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란 기자] 1945년 인천에서 트럭 한 대로 시작한 한진의 수송사업이 81년 만에 국내 양대 대형항공사를 아우르는 통합 항공사로 커진다.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와 고(故) 조양호 선대회장이 키워온 대한항공은 조원태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2020년 11월 첫발을 뗀 통합 작업이 약 6년 만에 사실상 모든 절차를 마치면서 3대에 걸쳐 이어진 '수송보국' 경영도 결실을 앞두게 됐다.
특히 조원태 회장은 취임 직후 코로나19라는 항공업계 초유의 위기를 맞았지만 여객기를 화물 수송에 투입하는 전략으로 실적을 방어했다. 이어 약 6년에 걸친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을 주도하고 통합 이후를 대비한 대규모 기단 투자까지 추진하며 그룹의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마일리지 통합방안을 최종 승인하면서 양사의 통합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오는 12월16일 합병기일을 거쳐 다음 날인 17일 '통합 대한항공'으로 공식 출범한다.
트럭 한 대로 시작한 '수송보국'…육·해·공으로 확장
대한항공의 뿌리에는 '수송으로 국가에 보답한다'는 수송보국 정신이 있다. 조중훈 창업주는 1945년 인천에서 트럭 한 대로 한진그룹의 모태인 운수업체 한진상사를 세웠다. '한민족의 전진'이라는 의미를 담아 회사 이름을 한진으로 정했다.

조 창업주는 신용과 약속을 경영의 핵심 가치로 삼아 사업 기반을 빠르게 넓혔다. 1966년 베트남에 진출해 해외 수송 경험과 사업 기반을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육상 운송을 넘어 항공과 해운으로 영역을 넓혔다.
조 창업주는 1969년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1977년에는 한진해운을 설립하고 1988년 대한선주를 합병하며 육상과 해상, 항공을 아우르는 종합 수송·물류그룹의 틀을 갖췄다.
당시 대한항공공사 인수는 수익성만 놓고 보면 부담이 큰 결정이었다. 그러나 조 창업주는 항공사업을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수행해야 할 소명으로 봤다. 1973년 오일쇼크 속에서도 서울∼파리 노선을 개설하고 미주 노선을 확대한 것도 국제 항공망을 선점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조양호,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키우다
조중훈 창업주의 뒤를 이은 조양호 선대회장은 대한항공의 글로벌 확장을 이끌었다. 조 선대회장이 대한항공 사장에 취임한 1999년 113대였던 항공기 수는 이후 166대로 늘었다. 취항지는 27개국 74개 도시에서 44개국 124개 도시로 확대됐다.

2000년에는 델타항공과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와 함께 글로벌 항공동맹체 '스카이팀'을 창설했다. 아시아 항공사 가운데 대한항공이 주도적으로 글로벌 항공동맹 구축에 참여하면서 국제 항공시장 내 입지도 커졌다.
조 선대회장은 외형 확대와 함께 안전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보는 데도 힘을 쏟았다. 해외 항공 전문가를 영입하고 조종·정비·운항관리 체계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개선하면서 대한항공의 체질을 바꾸는 작업을 추진했다.
대형 항공기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다. A380과 보잉 747-8 등 차세대 대형기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장거리 노선 경쟁력을 높였다. 스카이팀 창설과 글로벌 노선 확대, 신형 기재 도입은 대한항공이 아시아 지역 항공사에서 세계 시장의 주요 항공사로 도약하는 기반이 됐다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조원태의 '화물 승부수'
수송보국 경영은 2019년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은 조원태 회장에게 넘어갔다.
조 회장이 취임 직후 마주한 첫 번째 시험대는 코로나19였다. 국제선 여객 수요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세계 항공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인력 감축에 나섰다.

