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양창균 기자] 역사상 가장 빠르게 전격전을 펼친 부대는 몽골 기병이다. 몽골의 유럽 원정부대는 하루 151km를 질주했다. 동력장치가 개발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기갑군(42km)과 견줘도 압도적인 수준이다. 몽골군의 기동력은 안주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 모태다. 말과 양을 먹일 푸른 초장을 찾더라도 그 풍요가 오래가지 않을 것을 경험상 알고 있는 이들은 언제든지 이동식 가옥인 게르(ger)를 걷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떠날 준비를 했다.
최근 자산순위 2위에 오르며 재계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SK그룹의 변신 속도는 가히 몽골기병에 비견할 만하다. 최태원 회장은 2016년 기업의 '서든데스'(돌연사)를 경고하며 딥 체인지(근본적 혁신)을 강조했다. SK의 딥 체인지는 안주하지 않는 실행력에서 돋보인다. 이미 석유화학과 정보통신 두 개의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체질개선이 한창이다.
최태원 회장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수했던 SK하이닉스는 10년 만에 미운 오리에서 그룹의 핵심 포트폴리오로 자리잡았다. SK하이닉스의 지난 1분기 매출은 12조원이 넘어 역대 1분기 가운데 최대 실적을 냈고 영업이익도 2조8천596억원에 달했다. SK하이닉스 인수 후에도 반도체 소재, 인텔 낸드 부문, 키옥시아 지분 등 관련 생태계 조성에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카본(탄소) 비즈니스에서 그린사업으로 재편 중인 SK이노베이션의 성과도 두드러진다. 1분기 매출은 16조2천615억원, 영업이익은 1조6천491억원을 기록했다. 작년에 분할된 SK온은 미국, 헝가리, 터키 등 세계 곳곳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며 시장 진출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바이오 분야의 성장도 눈에 띈다. 국내 최초로 FDA 신약승인을 받았던 SK바이오팜에 이어 국내 1호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 중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코비원’은 식약처의 허가를 앞두고 있다. 사명까지 바꾸고 업의 전환에 나선 계열사들도 있다. SK종합화학은 도시유전 사업을 추진하는 SK지오센트릭으로 변신했다. SK건설은 친환경, 신에너지 사업을 중심으로 한 SK에코플랜트로 바뀌며 환경 관련 기업들을 인수하고 있다.
징기스칸이 후손들에게 벽돌집을 짓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처럼 SK의 혁신 DNA도 선대인 고(故) 최종현 회장으로 올라간다. 최종현 회장은 10년 후를 준비하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설파했다. 실제 최종현 회장은 직물업체였던 선경을 원재료인 원사, 그 원재료인 석유화학, 최종 원재료인 원유 생산까지 모두 아우르는 그룹으로 확장시켰다.
노태우 정부 당시 10년을 준비해 확보한 제2이동통신 사업이 정치권의 특혜논란에 휘말리자 과감히 포기하고 이후 김영삼 정부 때 한국이동통신을 공개입찰로 인수해 명분과 사업 모두를 살리는 돌파력을 보였다.
장남인 최태원 회장 역시 성을 쌓기 보다 이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달 서울대 경제학부 특강에서 한 학생이 자산 2위가 된 것을 축하하자 “큰 의미가 없다, ‘덩치가 커졌다’, ‘둔해졌다’ 이런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성을 쌓는 자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는 징기스칸의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전세계를 발아래 둔 몽골기병들과 SK의 질주본능은 여러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징기스칸이 간과한 것이 있다. 바로 공존이다. 징기스칸도 군대를 이기는 것은 쉽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실제 징기스칸의 군대가 휩쓸고 간 곳은 폐허가 많았다.
반면, 최태원 회장은 공존을 근본으로 하는 ESG 경영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솔선수범 차원에서 SK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정관에 반영하고 있으며 매년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발표해 공론화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파이낸셜 스토리도 매출이나 성장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중요시하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이다.
재계 2위의 안정된 성을 쌓았음에도 새로운 초장을 찾아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질주하는 SK의 변신에 시장이 응원을 보내는 이유다.
/양창균 기자(yangc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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