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매년 국정감사 시기 정무위원회 회의실은 그야말로 VIP룸이다. 한 자리에 쉬이 모이기 어려운 기업 총수들이 총출동하는 자리다. 정무위는 특히 기업인 호출이 잦기로 유명하다. 1분 답변을 위한 한나절 대기도 비일비재하다.
정무위 국감의 또 다른 별명이 있다. '호통 국감'이다. 정무위 정례 회의나 국감 현장에서 들리는 단골 대사는 "그만 (답변)하세요", "변명하지 마세요"다. 1일 1호통을 듣지 못하면 허전할 정도다.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은 물론 기업 대표들도 정무위 회의실에서는 쩔쩔맨다.
지난해 정무위 국감장에 선 CEO와 임원진들은 금융권에서만 방영민 삼성생명 부사장,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함영주 KEB하나은행 은행장 등 여럿이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도 국감장에 소환됐다. 박병대 삼성전자 부사장을 포함해 비금융사 기업 대표도 수십명에 달한다.
이들의 국감 출두 배경은 실무과정에서의 과오가 대부분이다. 기업의 대표가 기업의 비양심적인 행동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회장님 혼내기'가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국감장에 우르르 선 대표들이 할 말은 "죄송합니다" 뿐이다. 죄송할 일이지만, 국감장에서 사과만 받기에는 국감이라는 행사의 무게가 아깝다.
올해 정무위 증인 명단은 색다르다. 금융권에서는 윤호영 카카오뱅크 은행장과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 손호승 삼정회계법인 전무 등 현안과 관련한 CEO·임원진만 감사장을 찾는다. 윤호영 행장은 카카오뱅크의 영업행태로, 심성훈 행장은 케이뱅크 인가 과정 특혜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경영 판단이 필연적인 사안이다.
명단이 담백해진 이유는 자성이다. 정무위 내부에서 퍼포먼스식 국감을 탈피하자는 목소리가 나왔고 여야 간사의 합의도 이뤄졌다. 실무진의 증언을 첫 번째로 듣고 답변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최종 책임자를 부르겠다는 각오다.
이름이 곧 브랜드인 총수들을 부르지 않는 대신 실무진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는 정치 이벤트로서의 흥행을 일정부분 포기했다는 의미다. 그간 국감을 스타 정치인의 등용문이나 정당 싸움판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인 덕이다.
국감을 앞둔 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심재철 의원(자유한국당)과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의 설전이 이어졌다. 의원석은 텅텅 비었지만 데시벨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고성이 오고 가기 전 본회의장에는 최저임금과 카드수수료 등 소상공인 대책과 경제 불평등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결국 정치판이 늘 해왔던 모습 그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10월 국회, 경제 부문의 첫 포문은 '역시나' 였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정무위의 변화에 기대를 건다. 정무위의 국감 실험이 성공하기를, 호통 국감이 소통 국감으로 변화하기를 바란다. 정쟁이 토론이 되는 순간, '진짜' 국정감사의 물꼬가 트인다.
허인혜기자 frees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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