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양길모 기자]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약 30년 만에 다시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공개한 '김옥숙 메모'가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의혹을 다시 여는 단서가 됐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최근 노 관장 측에 참고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출석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노 관장을 상대로 김옥숙 여사의 자필 메모를 확보해 법원에 제출한 경위와 메모에 적힌 자금의 성격,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 형성 및 관리 과정 등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노 관장은 현재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이다. 검찰이 노 관장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메모와 관련 자금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진술을 듣는 단계다.
이번 수사의 출발점은 노 관장과 최 회장의 이혼소송이다. 노 관장 측은 2024년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노 전 대통령이 1991년께 비자금 300억원을 사돈인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에게 전달했고, 해당 자금이 선경그룹의 경영활동에 사용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SK그룹 성장 과정에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자금이 기여한 만큼 재산 분할 과정에서도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노 관장 측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김 여사가 작성해 보관해왔다는 메모와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의 사진 일부 등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른바 '김옥숙 메모'에는 '선경 300억원'을 비롯해 '맡긴 돈 667억원+90억원' 등 모두 904억원 규모의 자금 내역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노 관장 측은 이 가운데 300억원이 최 선대회장에게 전달돼 태평양증권 인수 등 선경그룹의 경영활동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SK 측은 해당 자금의 전달 및 회사 성장에 사용됐다는 주장을 부인해왔다.
이혼소송에서 SK그룹의 재산 형성에 대한 노 전 대통령 일가의 기여를 설명하기 위해 공개한 자료가 결과적으로 친정 일가의 비자금 의혹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셈이다.

메모가 공개된 이후 5·18기념재단과 시민단체 등은 노 전 대통령 일가가 비자금을 은닉하고 세금을 포탈했다는 취지의 고발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고발장을 접수한 뒤 메모에 적힌 자금과 노 전 대통령 일가가 관리해온 재산의 흐름을 추적해왔다.
지난달 21일에는 김 여사가 거주하는 서울 연희동 사저와 노재헌 주중한국대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문화재단, 노태우센터 등을 압수수색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및 관리 과정에서 차명계좌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직 비서관들의 주거지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회계·금융자료와 관련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메모에 적힌 자금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확인하고 있다. 자금이 존재했다면 어디에서 조성돼 누구에게 전달됐고 이후 어떤 방식으로 관리됐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김 여사가 2000년대 이후 차명으로 납부한 것으로 알려진 보험료와 동아시아문화재단·노태우센터 등에 출연한 자금의 출처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발인 측은 김옥숙 메모와 보험료, 재단 출연금 등을 토대로 노 전 대통령 일가가 은닉한 비자금 규모를 1266억원대로 추산했다.

한편 노 관장이 검찰에 출석하면 과거 자금 문제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이후 약 30년 만이다.
노 관장은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 시절인 1990년 세관에 신고하지 않은 20만달러를 미국으로 반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 법원은 1993년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해당 금액을 몰수했다.
당시 미국 수사당국은 이 돈이 한국에서 조성돼 스위스 은행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 관장은 이후 국내 조사에서 자금의 출처를 결혼식 축의금과 노 전 대통령에게 받은 생활비 등으로 설명하고, 스위스 계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1996년에는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이 노 관장에게 약 36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와 목걸이를 건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군 인사 관련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노 관장 측은 물건을 받은 지 이틀 만에 돌려줬다고 해명했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내사 후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과거 20만달러 반입 사건이나 다이아몬드 제공 의혹과 현재 검찰이 추적하는 자금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번 조사는 과거 사건이 아니라 노 관장이 이혼소송에서 공개한 김옥숙 메모와 재단 출연금 등을 토대로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자금이 어떻게 조성·관리됐는지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검찰은 노 관장의 진술과 압수수색 자료, 금융거래 내역 등을 비교해 메모에 적힌 자금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나 가족·관련 재단의 자금과 연결되는지를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노 관장이 공개한 메모가 비자금 의혹의 '판도라 상자'가 될지는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가려질 전망이다.
/양길모 기자(dios102@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