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류한준 기자] 더블헤더를 치렀다. 야구가 아닌 배구에서 같은 상대팀끼리 하루에 두 경기를 소화했다. 그리고 이날 만큼은 '그들만이 리그'가 아니었다.
남자프로배구 현대캐피탈과 OK금융그룹은 지난 12일 현대캐피탈의 안방인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2022-23시즌 도드람 V리그 1라운드 경기를 치렀다. 원정팀 OK금융그룹은 이날 홈팀 현대캐피탈에 세트 스코어 3-0으로 이겼다.
그런데 경기 후 양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코트를 떠나지 않았다. 현대캐피탈과 OK금융그룹은 다시 경기를 시작했다. 현대캐피탈 구단이 앞서 예고한대로 '체이서 매치'가 마련됐다.
경기 출전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선수들이 체이서 매치에 나왔다. V리그 남자부는 올 시즌부터 선수단 정원이 기존 19명에서 21명으로 늘었다. 단 경기 출전 엔트리는 14명으로 뒀다.
구단 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출전 엔트리에 들지 못하는 선수는 매번 나온다. 현대캐피탈이 이런 자리를 준비한 이유는 있다. V리그 경기 출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선수들을 위해서다.
이날 체이서 매치에는 관중도 있었다. V리그 본 경기가 끝난 뒤에도 천안 홈 팬들과 소수였지만 원정 팬들까지 약 300여명이 유관순체육관에 남아 체이서 매치를 뛰는 선수들을 응원했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과 석진욱 OK금융그룹 감독은 1세트 초반을 지켜본 뒤 경기장을 떠났다. 두 사령탑이 자리를 비운 이유는 있다. 송병일 현대캐피탈 코치는 "아무래도 감독님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게되면 선수들이 플레이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최 감독도)그런 면을 고려해 나간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송 코치는 박종영 코치와 함께 이날 1~3세트로 진행된 체이서 매치에서 선수들을 이끌었다. 송 코치는 "다음 번에도 이런 자리가 만들어지면 박 코치, 임동규 코치와 함께 돌아가면서 맡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OK금융그룹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석 감독 대신 신선호, 윤여진, 이두언 코치가 체이스 매치를 맡았다.
두팀의 체이서 메치는 V리그에서는 활성화가 안 된 2군 경기의 출발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시즌 대한항공과 정규리그 도중 백업 멤버 위주로 연습 경기를 치렀다. 그 결과 남자부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충북 단양에서 7개팀이 모두 참가한 시범경기도 치렀다.
한국배구연맹(KOVO)도 현대캐피탈의 이런 움직임을 반겼다. 현실적으로 2군 리그 출범에는 제약이 있다. 추가 비용 문제도 따르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 구단마다 가용 엔트리, 선수 인원이 안될 수 도 있다. 여기에 팀 상황상 정규리그 기간 도중 별도 경기를 치르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구단도 있을 수 있어서다.
그래도 KOVO는 4개팀 정도만 정기적으로 체이서 매치와 같은 자리가 지속 운영되면 2군 리그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날 체이서 매치는 누구보다 코트로 나선 선수들이 신이 났다.
응원단의 응원 유도는 없었지만 체육관에 남았던 팬들은 양팀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신인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은 이현승은 체이서 매치를 마친 뒤 "팬들의 응원이 있으니 정말 V리그 본 경기에서 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했다"며 "열심히 준비를 해서 빨리 V리그 데뷔전을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승은 올 시즌 개막 후 아직 정규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있다. OK금융그룹 베테랑 미들 블로커 지태환은 "앞 경기에 뛰고 다시 체이서 매치에서 1~3세트를 다 소화했는데 힘이 좀 들긴 하다"면서도 "팬들이 체육관에 남아 응원을 보내줘 힘이 났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런 경기가 자주 마련됐으면 한다. 내게도 그렇지만 특히 젊은 선수들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태환은 앞선 정규리그 경기에서는 교체로 투입돼 코트로 나섰다. 더블헤더를 소화한 셈이다. 송 코치는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데 실전만 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체이서 매치가 끝난 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끝까지 남아 응원과 격려를 보낸 팬들에게 보답도 했다. 경기 후 스트레칭까지 마무리한 뒤 사이드 코트에서 팬들의 사진 촬영과 사인 요청에 응했다.
V리그 경기와 체이서 매치까지 모두 지켜본 팬 중 한 명인 김아중(천안 봉서중) 학생은 이날 후배들과 함께 유관순체육관을 찾았다. 그는 "이현승의 팬"이라며 "이렇게 코트에서 경기를 뛰는 장면을 보니 정말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팬은 "웜업존에 있는 선수들이 뛰는 걸 보고 싶었는데 만족할 만한 경기였다"며 "주전 선수들도 그렇지만 백업 선수들도 함께 열심히 운동한다. 이런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자리라고 생각하니 나 또한 힘이 난다"고 덧붙였다.
/천안=류한준 기자(hantae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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