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지난 2017년 삼성전자의 하만 카돈 인수는 9조원에 이르는 이재용 부회장의 담대한 베팅이다. 국내기업의 해외기업에 대한 역대 가장 큰 M&A 금액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미래차 진출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자랑하는 스마트폰, 5G 통신, 반도체 등 세계적 IT기술이 하만의 전장 사업과 좀처럼 시너지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게 자동차 부품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만의 전체 삼성전자 실적에 대한 기여도 자체도 현재로선 미미한 수준이다.
하만 인수 이후 삼성전자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정보통신기술(ICT)로 무장한 커넥티드카를 넘어 자율주행은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신산업이다. 하만 인수 이후 미래차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결정적 순간에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가 삼성전자 입장에선 뼈 아팠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삼성전자의 지난 3분기 하만 부문 매출액은 2조6천300억원, 영업이익은 1천50억원가량이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18%, 29% 증가한 것인데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연간 1%대 저조한 성장률로 침체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선방한 셈이다. 하만의 전매특허인 자동차 헤드유닛 부문 시장 점유율은 23%로 1위다. 파이오니어, 파나소닉 등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아직까지 확고한 점유율이다.
그러나 전체 삼성전자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놓고 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3분기 영업이익을 놓고 보면 삼성전자 전체 7조7천800억원의 1% 남짓이다. 반도체 대호황의 영향으로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한 2018년의 경우 그 비중은 0.3%까지 떨어진다. 전장 부문이 시스템 반도체와 함께 삼성전자의 대표적 신성장 동력인 점을 감안하면 존재감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자사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 등 독보적인 기술력을 하만과 결합하고자 시도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올해 초 CES, 지난 9월 IFA 등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를 통해 하만과 공동 개발한 디지털 콕핏(운전실) 시스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완성차 업계를 통한 가시적 성과는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자동차 부품업계 한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자체 전장 사업을 비중 있게 추진하는 부분은 시스템 LSI 사업부의 차량용 반도체 정도"라며 "하만의 기존 완성차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할 만한 협업은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전장 사업은 차량용 AP '엑시노스 오토' 등 반도체 부문을 제외하면 전적으로 하만에 의존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전장 기술개발을 위한 하만 외 별도 조직이 가동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7년 3월 대규모 물적자원을 동원한 하만 인수까진 성공했지만, 삼성전자와 화학적 결합을 이끌 별도의 사업조직 구성과 IT인력 투입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가 크게 작용했다. 이 부회장과 삼성 고위 임원 일부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하만 인수를 앞두고 구속됐다. 지난해 항소심의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될 때까지 1년여를 구속 상태로 보냈다. 이후 국정농단 재판이 삼성 그룹 전체의 최대 관심사로 부상하면서 삼성전자 입장에선 하만과 전장 분야 시너지를 높일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이는 LG전자와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LG전자의 경우 지난해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차량 램프업체 ZKW를 인수하면서 전장 부문을 대폭 키웠다. 구광모 회장 취임 후 그룹 내 자동차전장팀을 신설하고 그룹 전체 미래차 사업을 총괄하면서 LG전자의 스마트폰, 가전 등 IT인력이 전장 부분에 대거 수혈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LG전자 전장 부문에서 ZKW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라며 "LG전자가 자체 추진하는 인포테인먼트, 전기차, 운전자지원시스템(ADAS) 등 부문도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래차는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와 함께 현 정부가 집중 육성을 추진하는 신산업 분야의 핵심 영역이기도 하다. 지난달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2027년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 수소차·전기차 등 친환경차 인프라 구축 등을 담은 '2030 미래차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자동차 전장 분야 전문가는 "차세대 전장기술은 첨단 자율주행을 구현하기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며 "삼성전자가 오너에 대한 사법적 부담을 조속히 해소하고 관련 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석근 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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