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오는 22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첫 공판준비기일을 앞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베트남 출장길에 오른다. 재판 절차를 밟는 것이지만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이 법정에 나와야 할 의무가 없어 출장에 제약이 없다. 다만 이번 재판을 기점으로 나흘 후 '국정농단'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도 재개되는 만큼 출장 일정 중 이 부회장의 부담감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지 닷새 만인 이날 베트남으로 출국해 오는 20일 베트남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와 단독 면담을 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이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은 지난 2018년 10월 방문 후 2년 만이다.
베트남은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최대 생산 기지로, 베트남 북부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에 휴대전화 공장, 호찌민시에 TV·가전제품 생산공장이 위치해 있다.
이 부회장의 현지 방문은 당초 지난 2월로 예정돼 있었다. 베트남 하노이에 건설하는 삼성전자 연구개발(R&D) 센터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며 행사가 취소돼 이 부회장의 베트남 방문은 무산됐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 정부가 외교관과 기업인 등의 자가격리를 면제해주는 패스트트랙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이 부회장이 출장을 가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8년 10월과 지난해 11월 면담했던 푹 총리와 이번에 또 다시 만나 베트남 사업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이번 베트남 출장에서 하노이에 건설 중인 R&D 센터와 휴대전화 공장 등도 직접 둘러보고 임직원들을 격려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푹 총리가 이 부회장을 만날 때마다 베트남에 반도체 생산 공장 등 투자 확대를 요청해 왔던 만큼, 이 부회장이 이에 대한 답변을 이번에 내놓을 것으로 관측했다. 현지에서는 이 부회장이 베트남에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등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을 방문한 지 5일 만에 베트남으로 다시 향하면서 글로벌 현장 경영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중국 시안의 반도체 공장 방문 이후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5개월간 국내에 머물며 사업장을 두루 살폈다. 하지만 경쟁사들의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낀 이 부회장은 두 개의 재판을 앞둔 와중에도 해외 출장길에 올라 사업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8일 시장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3분기 실적이 발표됐음에도 이 부회장이 네덜란드를 해외 출장 재개 첫 번째 나라로 선택한 것을 두고 궁금증이 많았다"며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는 대만 TSMC의 3분기 실적을 본 후 의문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TSMC는 지난 9월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24.9% 증가한 1천275억8천500만 대만달러(약 5조1천289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이 금액은 월 매출 기준 사상 최대였던 지난 8월 약 1천229억 대만달러(약 4조9천118억 원)보다도 3.8% 많은 수치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2030년 비메모리 반도체 1위' 선언의 첨병에는 '파운드리'가 있고, 최대 경쟁사는 TSMC"라며 "두 회사의 경쟁에 '키'를 쥐고 있는 기업이 네덜란드의 ASML로, 이곳에서 독점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점유율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디비아 등 경쟁사들이 대형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는 것도 이 부회장이 바쁘게 움직이게 된 이유다. 삼성은 지난 2016년 미국 오디오 기업인 하만을 9조 원에 사들인 후 '사법 리스크'로 인해 1조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모두 중단됐다.
반면 엔디비아는 최근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 ARM을 400억 달러(약 47조3천억 원)에 인수했고, ARM은 경쟁업체인 자일링스 인수합병을 추진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사법 리스크로 주춤하는 사이 경쟁사들이 덩치를 키우며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삼성은 이 부회장을 둘러싼 여러 환경적 부담으로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현장 경영은 잇따라 진행되는 두 개의 재판이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오는 22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첫 공판준비기일과 오는 26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심리를 앞두고 있다.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이 법정에 나와야 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이 부회장 등은 이날 재판에는 출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재판에선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불법 행위에 대해 본격적으로 파헤칠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검찰은 1년 9개월 여간의 수사 끝에 2014~2015년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해 진행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 과정에서 삼성그룹의 조직적 부정행위가 발견됐다고 판단하고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 배임,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70), 김종중 전 미래전략팀장(65),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66),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63) 등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11명도 이 부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게 됐다.
또 이 부회장은 대법원이 뇌물죄를 확정하고 돌려보낸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심리도 받게 됐다. 이번 재판은 지난 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담당 재판장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며 기피신청을 해 9개월 간 중단됐으나, 최근 고법과 대법원이 연이어 검찰의 요청을 기각하면서 재개됐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대법원에서 인정한 뇌물죄에 대해 양형이 결정된다.
재계 관계자는 "두 재판은 승계를 고리로 연결된 것으로, 이 부회장과 삼성의 부담감이 상당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재판 출석 일정이 잡히면 재판 준비에 적잖은 시간을 소모해야 해 경영에 오로지 집중하지 못하며 성장 동력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해외 출장에 적극 나선 것은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주요 사업 현안을 미리 챙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면서도 "향후 이 부회장과 삼성 경영진이 재판 출석 및 준비하는 동안에는 M&A 투자 등 전략적 결정 지연으로 세계 경쟁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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