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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대 칼럼] '내전' 수준의 정국을 풀어야 할 리더의 역할


계엄과 탄핵으로 나라가 골병들어가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지층 결집을 통한 '반전'을 노리는 듯하다. 그러는 사이 보수와 진보 진영의 극단적 적대감이 더욱 깊어지면서 자칫 '내전'의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불안한 상황이다.

지난 3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윤 대통령 체포를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호처가 대치하는 모습을 통해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비루하고 망상에 빠진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대통령이란 자가 자기안위를 위해 국가기관끼리 물리적 충돌을 빚도록 한 것은 국가적 수치다. 체포영장 집행과정을 생중계한 외신은 이런 윤 대통령을 '비참한 생존자'라고 비꼬았다.

한남동 관저에 숨은 윤 대통령은 극단적 보수 유튜브에 매몰되어 정상적인 판단을 못하는 것 같다. 지난 1일 관저 앞에서 탄핵반대 시위를 벌이는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단적인 사례다. "주권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메시지는 그의 정신상태를 짐작케 한다. 노골적으로 위험한 선동과 난동을 부추긴 것이다.

지난 연말 개봉한 '시빌 워: 분열의 시대'라는 미국 영화가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과 너무 비슷해 참 놀라웠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대통령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이를 수사하려는 수사기관을 해체했다. 기자회견에 나서 "우리는 위대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선동하기도 했다. 국가는 사분오열 쪼개져 같은 국민들끼리도 서로에게 "어느 편인가?"를 묻는다. 급기야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어 총격전을 벌이며 끔찍한 시가전과 살육이 이어지는데도 대통령은 "국가에 충성하는 이들이 승리한다"며 더욱 큰 분열을 부추긴다. 이 대통령의 말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영화는 극단적 분열로 최악의 내전이 벌어진 미국의 모습을 종군 기자들의 눈으로 조명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2020년 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연임에 실패한 뒤 그를 지지하는 폭도들이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한 광기 어린 순간을 연상시키며 큰 화제가 됐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일 때가 있다. 윤 대통령과 지지자들의 모습, 광화문을 비롯한 서울 곳곳이 보수, 진보를 자처하는 시민들로 갈라져 집회를 벌이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은 내전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집무정지 중인 윤 대통령이 경호처와 군인을 동원해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지지자들에게 자신을 지켜달라고 외치는 모습 역시 영화의 한 장면과 오버랩 된다. 영화 속 "당신은 어느 쪽 미국인이냐?"라는 질문은 우리 현실에서도 "당신은 보수냐? 진보냐?"라는 질문으로 쉽게 치환될 수 있다. 이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가장 위험하면서 슬픈 질문이다.

극단적 지지층에 기대고 있는 윤 대통령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적대감에 사무쳐 있는 듯하다. 이번 계엄도 국무위원 탄핵 등으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끈질긴 특검 법안 통과에 대한 일종의 '자해공갈 복수극'이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가 지난해 3월부터 계엄을 통해 박정희의 유신헌법 긴급조치권과 전두환의 5공화국 비상조치권과 같이 비상대권을 염두에 두었다는 발언들이 그런 징후를 뒷받침해준다. 그는 계엄을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꼭두각시 같은 한시적 비상입법회의를 두고 국정의 전권을 장악한 뒤 총선을 다시 하려고 마음먹었던 듯하다. 그런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 등 적대적인 정치인들을 제거하려는 시나리오도 세웠다.

윤 대통령의 이런 망상적 행태와 함께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를 타도해야할 적으로 규정하면서 정치권은 적대와 증오의 날선 공방이 치열해 지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내란 진압이 우선”이라며 권성동 원내대표 등 여당 의원들을 고발했다. 이에 맞서 여당 역시 이재명 대표 등 야당 인사를 맞고발했다.

이런 대립과 갈등의 상황에서 정치권의 협상과 타협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계엄과 탄핵정국에서 나라 걱정을 하는 국민들이 많지만 여야는 각자의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 사이에 극단화된 ‘팬덤 정치’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저주와 분열 그리고 극단적 대치와 내전의 불씨마저 잉태시키고 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분열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심리적 내전을 넘어 물리적 내전 양상으로 치닫을지 불안한 형국이다. 탄핵이 곧 이재명 대통령 당선이라는 우려에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여권 극렬 지지자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결집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그 측근 그리고 국민의힘이 이를 계속 부추길 것이다.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강성지지층도 조기 대선을 위해 필요하다면 더욱 결집하며 뭐든지 과감하게 행동할 것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서글픈 것은 분열과 다툼이 일상화되고 양 극단으로 나뉜 국민들이 상대의 절멸을 위해 추운 겨울날 거리의 투쟁을 더욱 강요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는 시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여야와 정치지도자들이 현명하게 갈등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정치를 해야 하는 데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건데 윤 대통령의 개과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나라야 어찌됐든 지지층 결집을 통해 유혈충돌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아갈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비극적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시선은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모여진다. 그간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적대적 공생관계로 인해 정국이 풀리지 않는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한 축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은 현재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무거운 책임감으로 절망의 늪에 빠진 국민의 삶에 함께 하겠다고 했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 체포를 위해 경호처와 대치중인 지난 3일 당 최고위원회에서는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누군가의 아집, 어떤 집단의 특별한 이익을 위해 전체가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런 다짐을 한 이재명 대표가 나라가 내전으로 치닫는 상황을 막고, 국난을 극복하는데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정국의 실타래를 푸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갈지 국민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양기대 전 의원]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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