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프랑스 마크롱 정부가 쑥대밭처럼 할퀴어지고 있다. 재정난에 시달리며 펴온 정책이 학생 노동자 시민으로부터 반발을 사고, 이에 따른 시위가 폭력을 동반하며 격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권의 날선 공격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연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집권 말기에 최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학생들 불만이 전국 폭력 사태로 번져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시위에는 경찰 추산 55만명, 주최 측 추산 80만명이 참가했다.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파리와 리옹, 마르세유 등 주요 도시에서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했다.
상점 약탈과 차량 방화가 잇따랐고 중부 리모주에서는 시청 건물이 불탔다. 주말 동안 약 2400명이 체포, 상점 3000곳 이상이 약탈당하거나 파손됐다.
이번 사태는 지난달 교사 부족과 낡은 학교시설에 반발한 고등학생 시위에서 시작됐다. 이후 고물가와 연료비 상승에 불만을 품은 시민, 노동조합 등이 가세하면서 전국적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폭력 행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엄정 대응을 예고했다. 정부도 일부 지역에 야간 통행금지를 도입했지만 시위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근본적인 문제는 재정난이다. 프랑스는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로 지출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크롱 정부는 2018년 '노란조끼' 시위 당시 약 110억유로를 투입해 민심을 달랬지만 이번에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 정부가 430억유로 규모 지출 삭감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시위대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정 긴축이 민심을 자극하고, 시위가 정치·경제 불안을 키우는 악순환에 빠진 셈이다.
빚더미에 긴축 고수⋯국채금리 급등·EU 제재 부담
지난 1일 발표된 내년 예산안에는 연금 인상 제한과 공무원 임금 동결, 의료비 지출 축소 등이 포함됐다. 기존 조치까지 합친 재정 개선 목표는 540억유로다. 교육·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정부의 긴축 정책이 정면으로 맞서는 상황이다.

정부가 긴축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재정 상황이 있다. 올해 2분기 프랑스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19%에 달했다. 올해 재정적자도 GDP 대비 5.4%로 예상된다. 정부는 적자 비율을 내년 5.0%, 2029년에는 유럽연합(EU) 재정준칙에 따라 3%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국채금리 상승은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프랑스 재무당국에 따르면 국가채무 이자 등 상환 비용은 올해 626억유로에서 내년 729억유로로 늘어날 전망이다. 10년물 국채금리는 연 4.93%까지 치솟은 상태다.
EU 제재도 부담이다. 프랑스는 이미 과도한 재정적자 시정절차를 적용받고 있다. 권고된 개선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6개월마다 GDP 대비 최대 0.05%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정부가 시위대 요구에 맞춰 재정지출을 늘리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해 GDP 약 3조유로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 차례 최대 15억유로, 연간 약 30억유로에 달한다. 다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EU 별도 제재 절차를 거쳐야 과징금이 부과되는 구조다.
대선 앞두고 극우 공세⋯좌파·중도까지 마크롱 압박
이번 사태는 내년 4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임 제한으로 출마할 수 없고, 2024년 조기 총선 이후 집권 세력은 의회 주도권마저 잃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극우정당 국민연합(RN) 소속 마린 르펜 의원이 치안 불안을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르펜은 마크롱 정부가 통제력을 잃었다고 비판하며 질서 회복을 강조했다.
르펜은 이미 대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현지 여론조사 업체 톨루나 해리스 인터랙티브(Toluna Harris Interactive)가 지난 5~8일 유권자 2004명을 조사한 결과, 르펜은 35~37% 지지율을 기록했다. 다만 대규모 폭력 사태 이전 조사여서 이번 시위가 지지율에 미친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다.
좌파 진영도 공세에 나섰다.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진 책임을 정부에 돌리고 있다. 급진좌파 정당 LFI 지도자 장뤼크 멜랑숑 의원은 파리 시위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멜랑숑 의원은 "파리에서 잘못된 경찰 지휘가 혼란을 불러왔다"며 정부의 시위 진압 방식을 문제 삼았다.
특히 14세 소년 에당(가명)이 얼굴에 최루탄을 맞고 중상을 입는 등 과징 진압이 시위대를 격분시켜 폭력을 키웠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과 같은 진영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마크롱 정부 초대 총리를 지낸 에두아르 필리프 전 총리까지 가세했다.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을 문제 삼으며 마크롱 대통령과 거리 두기에 나섰다. 과거 정치적 동맹이었던 필리프마저 대선을 앞두고 차별화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필리프 전 총리는 "수백만 프랑스 국민처럼 질서 회복과 국가 권위를 되찾기 위한 결정과 조치를 기대했다"며 "프랑스에는 국정을 이끌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