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공연이 올라가는 것 자체가 무척 감사할 따름이에요.”
국립극장 창설 70주년 기념 공연인 국립오페라단의 ‘빨간 바지’에 출연하는 소프라노 김성혜는 코로나19로 힘들고 불안한 시기에 무관중 영상공연으로라도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것에 기대감을 표했다.
“무관중 공연을 한번 해봤는데 관객 없이 공연을 하면 서로 공감이 형성되지 않으니까 와 닿는 게 없고 역량이 더 모자라게 나오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걸 알기에 오히려 더 전달을 잘 할 수 있게 연기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온라인 공연을 하면 많은 분들이 보신다고 들었어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공감하고 즐길 수 있도록 꾸미겠습니다.”
‘빨간 바지’는 나실인 작곡가와 윤미현 작가가 협업한 창작 오페라로 오는 28~29일 국립극장 달오름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조치로 28일 오후 7시 30분 네이버 생중계로 전환한다. 연출은 최용훈, 지휘는 지중배가 맡는다.
작품은 1970~1980년대 서울 강남을 배경으로 한다. 1980년대 말 빨간 바지를 입고 부동산 시장을 누비던 복부인을 당시 언론은 ‘빨간 바지’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김성혜는 극중 복부인이 되려는 야망을 품고 ‘빨간 바지’로 통하는 진화숙(소프라노 정성미 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목수정 역을 맡았다. 이밖에도 진화숙의 정부 성도수(테너 엄성화 분), 수상한 인물 유채꽃(메조소프라노 양계화 분) 등이 나온다.
“국립오페라단에서 창작 오페라를 몇 개 했어요. 김유신의 이야기를 다룬 ‘천년의 사랑’에서 김유신이 사랑했던 여인 천관녀 역할을 했고, 창극을 오페라로 만든 ‘청’에서 심청을 연기했어요. 창작 초연이라 제 키에 맞춰서 작곡을 다시 한 것도 기억에 남고 창의 기술적인 부분을 접목해 한을 깊이 있게 표현하는 것도 배워 나름 좋은 경험이었죠.”
그는 “이번 작품은 시대가 다른 만큼 의상도 무대도 다 기대했다”며 “복부인이 되고 싶었을 때와 그 이후의 헤어스타일도 크게 바뀌고 의상의 변화도 있어서 포인트가 된다”고 귀띔했다.
김성혜는 작품의 매력에 대해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있어서 누가 나와도 다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든다”며 “각자가 조화를 이뤄서 극을 보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목수정의 경우 음악을 처음부터 꾸려나가고 계속 등장을 한다”며 “등장하지 않을 때조차 이름이 언급된다”고 부연했다.
김성혜는 “목수정은 비닐하우스촌에서 자란 고아로 소외계층이지만 사회에서 큰 꿈을 가지고 자기 길을 찾아나가는 여성이다”라고 소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나와 경리직으로 일한 사회 초년생이 회사 안에서의 강압적이고 어두운 면을 봐요. 게다가 공금횡령죄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왔으니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겪어요.”
그는 “억울한 만큼 복부인이 되겠다는 포부가 강하게 생긴데다가 음악도 고음이 많이 나오니까 마지막에 목수정이 화려하게 변신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결국엔 양심을 저버리지 못하고 버스 안내양으로 돌아가 비닐하우스촌 아이들을 데리고 평범하게 살아간다”고 목수정의 서사를 설명했다. 아울러 “지금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레치타티보라고 말하듯이 하는 대사가 음표 안에 붙어있는데 서양 오페라의 경우 공부하고 연습을 많이 했으니까 익숙해요. 이번 작품은 초연이고 한국말로 불러야 해서 발음도 그렇고 어려운 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 ‘나도 빨간 바지가 되고 싶어’라고 시작하는 대사가 있거든요. 처음엔 음표 안에 맞춰서 대사를 읽으면서 연습을 하다가 나중에 띄어쓰기도 고려해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박자로 강박을 가야돼서 쉽지 않더라고요.”
연습 중 가장 어려운 점 역시 가사 전달력이었다. 그는 “‘배짱 있네’라는 대사가 있는데 아까 연습 때 지휘자 선생님이 잘못 들으면 ‘베짱이네’ 이런 느낌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며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 대사가 수영장 신에서 나와요. 아침에 호텔 수영장에서 여인들이 잡담을 하면서 정말 베짱이처럼 노는 장면이거든요. 제가 들어오면서 ‘배짱 있네, 정말 대단한 배짱이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이런 대사를 해요. 음정에 맞춰 이들을 가리키면서 얘기하다보니까 마치 ‘베짱이네’ 이렇게.(웃음) 그런 가사 전달이 계속 신경 써야 될 부분이에요.”
이어 “그런데 곡들은 다 되게 매력적이다”라며 “사실 내 음역대보다 높지는 않지만 콜로라투라를 왜 찾으셨는지 알겠더라”고 전했다. “낮은 부분에선 많이 낮고 높은 데선 갑자기 높아져서 까다로워요. 대사가 슬픈 이야기로 나올 땐 단조로 나가고 어떤 요구를 하거나 할 땐 장조로 나가서 한마디 안에서도 확확 바뀌어요. 다 의미가 있는 거예요. 처음에 음정으로만 익혔을 땐 너무 어려웠는데 내용을 조금씩 알아가니까 그 의미대로 표현이 되더라고요. 더 전달이 잘 되게 많이 노력해야겠죠.”
김성혜는 또 “이번 작품에 나오는 여성 합창도 굉장히 특별하다. 생소한 합창일 것이다”라며 “땅 투기를 하러 다니는 복부인들이 철거가 되는 개포동 일대에 등장하는 장면에서 합창을 하는데 음역대가 다 달라서 재밌다”고 소개했다.
‘빨간 바지’의 대중성도 짚었다. 그는 “198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 음악이 완전 고전적이지 않고 변화가 많다”며 “어쩔 때는 룸바 느낌이 있고 살사나 탱고 느낌이 나는 음악도 있다”고 설명했다.
“작곡가의 역량으로 특별한 음악을 많이 써주셔서 가요 같은 멜로디도 많아요. 저는 캐릭터와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있으면 성공한 오페라라고 생각해요. 요즘 트로트가 대세인 이유가 자꾸 익숙하게 들리는 음악이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게 오페라에도 있으면 했는데 우리 작품에 그런 아리아들이 조금씩 있어요. 저도 기억에 남는 목수정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작가·작곡가·지휘자·연출가 선생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성악가로서 잘 표현해서 보여주고 싶다”며 “같은 호흡으로 잘 전달할 수 있는 게 마지막 노력일 것 같다”고 각오를 밝혔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