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회사의 자구안이 채권단에 제출됐지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키로 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해 4월 아시아나항공 매각과 관련한 안타까움 심정을 토로한 말이다. 제2민항사업자인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온게 된 이유는 박 전 회장의 무리한 경영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무리한 인수합병(M&A)이 결국 독이 됐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1988년 2월17일 '서울항공'으로 출범한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창립 32년을 맞았다. 창립 32년 만에 금호아시아나그룹 품에서 완전히 떠나게 된 아시아나는 성장 과정에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12월 보잉737항공기 1대를 도입한 후 같은 해 12월23일 서울~부산 국내선 첫 취항했다. 첫 사명은 서울항공으로 자본금 50억원, 운항승무원 58명, 캐빈승무원 104명, 정비사 105명이 처음 시작이었다. 1990년 1월 서울~동경간 첫 국제선 노선을 취항했다. 이후 서울~홍콩 등 동남아 지역에 취항했으며, 미주, 러시아, 중국, 대양주 등으로 하늘길을 넓혔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1988년에는 에어버스 항공기를 도입하며 기재 변경을 시도했다. 또 같은해에 서울 중구 회현동에서 강서구 오쇠동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2003년에는 세계 최대 항공 동맹체 스타얼라이언스에 공식 합류하며 글로벌 항공사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스타얼라이언스는 아시아나항공을 비롯, 유나이티드항공, 아드리아항공, 에어캐나다, 에어차이나, 에어인디아, 에어뉴질랜드, ANA 등이 회원사로 있다.
창립 20년주년이던 2008년에는 코스피에 상장했다. 같은해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부산도 첫 취항에 나섰다. 2년 뒤인 2010년에는 연간 국제선 탑승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2014년에는 임직원 1만명 돌파, 2015년에는 또 다른 LCC 에어서울을 설립하는 등 성장을 이어갔다.
복수민항시대를 열며 출범한 아시아나항공의 위기는 그룹 재건 과정에서 찾아왔다.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에 적정가를 넘는 돈을 쏟아부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촉발로 인수 3년만인 2009년 대우건설을 되팔았다.
이후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체를 뒤흔들며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으로 채권단의 관리를 받았다. 여기에 박 전 회장이 워크아웃을 졸업한 금호산업 재인수 시도 때 아시아나항공을 활용하려던 것이 독이 됐다. 인수자금 마련 과정에서 그룹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부실은 심화됐다.
이때 아시아나항공 2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과도 갈등을 겪기도 했다. 금호석화는 박 전 회장의 동생 박찬구 회장이 최대주주지만 2015년 그룹에서 계열분리 됐다. 10여년간 그룹 재건을 위해 자금을 지원하며 만성 적자가 누적된 영향이 컸다. 결국 모회사인 금호산업은 지난해 4월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됐다.
재계 관계자는 "1988년 금호그룹이 우리나라 두번째 민간항공사로 탄생시킨 아시아나항공이 주인의 손바꿈을 맞았다"며 "복수민항 시대를 개척한 2대 민항의 매각은 그 자체로 국내 항공산업의 세대교체이자 일대 격변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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