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선훈 기자] 정부와 국회가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온플법)' 제정에 속도를 내면서 학계를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온플법과 관련한 전반적인 숙의 과정이 부족하고, 규제의 목적과 대상 등도 불분명하다며 차기 정부에서 다시 한 번 관련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도대체 이 시점의 디지털 플랫폼 규제는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일제히 온플법을 급히 추진하는 정부와 국회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 해외는 신중, 우리는 급발진…"부처간 경쟁이 불러온 사태"
김성철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의 경우 유사한 규제를 통해 구글·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4~5개 정도를 규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수정안 기준으로 약 20개 정도를 겨냥하고 있으며 결국 빅테크 기업들의 최대 100분의 1보다 더 작은 기업들을 규제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 같은 부분에 대한 구체적이고 면밀한 조사 없이 두 개 부처(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법안을 내놨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최근 플랫폼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유럽연합(EU)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관련) 정책적 방향에 대해 여전히 숙고 중이고 미국에서도 규제의 부작용을 알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며 "한국이 왜 이렇게 규제를 과감히 진행하고 있는지 의아해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온플법이 너무 급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간 국내에서 발표된 플랫폼 관련 사회과학 연구(총 550편) 중 디지털 플랫폼 관련 입법 제안에 관련된 논문은 14편에 불과하다. 일부개정안 제안 논문은 32편에 이른다. 이를 근거로 김 교수는 아직 온플법과 관련된 학술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온플법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류민호 동아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는 부처간 경쟁이 이러한 사태를 불러온 것으로 해석했다. 공정위와 방통위는 물론 최근에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부(과기부)까지 온플법 규제 과정에 가세하는 안이 발표되면서 중복 규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류 교수는 "세 기관이 서로 빠르게 규제의 깃발을 꽂으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꽂고 어디에 꽂을지에 대한 고민과 근거는 부족하다"며 "왜 굳이 이 시점에서 대상도 애매한 플랫폼과 관련된 사전적 규제를 급하게 도입하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역시 "규제를 하는 데 있어서는 정치적 부분에서 자유롭고, 비경제적 요소들을 고려해 피해를 입은 사업자들이 초점을 두는 법안이 제안돼야 하는데 공정위의 갑질 방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테마되면서 온플법이 힘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규제 기관들이 경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온플법이 부처 간 중복 규제뿐만 아니라 기존 법과의 중복을 우려했다. 권 교수는 "이미 온라인 플랫폼은 여러 법들을 통해 촘촘히 규제되고 있다"며 "온플법을 봐도 대규모 유통업법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유통업법 규제 기준 대상은 매출액 1천억원 이상, 매장 면적 3천㎡ 이상인 유통업체인데, 이것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규제 기준인 '매출액 1천억원 이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온플법, 목적도 철학도 불분명…차기 정부서 논의해야"
온플법 규제의 대상조차 명확하지 못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류민호 교수는 "애초 매출액 100억원 이상으로 기준을 삼았다가 1천억원으로 수정했는데, 정부조차 규제 목적과 대상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처럼 대상도 애매한 플랫폼 관련 사전적 규제를 왜 이렇게 급하게 도입하려 하는지, 정책적 철학과 목적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해석과 관련한 지적도 나왔다. 플랫폼 산업의 특성상 당장 압도적인 점유율로 1위를 하더라도 시장 상황에 따라 점유율이 급변할 수 있는데 온플법은 이를 감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권남훈 교수는 "이를테면 숙박앱의 경우 한때 여기어때가 50%가 넘는 점유율을 가져갔지만 현재는 야놀자의 점유율이 50%가 넘는다"며 "검색 점유율 역시 네이버가 독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체감상으로는 위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대로 입법이 이뤄질 경우 전문가들은 자칫 '쇠뿔을 잡으려다 소가 죽을 수 있다'는 '교각살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하게 우려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렇게 중요한 이슈와 관련해 급하게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며 "'교각살우'라는 말이 있는데, 정의를 세우면서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런 점에서 (온플법은) 부작용이 훨씬 크다고 본다. 젊은 기업들과 젊은이들이 혁신과 꿈을 포기하고 미래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상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민호 교수는 "인터넷 플랫폼을 규제하는 데 있어서 공무원들이 더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며 "플랫폼 산업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지식과 경험, 전문성이 필요하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자율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여러 이슈들은 짧은 업력으로 인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방향성을 짚어주는 정도만 필요하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의를 토대로 차기 정부에서 온플법에 대해 신중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이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관련 업계에서도 성명서 등을 통해 꾸준히 주장해 왔던 내용이다.
김성철 교수는 "차기 정부에서 침착하게 고민 후에 결정핼야 할 문제"라며 "규제를 받을 자와 규제로 영향을 받을 자에 대한 집중보다는 '규제를 할 자'에 대한 강조만 있다는 점에서 누구를 위한 법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윤선훈 기자(kre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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