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돼지 도축은 전세계에서 14억 8,000만두(2018년 기준), 한국에서 1,818만두(2020년 기준)를 기록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성장하는 양돈산업을 매력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육돈을 그룹으로 관리하는 것에서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여 개체별로 관리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양돈 사업의 핵심은 전통적으로 모돈 생산량으로 규정되었다.
PSY(어미돼지 한 마리가 1년간 낳는 새끼돼지의 수), MSY(어미돼지 한 마리가 1년간 생산하는 돼지 중 판매되는 수) 수치는 양돈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지표다. 또한 양돈 사육환경도 중요한 요소이므로 친환경 축산, 동물복지 제도를 도입한 농가에서 생산된 돼지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비육돈 관리체계를 돈사 단위의 그룹관리에서 개체별 관리로 전환하는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
양돈 산업에서 비육돈의 개체별 이력 관리가 실현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한 그룹의 수십 마리 돼지를 개체별로 관리하면 새끼돼지가 어미돼지의 몇 번째 출산인지 알 수 있고, 새끼돼지가 얼마나 활동적으로 운동했는지를 누적 이동거리로써 파악할 수 있고, 충분한 사료와 물을 먹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 질병에 걸린 이력이 있는지, 예방을 위해 언제 어떤 항생제를 투여 받았는지 등을 데이터로 확인함으로써 개별 돼지 품질이 매우 다를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품질이 다르다면 판매 가격도 달라야 한다. 즉 농가에서 좋은 돼지를 생산하기 위한 노력이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지표를 확보하려면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의 IT 기술이 양돈 사육 현장에 적용되어야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또한 개체 별 관리를 위해 필요한 비용 증가와 우수한 품질의 돼지고기에 대한 적정한 가격 반영을 통해, 농가의 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는 소비 시장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수익이 증대되어야 양돈 생산 농가도 비육돈의 개체별 관리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이러한 농가들이 늘어나면서 양돈산업 전반의 질적 성장이 가능해진다.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서는 양돈 소비의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양돈 소비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돼지고기 등급제에 의한 가격 결정구조의 변화와 삼겹살, 목살 위주의 소비 문화 개선이다.
첫번째, 현재 돼지고기 등급제를 통한 가격 결정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돼지 등급제도를 살펴보면 1차 등급 기준은 중량과 등지방 두께이다. 도체중량과 등지방 두께만 적당히 알맞으면 살코기와 지방 비율이 적당한 삼겹살이 나온다. 그래서 현재 돈사 단위 사육관리의 초점은 규격화된 돼지를 얼마나 짧은 기간에 사육하느냐에 맞춰줘 있고, 돼지 개체의 건강과 활동성은 중요한 사육 기준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 소비자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등급제를 알지 못하는 소비자의 비율이 43%에 달하며, 돼지고기 구매 때 주요 구매 기준에 대한 질문에 가격(41%), 브랜드(29%)가 1,2순위를 차지했다. 등급 판정기준인 ‘지방두께’를 구매 기준으로 선택한 비율은 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등급의 돼지라도 시장에서 등급 표기 없이 판매되거나 다른 등급과 혼합 판매되는 경우도 많다. 흑돼지는 2등급이더라도 1+등급의 돼지와 비슷한 가격에 팔리는 등 등급 판정 결과가 소비 시장에 연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경우 돈사 단위로 출하가 이루어지고 출하물량 단위로 이력번호가 부여된다. 등급 평가와 연계된 도체 번호가 있지만 유통과정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개별 돼지마다 생산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로 관리하고 평가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차별화된 가격이 책정되어야 한다. 같은 날, 같은 농장에서 출하된 개별 돼지마다 가격이 달라야 하는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양돈 산업 현장에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현행 돈사 단위의 그룹 관리가 아닌 개체별 관리가 가능해진다. 개체별 이력관리 정보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돈육 가격 평가에 반영할 수 있는 개선된 등급 판정제도가 필요하다. 사육 환경, 사료, 음수, 활동성, 질병관리 이력을 개량화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 정립을 통해 진짜 건강한 돼지가 좋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두번째, 삼겹살, 목살에만 집중되어 있는 돼지고기 소비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돼지 한 마리에서 삼겹살, 목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 인데, 이 부위가 전체 판매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 수준이다. 그나마 불고기용으로 수요가 있는 앞다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는 비선호 부위로서 대부분 식품가공의 원료육으로 유통된다. 구이용 부위에 대한 수요가 높은 국내 소비 시장의 특성상 비선호 부위의 많은 물량이 냉동으로 보관되고 유통되는데, 냉장육보다 가격이 낮게 형성된다.
돼지는 115~120kg이 되면 도축된다. 도축과정을 거쳐서 뼈 무게를 포함한 지육 상태의 평균 중량이 88kg인데, 이 상태에서 발골 과정을 거쳐서 삼겹살 12kg, 목살 6kg, 갈비, 등심, 앞다리, 뒷다리 등의 부위로 해체되어 판매된다. 삼겹살, 목살을 제외한 비선호 부위의 수요를 끌어올릴 수 있는 소비문화 조성이 필요하다. 최근 한돈 소비 증진을 위해 유명인이 등장하는 TV 광고가 등장할 정도로 양돈산업에서는 이 부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선호 부위를 활용한 다양한 메뉴 개발과 소비 확산을 통해 적정한 시장가격이 형성되면 양돈 농가들의 소득이 증대되고, 선순환의 양돈 생산, 가공, 유통, 소비에 이르는 밸류체인 구조가 형성된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IT 기술을 양돈 사육 현장에 적용하면 돼지 개체별 이력관리를 현실화 할 수 있다. 생산농가는 보다 건강한 돼지를 사육할 수 있는 정보 데이터를 확보하여 이를 사육환경에 반영하게 되고, 돼지 개체별 건강성을 검증할 수 있는 정보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 체계를 구축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등급 평가의 핵심 요소로 반영되도록 등급 평가 제도가 개선될 수 있다. 그래야 유통가격에 반영되어 소비자가 적정 가격으로 좋은 돼지고기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친환경 축산물 인증 제도가 시행되고 많은 농가들이 무항생제, 동물복지, 유기농 축산을 시도했지만 축산물 유통가격에 적정하게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적 한계로 인해 기존 관행 사육으로 회귀했던 현실을 주의 깊게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돼지 등급제의 특징은 “삼겹살이 맛있는 돼지인가?”를 판단하는데 특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의 등급 기준이 “얼마나 뒷다리가 하몽 만들기에 좋은 돼지인가?”를 판단하는 것과 같은 취지이다. 생산과정에서 건강한 돼지를 증빙하고, 소비문화가 삼겹살, 목살 제외한 비선호부위로 확산되어 양돈이 매력적인 산업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해 본다.
◇진교문 대표는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삼보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 마케팅을 거쳐, 인터넷보안 벤처기업인 싸이버텍홀딩스 창업멤버로서 그리고 본인이 창업한 국내 최초 온라인교육 벤처기업 아이빌소프트 코스닥 상장으로 두 번의 IPO를 경험했다. 능률교육, 타임교육홀딩스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리고 모바일 및 교육업체의 창업 및 초기투자자로 참여했고, 현재는 IT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는 이지팜 대표이사로서 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 블록체인을 농업에 접목하는 새로운 도전을 진행 중이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