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오만함이 자초한 '아이폰 쓰나미'


[생태계없이 IT 재도약 없다 ①아이폰 쓰나미]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가 문을 꼭꼭 닫은 채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 중심의 시장에 머물러 있는 동안 글로벌 시장에서는 생태계를 기반으로 한 첨단기업들이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앞서 '생태계없이 IT 재도약 없다'의 '무너진 생태계' 편에서 살펴보았듯 국내 시장은 상생의 법칙보다 공멸의 법칙이 지배하는 생태계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애플의 '아이폰'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한국의 IT산업을 강타한 아이폰의 충격을 집중 진단한다. [편집자 주]


#지난 2009년 11월28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 '헬로우 아이폰, 웰컴 투 쇼(Hello iPhone, Welcome to show)'라는 메시지와 함께 국내시장에 아이폰이 상륙했다.

국내에서 생소한 휴대폰 '런칭쇼'와 함께 1호 개통자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꼬박 24시간을 넘게 기다려 1호 개통자가 됐다. 이날 행사는 예약가입자 800명과 그 가족, 연인 등 약 2천여 명이 참석했다.

당시만 해도 KT는 구체적인 아이폰 가입자 목표를 밝히지 않았다. 그만큼 시장예측이 불가능했다.

업계에선 국내에서 아이팟 터치가 70만대 가까이 팔려나갔고, 이 사용자들이 아이폰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어 50만대 가량 판매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배터리 교체와 AS 미흡 등,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가 적어 30만대 전후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더 많았다. 마니아층에 집중된 수요를 이유로 10만대 정도일 것이란 부정적 시각이 오히려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폰'이 상륙한 이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거대한 스마트폰 폭풍에 휩싸였다. 단순 전화기능에 머물렀던 휴대폰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첨단 스마트 도우미로 변하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아이폰은 출시 4개월만에 가입자 50만명을 돌파했다. 9개월이 되자 가입자 100만명을 넘어섰다. 출시 이후 하루 평균 4천명 이상이 가입했다. 1년이 지나자 1천만 명이 스마트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오만함이 자초한 충격

하지만 이같은 스마트폰 태풍을 감지한 곳은 통신사나 휴대폰업체, 언론, 규제당국까지 어느 한 곳 없었다.

오히려 아이폰을 도입하기 직전,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아이폰에 콧방귀를 뀌는 경우가 더 많았다. 통신사와 단말기 업체 모두 스마트폰 시대는 먼 미래의 얘기처럼 생각했다.

아이폰 열풍이 막 시작된 2010년 초반까지도 통신사들은 '아이폰은 일부 마니아층 구매에 그칠 것', '많이 팔려야 30만대'라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경쟁사의 승승장구가 못마땅한 측면도 있었다.

2010년 2월 아이뉴스24가 만난 SK텔레콤 실무자 A씨는 우리 시장에 스마트폰은 필요없다고 자신있게 말했었다.

A씨는 "국내 시장은 통신서비스가 각 회사별로 특화돼 있어 그 통신사에 맞는 기능을 개발하기 위해 오히려 단말기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구도"라면서 "이를 통해 (삼성, LG, 팬택과 같은)우리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세계적인 업체가 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의 경우 노키아 스마트폰 등이 널리 보급돼 있지만 실제 단말기 사양은 보잘것 없고 그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우리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이통사 특화 서비스보다도 수준이 떨어진다"면서 "우리 국민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몰라서 안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윈도모바일 기반 스마트폰이나 노키아 폰 등이 일부 국내에 공급됐지만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한 것도 서비스 측면에서 통신사와 차별화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A씨의 설명이었다.

SK텔레콤만 이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통신 3사는 모두 스마트폰으로 인한 효과를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했다. 그 영향력에 대해서도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결국 KT의 뒤를 따라 아이폰을 출시해야 했다.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2008년부터 아이폰이 기세를 키워갔다. 그러나 단말기 제조사들은 경고등에 귀를 막고 있었다. "아직 스마트폰 시장은 성숙하지 않았다"며 외면했다. 한국 시장에서는 아이폰이 안 통할 것이라는 예측과 시장이 활성화되면 그 때 뛰어들겠다는 전략이었다.

되돌아 보면, 단말 제조사들의 이같은 전략은 '단말시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게임의 법칙'에 따른 전략이다. 피처폰 시장에서 강자로 선 삼성전자나 LG전자는 굳이 열릴 것 같지 않은 스마트폰 시장에 먼저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더욱이 아이폰으로 인해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금방 따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었다.

◆허겁지겁 아이폰 따라가기

결국 뚜껑을 열고서야 아이폰의 영향이 충격적인 쓰나미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설마 하던 것이 눈 앞에 펼쳐졌다.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 HTC 등이 잇달아 스마트폰을 국내시장에 내놓으며 스마트폰 전쟁에 동참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시간을 벌기위해 옴니아 등 준비가 부족한 제품들로 방어벽을 쌓은 끝에 삼성전자는 아이폰 상륙 8개월여가 되는 2010년 6월 갤럭시S를 내놓으며 맞불작전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직원들에게는 "아이폰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짧은 시기에 비슷한 제품을 내놓는 것까지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디테일(세부 이용자환경) 면에서는 한참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아이폰4, 갤럭시S2가 출시되는 등 아이폰이 등장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아 국내 시장은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고 말았다.

아이폰과 갤럭시S가 경쟁구도를 형성하면서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아이폰 등장 1년 만에 스마트폰 가입자가 9배 급증했다. 2009년 말 80만 명에서 2010년 말 722만 명으로 빠른 성장세를 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동전화 가입자 중 스마트폰 가입자 비중은 2009년 1.7%에서 2010년 14%으로 증가했으며 올 초에는 매달 100만 명 이상씩 증가해 약 20%에 이르는 수준이다. 스마트폰 판매비중은 업계 추산 60%를 넘겨 세계평균 22%를 능가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로아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 누적기준으로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는 2천200만~2천500만명으로, 보급률이 50%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이미 SK텔레콤이 1천만, KT가 800만, LG유플러스가 350만명의 가입자 유치 목표를 내세워 총 합계만 2천150만명에 이른다. 이는 오는 2012년에야 전세계 스마트폰 보급률이 50%에 달하는 시점보다 우리나라가 1년 빠른 속도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스마트폰 1천만 시대 모바일 비즈니스 빅뱅의 서막'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스마트폰 가입자 1천만이 실현되면서 모바일 비즈니스 빅뱅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향후 3~4년의 변화가 지난 20년간 IT환경의 변화를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업계는 단말 중심의 외형적 모양새는 힘겹지만 스마트폰 경쟁구도에 따라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아이폰 쓰나미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단말기가 아니라 아이폰과 아이튠스, 앱스토어를 잇는 커뮤니티, 즉 생태계에서 생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폐쇄 장벽을 치고 있었습니다. 개방과 공유의 힘이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내 서비스, 내 기술만 움켜쥐고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시장 패러다임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정만원 前 SK텔레콤 사장은 아이폰 상륙 6개월 뒤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별취재팀 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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