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가 한국전쟁이어서 뻔 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쟁으로 한 가족이 겪은, 지금도 겪고 있는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렸습니다. 관객들이 돌아갈 때 가슴속에 뭔가 담아갈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제1회 차범석희곡상 당선작 '침향'(김명화 작, 심재찬 연출)이 지난 11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됐다.

이 작품을 통해 2년만에 연극 무대에 선 배우 박인환은 "관객들이 공감하고 느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며 "기존 연극과는 달리 부딪히고 강하기보다는 억제하고 절제하면서 그 의미를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침향'에서 주인공 강수역을 맡은 박인환은 좌익 운동을 하다 전쟁 통에 월북해 56년만에 귀향한다. 치매에 걸린 아내 애숙(손숙 분)과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자란 아들 영범(성기윤 분)이 반세기만에 고향을 찾은 그를 맞는다.
또 강수의 밀고로 아버지를 잃은 죽마고우 택성(정동환 분)이 복수의 낫을 갈며 그를 기다린다.
박인환은 "강수는 죄인이다. 죄스러움밖에 없다"며 "마지막에 떠날 때 아들이 '아버지'라고 불러줘 그나마 위안을 삼지만 죄스러움 뿐"이라고 설명했다.
가족에 대한 죄스러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친구 택성에 대한 감정도 그 못지않다. 강수가 비록 아버지를 죽게 했지만 그를 도망가게 했던 것은 죽마고우였던 택성이었기 때문이다. 강수는 그런 택성이가 복수를 하겠다며 낫을 들이대도 미안함뿐이다.
"강수는 극중에서 대사가 적어요. 가족과 친구에게 죄인이기 때문에 모든 걸 참고 받아들이는 내면연기가 많죠. 그동안 벌어진 일은 강수 본인이 아닌 동생이나 매제 등 다른 사람을 통해 설명됩니다."
박인환은 축 늘어진 어깨,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얼굴, 낮은 한 숨을 통해 강수라는 인물을 그려낸다.
그가 강수를 연기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애숙이 강수와 사랑을 나누고, 애숙이 고된 시집살이에 눈물을 흘렸던 생강굴. 또 강수의 좌익 활동 문건을 숨겨놓은 이 곳을 그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는다.
박인환은 "생강굴 장면이 가장 인상 깊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 돌아온 강수도 그때를 회상한다. 아름다운 추억이 남겨진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이 축제와 같다고 말한다. 최근 연극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원로배우와 젊은 배우들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 소통하며 의견을 주고받았던 연습한 기간이 그에게는 축제였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오히려 젊은 친구들에게 많이 배웠죠. 역할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그들을 쫒아가기에 바빴습니다."
그는 연극무대가 고향과도 같다고 말한다. 처음 연기를 했던 곳이 무대였고, 배우는 관객의 숨소리를 듣고 함께 교감할 때 가장 큰 보람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작품을 하면서 힘든 점으로 꼽는 것은 무대세트다. 거대한 산을 옮겨놓은 듯 한 무대장식은 관객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고는 있지만, 이곳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처해있는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며 벽을 뛰어넘는 이해심을 강조한다.
박인환은 "우리민족은 소위 '울타리'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며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다소 이상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소통이 지금의 좌우, 남북의 벽을 허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사회가 어렵다 보니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가벼운 작품이 많은데 연극은 재미와 함께 감동을 주어야 한다"며 "옆 사람과 소주 한잔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열심히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조이뉴스24 /이승호기자 jayoo2000@joynews24.com 사진 한훈 객원기자 jackdo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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