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디지털 음악서비스 잠금장치(DRM, 디지털저작권관리솔루션)가 음악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 한다면 헌법상의 자기결정권 침해에 해당된다"
시민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 7월 25일 36명의 피해소비자들과 함께 이동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잠금장치를 걸어 자사 가입자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음악만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녹소연은 소장에서 SK텔레콤에 폐쇄 DRM 사용 중지와 피해소비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SK텔레콤 가입자들은 휴대폰으로 SK텔레콤 음악사이트 '멜론'에서 산 음악만 들을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공감했다. 지난 해 말 "SK텔레콤이 이동통신시장의 지배력을 남용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며 3억3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이에 불복, 공정위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서울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정위가 "효력가처분 신청을 취소하고 당장 시행하라"는 항고장을 냈고 심사중이다.
SK텔레콤과 공정위간 법정공방이 진행되는 와중에 소비자들이 나서게 된 것이다.
이번 소송은 "저작권에 대한 기술적인 보호조치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 국내 첫 소송이다.
작년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아크의 소비자 옴부즈맨 기관들은 애플의 아이튠즈와 마이크로소프트의 MSN의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를 요구했고, 올 들어 미국 한 소비자가 애플이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2일 오전 이번 소송을 주도한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을 만났다.
그는 36명의 SK텔레콤 가입자들과 법무법인 문향 김보라미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소송했다.
전응휘 위원은 지난 해 부터 이통사 폐쇄 DRM이 소비자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며 토론회를 여는 등 관심을 기울여 왔다. 왜 지금 소송하게 된 걸 까.
전 의원은 "공정위 시정명령 이후 SK텔레콤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했지만, 공정위 결정에 가처분을 제기하는 등 문제 해결의 의지가 전혀 없다고 판단하게 됐다. SK텔레콤은 미국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폐쇄 DRM을 쓰지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나 통신위 등에서 기업에 과징금이나 시정명령을 내리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피해입은 소비자에게도 보상해야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녹소연의 생각은 "SKT 폐쇄DRM은 통신회사인 SK텔레콤이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디지털음악서비스 시장의 공정경쟁을 제한했고 이로서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다"는 공정위 심결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전응휘 위원은 "이 문제의 해법은 SK텔레콤이 표준DRM(호환가능한 DRM)을 채택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면서 "SK텔레콤 기술전문가도 녹소연 토론회에서 정통부의 호환모듈인 엑심을 쓰라는 것은 SKT DRM을 버리고 정통부 추천 DRM을 쓰라고 하는 것이라면서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DRM에 대한 그의 해법이 궁금해진다.
전응휘 위원은 이에대해 "저작권은 보호돼야 하며, 소비자들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개선돼야 하지만 저작권의 보호가 반드시 DRM과 같은 기술적 보호조치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저작권법에 따르더라도 기술적 보호조치는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며, 서비스제공자가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수단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DRM은 사적복제까지 제한해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고 시장경쟁을 제한해 산업을 키우지 못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저작권자들의 이익까지 침해할 수 있다"며 "이런 이유로 세계 최대 음반사 중 하나인 EMI는 금년 6월부터 DRM을 적용하지 않은 음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응휘 위원은 독일 음반업체인 낙소스(NAXOS)의 사례도 소개했다. 클래식 음악 매니아인 그는 다른 음반사보다 저렴하게 음반을 파는 낙소스에 관심을 보였다.
"낙소스는 실연자(연주자 등)들의 저작인접권이 소멸된 음악에 대해 음원을 복악해 경쟁사 대비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음반을 팔고 있다. 시장 볼륨을 키워 매출을 더 많이 올리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은 탈중심화와 롱테일, 집단지성으로 대표되는 웹2.0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롱테일은 금융자산이 많은 20% 고객에게 집중하면 나머지 고객들(80%)을 상대했을 때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파레토의 법칙과 다르다. 아마존닷컴이 뛰는 온라인 세계에서는 1년에 단 몇 권밖에 팔리지 않는 책(80%)들의 판매량을 모두 합하면 잘 팔리는 책(20%)의 매상을 추월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음악시장이 디지털 음원시장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시장질서가 요구되고 있다.
여기에 롱테일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을 까. 그렇다면 소비자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DRM을 장착하지 않아도 저작권자들은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소송대리인으로 참가한 김보라미 변호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해법을 찾기 위해 더운 여름 버클리대학 DRM 강의에 참가하고 있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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