조 회장은 운항을 멈춘 여객기의 하부 화물칸과 객실을 화물 수송에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여객기 좌석 위에 화물을 싣는 데 이어 국내 항공사 최초로 보잉 777-300ER 여객기의 좌석을 떼어내 화물 전용기로 개조했다.
화물기 가동률도 높였다. 그 결과 국제선 여객 수송량이 전년 동기보다 92.2% 줄었던 2020년 2분기에도 대한항공은 148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했다. 코로나19로 주요 글로벌 항공사들이 적자를 내던 상황에서 거둔 성과였다.
위기 대응은 고용을 유지하면서 회사를 흑자로 이끌었다는 점에서도 평가받았다. 대한항공은 2021년 글로벌 항공 전문매체 에어트랜스포트월드(ATW)의 '올해의 항공사', 2022년 '올해의 화물항공사'로 선정됐다. 조 회장도 2023년 '올해의 항공업계 리더'에 이름을 올렸다.
14개 경쟁당국 설득…아시아나 인수 6년 승부
조 회장은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이던 2020년 정부의 항공산업 구조조정 기조에 맞춰 경영난을 겪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했다.
조 회장은 당시 이사회 직후 "수송보국이라는 대한항공의 창업이념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2020년 11월17일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대한항공은 한국과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14개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조 회장은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수시로 해외 출장길에 올라 각국 경쟁당국과 이해관계자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목적이 독점 강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생존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였다. 2021년 1월 신고를 시작한 14개 경쟁당국의 심사는 약 4년 만에 모두 마무리됐다.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와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등 유럽 4개 노선의 슬롯과 운수권을 경쟁사에 넘겼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도 매각했다.
핵심 노선과 화물사업을 일부 내주는 조건을 수용하면서도 인수 자체를 완주한 것은 단기적인 손익보다 통합 항공사의 장기 경쟁력을 우선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이후 2024년 12월 아시아나항공 지분 63.88%를 인수해 자회사 편입을 마쳤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5월 각각 이사회를 열어 합병계약 체결을 승인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을 최종 의결했다.

합병의 마지막 과제는 양사의 마일리지 통합이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6월 공정위에 첫 통합방안을 제출했다. 이후 약 15개월 동안 보너스 좌석 공급과 전환 비율 등에 대한 수정·보완을 거쳐 지난 14일 최종 승인을 받았다.
통합안에 따르면 합병 이후 새로 적립하는 마일리지는 대한항공의 '스카이패스'로 일원화된다. 기존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는 합병 이후에도 10년간 별도로 유지하기로 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전환하면 항공편 탑승으로 적립한 마일리지는 1대1 비율이 적용되며, 아시아나항공 우수회원 등급도 대한항공 체계로 이관된다.
공정위는 마일리지 사용량과 보너스 좌석 공급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향후 10년간 이행감독위원회를 통해 점검할 계획이다.
보잉 103대 '통 큰 투자'…통합 이후까지 준비
대한항공은 오는 11월2일부터 12월3일까지 통합 항공사 출범 이후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예약과 항공권 정보를 자사 시스템으로 순차적으로 옮길 예정이다.
기존 아시아나항공 편명인 'OZ'도 대한항공의 'KE'로 변경된다. 대상 고객에게는 알림톡과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을 통해 변경 내용을 개별 안내한다.

조 회장은 통합 항공사 출범 이후 늘어날 수송 수요와 노후 기재 교체에도 대비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보잉 항공기 103대를 362억달러에 도입하고, 예비 엔진 구매와 정비 서비스에 86억달러를 투입하는 계약을 확정했다. 전체 규모는 448억달러에 달한다.
도입 대상은 장거리 여객기 777-9와 787-10, 중·단거리용 737-10, 화물기 777-8F 등이다. 통합 이후의 노선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노후 항공기를 연료 효율이 높은 신형 기재로 바꿔 운항 효율과 탄소 감축 효과를 함께 노린 투자다.
코로나19 당시에는 여객기를 화물기로 돌려 당장의 위기를 넘었고, 이후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산업 재편을 주도했다.
여기에 차세대 항공기 확보로 통합 이후까지 준비하면서 조 회장의 경영은 '위기 대응'에서 '성장 투자'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약 6년에 걸친 기업결합 심사와 사업 매각, 합병 승인, 마일리지 통합 절차가 끝나면서 조원태 회장은 그룹의 숙원이었던 통합 항공사 출범을 눈앞에 두게 됐다.
조중훈 창업주가 국가 기간 수송망의 기반을 만들고 조양호 선대회장이 대한항공을 세계 무대로 확장했다면, 조원태 회장은 코로나19 위기를 돌파하고 국내 양대 대형항공사의 통합을 성사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트럭 한 대에서 시작된 한진의 수송사업이 3대에 걸친 경영을 거쳐 통합 대한항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통합 이후 조직과 노선, 서비스 체계를 안정시키고 합병 시너지를 실제 성과로 증명하는 일은 이제 조 회장에게 남은 다음 과제가 됐다.
/최란 기자(ra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