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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노키아-RIM, 아이폰 한방에 '와르르'


[생태계없이 IT 재도약 없다 ②아이폰 쓰나미]

[안희권기자] "노키아는 지금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다. 대폭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꾀해야 할 때다."

지난 2월초. 노키아의 스티븐 엘롭 최고경영자(CEO)가 사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가 언론에 유출됐다. 엘롭은 그 메모에서 노키아가 처한 상황을 '불타는 플랫폼'이라고 표현했다.

노키아의 그 뒤 행보는 메모 내용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실적 부진으로 인해 감원 태풍이 휘몰아쳤으며, 공들여 키워왔던 독자 플랫폼 심비안도 포기했다. 대신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MS) 플랫폼인 윈도폰을 선택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노키아의 '굴욕'은 계속됐다. 결국 애플에 스마트폰 1위 자리를 넘겨주고 만 것.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노키아 천하는 아이폰 출시 4년 만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통신시장, 게임룰이 바뀌다

아이폰이 몰고 온 가장 큰 변화는 이동통신시장의 '룰'을 바꿨다는 점이다. 그 동안의 관례와 달리 '단말기 업체' 애플은 통신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데이터통신 수입 일부를 가져가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성사시켰다.

애플의 이 같은 요구는 그 동안 단말기 업체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애플은 미국 뿐 아니라 유럽, 동남아, 일본, 한국, 남미 등의 통신사와도 같은 계약을 성사시켰다.

통신사들은 음성통화 수익모델의 한계로 데이터통신사업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었으나 이를 가속화 시킬 촉매제가 없었다. 아이폰이 이를 가능하게 하면서 각국 통신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불리한 계약을 맺어야 했다. 통신시장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던 통신사들의 영향력이 급속하게 약화된 것이다.

애플 아이폰은 통신사업자가 중심 역할을 하던 통신시장을 단말기 업체 중심으로 바꿔놨다. 구글이 안드로이드폰으로 또 다른 축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아이폰 충격' 덕분이었다.

◆피처폰에 매달리던 업체, 줄줄이 낙마

단말기업계와 통신업계는 이런 시장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스마트시장에 진출했던 노키아나 리서치인모션(RIM) 등 기존 업체들은 아이폰의 인기를 '찻잔속의 태풍'으로 평가절하했다. 아이폰이 가져온 시장변화를 등한시 하고 기존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 결과 전통 강호인 노키아는 몰락했고 RIM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노키아는 독자 플랫폼인 심비안을 포기하고 MS 플랫폼인 윈도폰을 자사 휴대폰에 채택하는 극약처방을 통해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의 입지는 자꾸 약화되고 있다. 노키아는 22일 2분기에 총 1천670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매 대수는 애플의 분기 판매량 2천30만대에 360만대나 뒤지는 수치다.

후발 주자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내놓은 지 불과 4년 만에 2위 자리로 내려앉은 것이다.

한 때 스마트폰 시장 선두업체였던 RIM도 추락을 면치 못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토로라, 소니에릭슨도 아이폰의 유탄을 맞았다. 구글이 2008년 10월에 스마트폰용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선보이지 않았다면 이들 역시 노키아와 RIM의 전철을 밟아야 했을 것이다. 이들은 '안드로이드 열풍'에 편승하면서 아이폰 쓰나미를 간신히 피해갈 수 있었다.

이런 판도 변화는 통신 시장의 게임 룰이 바뀐 것과 무관하지 않다. 휴대폰 시장에서 피처폰의 점유율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피처폰은 수익성 측면에서 스마트폰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이 '어닝 서프라이즈' 행진을 계속하는 건 바로 이런 시장 변화를 잘 간파한 때문이다. 지난 2010년 말 애플은 스마트폰시장에서 RIM을 제치고 2위 사업자로 올라섰다. 애플은 6월말 마감된 회계연도 3분기에만 아이폰을 2천30만대 판매했다. 3분기 순익은 125%나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실적은 아이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의 판매 신장에 따른 것이다.

