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혜진 기자] 서울 강남구 자곡동의 한 대단지 아파트 앞 부동산 사무소. 상가 1층에 자리 잡고 있던 이곳은 최근 내부를 철거하는 작업을 마쳤다.
강남은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을 장악해 오며 이른바 '강남불패'라는 말이 생긴 지역이다. 강남에서도 첫 아파트 단지가 생긴 지 10년이 채 안 된 지역인 자곡동은 지난 수년간 아파트 개발 붐을 타고 개업 공인중개사가 증가한 곳이다. 그런데도 폐업한 채 방치된 부동산 사무소가 있는 것이다. 부동산 사무소가 간판을 내리는 가장 큰 이유는 거래절벽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12월(27일 기준)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매매 건수는 1만1천394건으로 지난해 4만1천948건의 27%에 그친다. 거래 중개로 매출을 올리는 부동산 사무소들의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작년만 해도 가을 성수기를 앞둔 8월에 자곡동의 전체 부동산 매매 건수가 18건이었는데 올해 8월엔 3건밖에 안 됐다"며 "일대 상권까지 경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공인중개사 신규 개업은 853건, 폐업은 1천103건으로 폐업이 더 많다. 특히 폐업 건수에서 개업 건수를 뺀 차이는 ▲9월 56건 ▲10월 151건 ▲11월 250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내년 전망이라도 좋으면 (공인중개사들이) 참고 기다릴 수라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미국이나 국내 사정상 금리가 내려가기는 힘든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 상황이 당분간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무소 유지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휴·폐업 밖에는 길이 없다"며 "폐업하고 싶어도 새로 개업하려는 사람(새 임차인)이 없어서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인중개사 시험 신청자 수는 40만 명에 달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 10월 치러진 33차 공인중개사 시험 신청자는 39만8천80명으로 집계됐다. 44만 명대인 올해 수능 응시생 수를 뺨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종사하고 있는 공인중개사가 한 12만여 명이 좀 안 되는데 장롱 속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50만 개에 가까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배출돼 있다"며 "지난해에 정부에서 시험 난도를 높였는데도 해마다 지나치게 배출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는 응시자 중 절반 이상은 자격증이 미래에 유망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3일 교육기업 에듀윌의 공인중개사 수험생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50.3%가 '미래에 유망할 것 같아서'라고 응답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인중개사 시험의 합격자 수를 지금보다 더 제한하고 상대 평가를 적용하는 등 자격증의 수급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혜진 기자(hj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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