안되는 조건을 내건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일정 기준 이상 초과 수익을 반납해야 할 뿐 아니라 반도체 생산 및 연구기술을 미 정부에 공개할 경우에만 보조금을 우선 지원하겠단 조건을 내걸었다. 한 마디로 반도체 생산 기밀을 공개하라는 얘기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를 제한하는 이른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내건 것도 국내 업체들을 난감하게 하고 있다. 까다로운 조건 탓에 당장 미국 투자를 해야 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선 난처하기 그지 없다.

우리나라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후속 조치에 나섰다고 하지만 업계 안팎에선 답답해 하는 눈치다. 이미 철강 232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미국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던 전례가 있어서다.

앞서 미국은 지난 2018년 철강 232조를 앞세워 한국산 철강제품의 대미수출에 제한을 둔 바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에 겉으로는 경제·안보 동맹을 외치고 반(反) 중국 동맹 참여를 강요하면서, IRA를 시행하며 정작 한국산 전기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해 논란이 됐다.

이처럼 여러 번 미국이 나섰음에도 우리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에서 또 다시 외교력과 협상력의 한계만 보여줬다. 미국이 제기하는 사안에 대해서 수세적·방어적으로만 나설 뿐 마땅한 대책 마련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외교·통상 수장들이 산업 정책과 협상 경험이 부족한 학계 출신이 장악하고 있어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국내에서도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이 1월부터 '재벌 특혜'라는 야당의 주장에 갇혀 아직도 처리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조특법 개정안은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의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현재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이자는 내용이다.

다급해진 반도체 업계와 학계는 조특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연이어 요청하고 있지만, 국회가 여야 간 대치로 파행할 가능성이 커 3월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 국회가 머뭇대는 사이 국내 반도체 산업에는 먹구름만 더 짙어지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일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말로만 영업사원 1호라고 하지 말고 반도체 산업에 드리운 먹구름부터 걷어내라"며 "IRA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반도체 산업까지 위기 상황으로 내몰린다면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 경제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라고 성토했다. 민주당의 지적대로 정부가 앞으로 선제적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하고, 때로는 압박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논리에 밀려 우리나라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일은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지적하고 나선 민주당도 반도체에 드리운 먹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뭘 했는지 묻고 싶다. 반도체 산업 지원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만을 위한 것이란 단편적 사고에서 벗어나 조특법 개정안 처리에 적극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여야가 오는 16일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반도체특별법을 심사한 후 합의 처리하는 방향으로 공감대를 모았다지만, 여전히 공제율 범위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어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전쟁터로 돌변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정부와 국회의 늦장 대응으로 인해 '동네 북' 신세가 된 국내 업체들은 오늘도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듯 하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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