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남양유업 법정다툼 '자존심' 아닌 '실리' 찾아야


[아이뉴스24 김태헌 기자] 소송을 단 한 번이라도 진행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대 소송에 휘말리지 말라'고 조언할 만큼 송사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변호사 비용으로 로펌에 지불하는 수천·수억원의 금전적 손실은 재판으로 겪는 정신적 손해에 비하면 '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재계에서는 기업 오너가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를 '최악의 소송'으로 부른다. 경영에만 몰두해야 할 오너가 법원출석, 변론준비 등으로 '한 눈'을 팔면, 기업은 미래가 아닌 나락으로 향한다는 것을 그들은 익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최악의 소송'이 최근 남양유업과 한앤컴퍼니(한앤코) 간에 벌어지고 있다.

남양유업 경영권 매각을 둘러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한앤코의 법적 공방이 지난 7일 시작됐다. 향후 재판에서 남양유업 인수합병(M&A) 거래의 핵심 역할을 한 인사들도 잇따라 증인으로 출석한다.

남양유업과 한앤코의 소송전은 이미 지난해 막을 올렸지만, 이달에야 첫 공판이 열렸다. 이런 진행 속도라면 1심 판결이 과연 올해 안에 나올지 미지수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최소 수 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기자수첩. [사진=조은수 기자]

양 측간 소송이 시작되면서 남양유업의 대규모 신규 투자는 사실상 중단됐다.

투자가 중단 됐다는 의미는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는 뜻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유업계에서 투자 중단은 경쟁에서 스스로 도태를 선택한 셈이 된다. 지금 '씨앗'을 뿌려야 수 년 뒤 '수확'을 할 수 있지만 소송이 시작된 이상 홍 회장과 한앤코가 투자에 관련된 합의를 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 때문에 재판이 끝난 수 년 뒤, 누가 남양유업을 차지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상황이 악화된 기업을 인수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미 시장에서는 남양유업 매각을 두고 '승자의 저주'를 우려한다. 남양유업을 손에 넣는 일은 이제 '득'보다 '실'을 먼저 따져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홍 회장과 한앤코 중 승소하는 쪽도 '상처뿐인 영광'이며, 양 측 모두 소송 전을 통해 평판에 금이 가는 것은 물론 명예와 실익까지 놓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들에게 남양유업은 '나쁜 기업'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이미 홍원식 회장은 지난해 5월 '불가리스 사태'로 대국민사과를 하고 매각 입장을 밝혔음에도, 이번에 매각 의사를 철회해 진정성을 의심 받고 있다.

특히 남양유업과 홍 회장의 이미지가 모두 부정적이어서 사명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일각에서는 홍 회장이 남양유업에서 손을 떼는 것이 기업을 살리는 길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상원 한앤코 사장도 홍 회장과 사뭇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한 사모펀드가 매각 과정에서 선행조건 미이행·쌍방대리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또 다른 계약 당사자에게 과연 '믿음'을 심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사장 외에 한앤코 역시 대외적 평판뿐만 아니라 자금 운용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게다가 이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손해배상도 감수해야 하는 불확실성까지 떠안은 상황이다. 물론 패소에 따른 배상은 홍 회장도 마찬가지지만, 홍 회장은 개인의 손해에 그치는 반면 한앤코는 기업의 손해라는 점에서 다르다.

한앤코는 롯데카드 매각 과정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도 법정 소송으로 인수가 불발된 선례가 있었던 만큼 이번 사태는 향후 M&A 추진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또 일각에서는 한앤코가 한온시스템 '출구전략'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있다.

홍원식 회장과 한앤코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루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지만,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남양유업 임직원들과 협력사, 그리고 한앤코 직원들이다. 홍 회장과 한앤코 모두 기업의 가치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타협과 조정을 통해 '미래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솔로몬과 같은 판사의 재판 결과보다 양 측간의 조정과 합의가 가장 뛰어나고 더 현명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남양유업을 이들은 더 이상 멍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욕심을 버릴 때 반세기 넘은 국내 토종기업이 사라지는 일을 막을 수 있고 그것이야 말로 모두가 승리하는 길이다.

지금 남양유업의 임직원들은 누가 새로운 주인이 될지를 두고 좌불안석이다. 남양유업 임직원은 2천200여 명, 대리점과 협력사 2천여 곳의 종사자까지 더하면 1만여 명이 넘는 이들이 '불확실성의 늪'에 빠졌다. 이들을 늪에서 꺼낼 수 있는 방법은 홍원식 회장과 한앤코의 대타협 뿐이다.

/김태헌 기자(kth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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