대만의 이름 없는 주문자상표생산(OEM) 전문업체였던 HTC의 부상 역시 눈여겨 볼 대목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HTC는 스마트폰 시장의 가능성을 한 발 앞서 간파한 덕분에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구글과 손잡고 최초로 안드로이드용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안드로이드 전문업체'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애플·HTC 성공, 노키아·RIM 몰락

북미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였던 RIM의 추락과 대만업체 HTC의 급부상은 달라진 통신시장의 현 주소를 한 눈에 보여준다.

RIM은 한때 블랙베리를 앞세워 휴대폰 시장에서 혁신의 대표주자로 꼽혔다. 피처폰이 주류였던 시절 '똑똑한 휴대폰'인 블랙베리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RIM은 아이폰 등장 이후 블랙베리 인기를 이을 후속작을 내놓지 못해 결국 그 자리를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에 내주고 말았다.

RIM의 몰락은 스마트폰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안드로이드 바람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HTC와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이 대거 안드로이드폰을 선보였고 이 제품들이 통신사의 지원을 받아 아이폰 대항마로 공급되면서 블랙베리의 점유율이 크게 떨어졌다.

HTC는 첫 안드로이드폰인 G1을 출시해 큰 이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초의 안드로이드폰 생산업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2010년 HTC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2천만대 수준이다. HTC는 상반기 세계 스마트폰시장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HTC는 올들어 RIM의 시가총액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노키아까지 제쳤다. HTC는 4월초 시가총액 338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336억 달러)를 넘어섰다.

단말기 업계의 판도변화와 함께 칩 업계의 시장 점유율 변화도 이어졌다. ARM칩 업계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에서 인텔을 제치고 선두 업체로 올라섰다. ARM칩은 인텔칩에 비해 전력소모량이 적고 가격이 저렴하다. 삼성전자, 엔비디아 등 ARM칩 업계가 모바일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통신·단말기 업계, 생태계 구축에 '올인'

통신시장은 2008년 애플 앱스토어 등장 이후 '생태계'라는 새로운 시장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 생태계는 단말기와 콘텐츠, 고객을 하나로 연결해 상승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환경이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통해 아이폰과 아이팟터치, 아이패드 등의 단말기 판매를 촉진하고 소프트웨어 거래를 통한 수수료 수입도 올리고 있다. 물론 협력사나 개발자들도 애플의 생태계를 이용해 큰 수익을 내고 있다. 애플 생태계가 기업 상생의 모범사례를 보여주는 셈이다.

앱스토어는 애플 콘텐츠 유통망인 아이튠스 이용을 활성화시켜 애플이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로 변신할 수 있는 토대를 조성해주고 있다. 애플은 최근 이런 생태계를 바탕으로 '아이클라우드'라는 클라우드 청사진을 선보였다. 아이클라우드가 본격화 될 경우 애플의 영향력은 통신시장과 컴퓨팅 시장에서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애플이 앱스토어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세상은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또는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생태계에서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동영상, 음원 등 각종 콘텐츠 제공업체가 주목을 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청 업체로 인식됐던 콘텐츠 업체가 생태계 등장 이후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통신사나 단말기 업계, 케이블방송사 등은 생태계 중요성을 깨닫고 애플 앱스토어와 유사한 소프트웨어 마켓을 공개하고 생태계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안드로이드마켓이 가장 성공적인 모바일 장터로 평가받고 있다. 여러 통신사가 손을 잡고 구축 중인 WAC나 RIM의 블랙베리 앱월드, 노키아의 오비플랫폼 등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서비스업계가 생태계 중요성을 깨닫고 생태계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생태계는 기업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생태계 구축을 등한시 업체는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세계 최대 네트워킹장비업체인 시스코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시스코는 생태계 구축에 소극적으로 나서다가 연관 산업의 시너지 효과 창출에 실패했다. 시스코는 분기 순익이 계속 하락해 비용절감을 위해 1만명을 감원해야 했다.

안희권기자 arg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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