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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화학반응에도 영향 미친다…IBS 연구


소리로 분자 거동 제어…한 용액 내에서 다른 산도 가능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소리가 화학반응에도 영향을 미칠까?

스피커 위에 물접시를 올려놓으면 진동 때문에 동심원 물결이 생기는 것은 누구나 경험적으로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이같은 현상을 화학반응 조절에 활용하려는 연구가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단장 김기문 포스텍 화학과 교수) 연구팀은 기존의 통념과 달리 소리가 물리현상뿐만 아니라 화학반응까지 조절할 수 있음을 규명하고, 그 결과를 시각화한 연구결과를 11일 네이처 케미스트리(Nature Chemistry)에 발표했다. (논문명:Audible sound-controlled spatiotemporal patterns in out-of-equilibrium systems)

연구진은 소리가 만들어낸 미세한 진동을 받은 액체가 공기와 접촉하는 정도를 변화시켜 한 용액 내에서 산화-환원 반응, 산-염기 반응 등이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증명했다. 또한 소리의 주파수와 그릇 형태의 변화에 따라 용액에서 나타나는 물결의 패턴을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얼핏 초등학교 과학반 실험에 어울릴 법한 연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청 주파수 대역의 낮은 에너지를 가진 '소리'를 물리학적 원리가 아니라 화학적인 반응에 적용해 보려는 연구는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진은 "소리가 가지는 에너지는 매우 낮기 때문에 그동안 화학반응의 조절에 사용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파장이 길고 에너지가 낮은 가청 주파수 대역의) 소리를 활용, 유체의 흐름과 기체의 섞임을 통해 화학반응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였다"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리를 이용한 다양한 화학반응의 조절과 이를 활용한 시스템화학 연구, 소리가 생체 내의 화학반응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리를 이용한 화학반응 조절 시스템. 연구진은 소리에 의한 유체의 떨림 현상을 이용해 화학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스피커 위에 지시약이 담긴 실험 접시를 올린 뒤, 소리를 들려주며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용액과 기체의 접촉면에서 일어나는 기체의 용해 현상으로 인해 산화-환원 반응(좌)이나 산-염기 반응(우)을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소리를 들려주지 않을 때 무작위한 패턴을 보이던 용액은, 소리의 주파수에 따라 패턴을 형성했다. [IBS]

IBS의 이번 실험은 소리의 영향을 받은 물의 진동이 일으키는 물리적 움직임에만 주목한 기존 연구와 달리, 이러한 진동이 화학적인 반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런 영향을 패턴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로 주목할 만 하다.

연구진은 물의 움직임에 의한 공기의 용해도 변화에 관심을 두었다. 소리로 물결의 패턴을 제어해 용해도를 조절한다면, 한 용액 내에서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였다.

연구진은 우선 이를 시각화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했다. 스피커 위에 실험접시를 올려둔 뒤, 소리가 접시 안의 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했다. 소리가 만들어낸 미세한 상하 진동으로 인해 접시 안에는 동심원 모양의 물결이 만들어졌다. 동심원 사이의 간격은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좁아졌으며,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다른 패턴을 나타냈다. 소리의 주파수와 그릇의 형태에 따라 나타나는 물결의 패턴을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소리로 산화-환원 반응 조절 실험.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이용하여 생성된 다양한 패턴들. 상하로 흔들리는 접시 안의 염료 용액은 물결로 인하여 구역별로 서로 다른 화학적 환경을 가지게 된다. 위 사진에서는 파란색의 염료 분자(환원된 바이올로젠)가 산소를 만나 무색(산화된 바이올로젠)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소리를 적용하여 생성된 색깔 패턴들을 확인할 수 있다. 패턴의 모양은 소리의 종류나 접시의 모양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IBS]

이후 연구진은 지시약을 이용해 소리가 만들어낸 물결이 화학반응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먼저, 파란색이지만 산소와 반응하면 무색으로 바뀌는 염료(바이올로젠 라디칼)를 접시에 담은 뒤, 스피커 위에 얹은 후 소리를 재생했다. 물결에서 움직이지 않는 마디 부분은 파란색을 유지한 반면, 주기적인 상하운동을 하는 마루와 골(가장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은 산소와 반응하며 무색으로 바뀌었다. 공기와 접촉이 활발하여 산소가 더 많이 용해되기 때문이다.

또한, 산성도(pH)에 따라 색이 변하는 지시약인 BTB 용액을 이용해 동일한 실험을 진행했다. BTB 용액은 염기성에서는 파란색, 중성에서 녹색, 산성에서 노란색을 띠는 지시약이다. 연구진은 접시에 담긴 파란색 BTB 용액을 스피커 위에 놓고 소리를 들려주며 이산화탄소에 노출시켰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면 용액이 산성으로 변하는데, 소리를 들려주자 용액 속에 파란색, 녹색, 노란색이 구획별로 나뉘어 나타났다. 물결로 인해 기체의 용해도가 부분적으로 달라지며 산성, 중성, 염기성이 공존하는 용액이 만들어진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황일하 연구위원은 “용액의 산성도는 전체적으로 동일하다는 상식을 뒤엎은 흥미로운 결과”라며 “소리로 산화·환원 또는 산·염기 반응을 일으켜 물리적 가림막 없이도 용액 내 화학적 환경을 서로 다르게 구획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평형상태에서 고주파로 화학반응을 조절하려는 연구가 시도된 적은 있지만, 실제 자연과 같은 비평형상태에서 소리를 이용해 화학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연구를 확장한다면 소리가 생체 내 화학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해 복잡다단하게 조립·변화하는 생명활동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기문 단장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소리를 이용해 쥐의 움직임을 통제했듯, 우리 연구진은 소리를 이용해 분자의 거동을 조절했다”며 “화학반응과 유체역학을 접목해 발견한 새로운 현상으로 소리를 이용한 다양한 화학반응 조절 등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상국 기자 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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