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일깨워준 'IT생태계 프리미엄'


[생태계없이 IT 재도약 없다 ③아이폰 쓰나미]

지난 5월 현재 애플의 아이튠스 앱스토어에서 승인된 애플리케이션(앱)의 숫자는 50만 개를 돌파했다. 지난 2008년 7월 앱스토어가 개장한 뒤 채 3년이 안 돼 이뤄낸 폭발적 성장세다.

이달 들어 애플은 앱스토어 다운로드가 150억회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쉴러 애플 부사장은 "앱스토어는 3년 만에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성공한 소트프웨어 마켓플레이스가 됐다"며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이용자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00억 다운을 돌파한 앱스토어가 6개월만에 그 절반인 50억회 다운이 추가된 것이다. 폐쇄형이라는 논란 속에서도 애플의 생태계 잠식이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애플 쓰나미에 초토화되면서 국내 시장에서도 생태계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쓰나미가 훑고 지나가고서야 그 파괴력을 실감하며 모바일 기업들도 생태계를 실감한 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없고 출판사만 있다"

지난 3월25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 15층 대회의실에서 제 1기 상임위원들의 이임식이 거행됐다. 이임사에 나선 송도균 상임위원은 말했다. "'애플은 아리스토텔레스이고 삼성은 출판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올해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월드모바일콩그레스(WMC)를 참관했다. '출판사론'은 이 자리에서 그가 느낀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무데서나 찍어도 책은 나오니까..."라는 송 위원의 말끝은 우리 모바일 생태계의 참담한 현실을 한마디로 말해주고 있었다.

'휴대폰 1위'의 삼성전자마저 실상은 그냥 제품 찍어내는 또하나의 회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단말기 최강' 삼성전자이지만,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절대고민'이나 창의성은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애플과 달리 스마트폰 시대의 기반인 생태계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도 '제품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삼성은 아이폰을 겨냥해 갤럭시S를 출시하면서도 '더 밝은 액정이나 화면크기, 두께'를 홍보의 컨셉트로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스마트폰에 담을 내용, 즉 스마트폰 이용자에게 편익을 줄 수 있는 내용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삼성의 휴대폰은 '음성통화 기계'인 반면 애플 아이폰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반 플랫폼' 역할을 했다. 외형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활용도나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지 차이가 났다.

한 IT 전문가는 "아이팟과 앱스토어 등장 이후 국내에서도 플랫폼 기반의 커뮤니티가 향후 IT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지적을 숱하게 쏟아냈지만 정부나 대기업이나 모두 귀기울이지 않았다"며 "아이폰 쓰나미는 어쩌다 생긴 천재지변이 아니다"고 말했다.

통신사들이 요금폭탄인 무선인터넷 서비스에 안주하고, 휴대폰 제조사들은 '최강'이라는 오만함에 빠져 발생한 '인재'라는 얘기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재출발

아이폰 쓰니미가 가져온 다행스러운 변화는 국내 모바일 업계에서도 '플랫폼-개발자-소비자'를 잇는 생태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SK텔레콤 고위 관계자는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망하게 된 것에 SK텔레콤의 책임이 그 어느 곳보다 크다는 점을 통감했다"며 "중소벤처와 협력해 붕괴된 생태계 복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의 경우 지난 2009년 9월8일 국내 최초로 오픈마켓 T스토어를 오픈했다. 일반인, 개인 개발자, 전문개발업체 등 누구나 자신이 개발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판매하고 구입할 수 있는 개방형 콘텐츠 거래장터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지난 1분기 T스토어의 매출은 38억원. 전분기 대비 121% 성장한 수치라지만 아직은 보잘 것 없다. T스토어는 지난 1분기말 현재 가입자 660만, 다운로드 2억건을 기록했다. 무선인터넷 산업이 무너진 국내 시장을 감안하면, 지금의 성적표가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KT는 차이나모바일, NTT도코모 등 중국과 일본의 1위 사업자들과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3사 가입자들과 개발자들이 손쉽게 오픈마켓에서 앱을 올려 사고팔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을 만든 것이다.

국내 앱 개발자들에게는 해외 진출의 기회를, 고객에게는 아시아의 우수한 모바일 콘텐츠를 접할 기회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KT는 이달초부터 차이나모바일 앱 마켓인 MM에 국내 최초로 숍인숍 형태의 올레마켓을 입점했다. 중국의 6억 스마트폰 이용자들에 국내 개발자들의 앱을 선보일 수 있는 것. 오는 8월에는 일본의 도코모 마켓에도 올레마켓을 입점할 예정이다.

통신 3사는 이르면 오는 8월 한국형 통합 앱스토어(K-WAC, 2.0버전)도 함께 오픈할 전망이다.

모바일 업계의 한 CEO는 "오픈마켓이라고 해서 수익배분 등에서 애플보다 낫다거나 기존 통신사들의 불공정한 관행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면서도 "이제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이라는 큰 파이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튼튼한 생태계를 만드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태계 프리미엄' 확연히 차이

변화가 가져다줄 기대감을 자극하는 일들도 생기고 있다. 지난 4월 모바일 게임회사 게임빌의 신작 게임 '에어팽귄(Air Penguin)'이 미국 아이폰 앱스토어 신작 게임 부문에서 깜짝 1위에 올랐다. 글로벌 빅히트작 '앵그리버드'를 제치고 앱스토어 이용자들을 파고든 것이다.

유료게임인 에어팽귄은 중력가속 센서를 통한 아이폰의 '틸트' 기능을 활용한 게임으로, 남극에서 주인공 펭귄이 얼음을 점프하며 스테이지를 클리어 해 나가는 것을 스토리로 하고 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6월에는 바닐라브리즈의 신작 '젤라또 매니아'가 미국 앱스토어에서 4위에 랭크되며 주목받았다. 이 게임은 컵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하는 일종의 퍼즐게임. 각종 재료와 도구를 조합해 주어진 젤라또를 보다 빠르게 만드는 내용이다.

업계에 따르면 에어팽귄이나 젤라또 매니아는 앱스토어 전체 등록된 50만여 개 앱 가운데 앵그리버드, 말하는고양이 등의 상위 0.001% 안에 포함됐다. 생태계가 다시 활성화된다면, 더 많은 국내 게임이나 앱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경쟁력은 디자인이 예쁜 단말기에서만 나온다고 보기 쉽지만 아이튠스와 앱스토어, 개발자, 소비자를 이어주는 튼튼한 생태계가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지난 2분기 애플은 32.8%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9.5%, LG전자는 1.2%에 머물렀다.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영업이익률에서 삼성이 애플의 3분의 1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다름아닌 앱스토어를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 프리미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별취재팀 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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