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주] 누리호 '완벽한 성공'…‘히든 피겨스’에 달렸다


내년 5월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을 위해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발사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ll)가 우주를 향해 비행하고 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지난 21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는 성공을 위한 실패의 한 과정이었다. 700km 목표 고도에는 이르렀는데 위성모사체가 최종 초속 7.5km의 속도를 내지 못했다. 3단 엔진이 빨리 꺼졌기 때문이다. 제 속도를 내지 못했으니 궤도에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은 것은 이제 ‘실패 분석력’에 있다. 관련 조사위원회가 꾸려진다. 데이터가 워낙 많아 쉽지 않은 작업이다. 무엇보다 데이터의 ‘타임 싱크(시간이 맞게 전후를 맞추는 작업)’를 일일이 해야 한다. 300km 이상 올라간 우주 물체는 회수할 수 없다. 전적으로 데이터에 의존해 분석해야 하는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로켓의 첫 발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성공률은 30%에 불과하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작업이다. 조사위에서 누리호 3단 엔진 문제는 충분히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과정에서 ‘히든 피겨스’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소망일까.

누리호 발사과정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는 ‘히든 피겨스’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히든 피겨스’는 있는데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차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의 우주 정책에 반대하고, 쓴소리를 내는 전문가들을 편견과 선입견의 잣대로 무시하고 잘라버린 것은 아닐까.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2017년 개봉한 영화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개발 과정에서 ‘숨겨진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숨겨진 영웅’이었는데 1960년대 당시 미국은 흑인과 여성 차별이 심했다. 사회에서 여성이면서 흑인은 설 자리가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누리호가 21일 발사돼 목표 고도인 700km에는 도착했는데 위성모사체를 궤도에 올려 놓는데는 실패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NASA는 소련에 맞서 최대한 빨리 우주개발을 해야 했다. 섣불리 나섰다가 로켓이 폭발하고 궤도 진입과 재진입할 때 정확한 계산을 못 해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이때 수학 천재인 캐서린, 프로그래머 도로시, 엔지니어 메리 등 흑인 여성 3명이 NASA의 우주개발에 숨은 인재로 활동한다.

영화의 백미는 1962년 2월 20일 발사된 미국 최초 유인우주선 ‘프렌드십 7호’ 발사 때였다. 컴퓨터가 계산한 최종 착륙지점이 발사 직전에 기존 계산과 다르게 나타났다. 발사통제실 책임자는 당시 우주비행사 존 글렌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존 글렌은 “그렇다면 그 똑똑한 여성에게 계산을 맡겨라. 그녀가 인정한다면 나는 비행하겠다”라고 말한다.

컴퓨터가 계산한 파일은 캐서린에게 급하게 전달된다. 캐서린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자신의 수학적 계산과 지식을 통해 직접 계산해낸다. 이를 존 글렌에게 최종적으로 알렸고 졸 글렌은 “그녀에게 감사하다고 말해달라”고 전한 뒤 우주선은 발사한다.

펜타곤(미국 국방부 본부)에서 열린 브리핑 장면도 인상적이다. 흑인이면서 여성인 캐서린은 브리핑에 참석할 수 없다. ‘감히 여성이 그것도 흑인이?’라는 편견이 심했다. 캐서린은 NASA 부장에게 강력하게 읍소했고 부장은 ‘능력자’인 캐서린을 브리핑에 참석시킨다.

회의 참석자들은 처음엔 그녀를 경계의 눈초리로 맞는데 캐서린이 착륙지점을 정확히 계산해내자 경이로운 눈길을 보낸다. 흑인이라는, 여성이라는 차별을 넘어 ‘사실과 열정과 재능과 정확성과 도전’ 앞에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펜타곤의 브리퍼(briefer)는 캐서린이었고 앉아 있는 정부 관계자들은 조용히 듣는 이들에 불과했다.

자신 생각과 달라도, 자신 스타일과 달라도, 자신 피부색과 달라도 능력을 믿어주고 판단을 받아들이는 문화. 이게 NASA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히든 피겨스’의 재능과 지식, 능력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편견과 선입견으로 차단했다면 지금의 NASA는 없을 것이다. NASA는 재능과 지식,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우주개발은 이제 시작점이다. 자체 발사체를 갖는 출발점에 서 있다. 이 시작점에서 여러 의견과 지적 사항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주무 부처는 관련 정책을 만들기 전에 지금 우리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철학과 비전’을 찾아야 한다. 혼자 만들 수 있다. ‘히든 피겨스’를 찾아라.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전문가들이 있다면 ‘히든 피겨스’ 입장으로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내년 5월 2차 발사와 관련해 브리핑도 바꿔보자. 21일 누리호 발사 이후 50여분 뒤 성패 브리핑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맡았다. 누리호 연구원들은 문 대통령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누리호 개발 책임자가 관련 브리핑을 하고 대통령이 그 곁에 서 있었다면 어땠을까. 누리호 책임자가 직접 브리핑을 하고 뒤이어 대통령이 ‘의미와 성과’ 등을 언급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누리호는 내년 5월에 실제 위성을 싣고 우주로 다시 날아간다. 그때까지 ‘히든 피겨스’를 얼마나 많이 찾아내느냐가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성공 열쇠가 될 것이다.

/세종=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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