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꾼 공식…"메모리 공급난, 몇 분기로 안 끝난다"

AI가 바꾼 공식…"메모리 공급난, 몇 분기로 안 끝난다"

댄 김 테크인사이츠 CSO “美도 공급부족 심각성 과소평가”

[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시작된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AI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고 생산량을 늘리는 데는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AI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일반 D램보다 더 많은 웨이퍼를 사용하는 점도 공급을 빠듯하게 만들고 있다.

댄 킴 테크인사이츠 CSO가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AI·반도체 메가 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산업 세미나'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은 기자]

댄 김 테크인사이츠 최고전략책임자(CSO)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도체 세미나에서 "미국에서도 현재 공급 부족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몇 분기 정도 지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우리는 훨씬 길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 CSO는 공급 부족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빠르게 늘어나는 AI 수요와 3년 이상 걸리는 반도체 공장 증설, HBM의 높은 웨이퍼 사용량이다.

그는 "메모리 업체들이 장기적인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는데도 공급 부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HBM 많이 만들수록 일반 D램도 '빠듯'

과거 메모리 시장은 가격이 오르면 생산을 늘리고, 공급이 많아지면 다시 가격이 떨어지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했다. 김 CSO는 AI가 이런 흐름을 바꾸고 있다고 봤다.

AI 사업자들이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서 메모리 수요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HBM 확대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쌓아 만드는 고성능 메모리로, 같은 양을 생산할 때 일반 D램보다 더 많은 웨이퍼와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다.

최정동 테크인사이츠 수석부사장은 "HBM은 일반 D램보다 다이 면적이 크고 적층과 테스트 과정도 필요해 같은 양을 공급하는 데 훨씬 많은 웨이퍼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HBM을 많이 만들수록 DDR·LPDDR 등 일반 D램을 생산할 여력이 줄어드는 셈이다.

그는 HBM을 "새로운 매출원이면서 동시에 전체 D램 공급과 가격 구조를 재편하는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AI가 필요로 하는 메모리도 HBM에 그치지 않는다. AI가 학습에서 추론, AI 에이전트, 자율주행 등으로 확산하면서 서버용 D램과 데이터를 저장하는 낸드 수요도 함께 늘고 있다.

최 부사장은 "AI가 일시적인 수요 항목이 아니라 메모리 산업의 제품 구성과 투자 우선순위를 구조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AI·반도체 메가 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산업 세미나'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이노텍, 삼성전기 등 주요 그룹 임원들도 참석했다. [사진=박지은 기자]

수요의 중심은 미국이다. 김 CSO는 오는 2030년 전체 D램 수요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HBM 수요의 97%도 미국에서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빅테크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급 확대를 위한 국내 투자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서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지역에 메모리 팹 4기를 짓는 데 총 8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부는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을 지원하고 산업단지 조성 기간도 5년 이내로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세미나를 공동 주최한 정진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할) 서남권 반도체 팹이 4기로 시작해서 9기까지 늘어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中은 범용 메모리 증설…韓 고부가 전환 압박

최정동 테크인사이츠 수석 부사장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AI·반도체 메가 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산업 세미나'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은 기자]

공급 부족이 이어지는 사이 중국 업체들은 범용 D램과 낸드 생산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김 CSO에 따르면 중국 내 D램 시장에서 창신메모리(CXMT)의 점유율은 약 30%, 낸드에서는 양쯔메모리(YMTC)가 40%에 육박한다. 반면 북미에서는 두 회사의 점유율이 사실상 없다.

김 CSO는 "과거 이런 사례가 전혀 없었다"며 "시장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굉장히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CXMT와 YMTC는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미국 고객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증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변수다. 최 부사장은 CXMT가 늘리는 생산능력이 당분간 HBM보다 DDR·LPDDR 등 범용 D램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중국 물량이 늘면 범용 제품의 가격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있다.

최 부사장은 "중국의 점유율 확대를 단순한 물량 증가가 아니라 한국 기업의 제품 포트폴리오 전환을 촉진하는 변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정된 생산능력을 HBM과 고부가 제품에 더 많이 배분할 필요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