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임우섭 기자] 금융권에서 '실적이 좋으면 연임한다'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KB금융이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끈 양종희 회장 대신 세대교체를 택한 데 이어 금융당국도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를 정조준하면서다. 실적뿐 아니라 재임기간과 조직 쇄신, 건전성까지 인사의 주요 잣대로 떠오르면서 오는 12월 나란히 임기가 끝나는 4대 은행장의 연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의 임기는 오는 12월 31일 일제히 끝난다.
은행장은 통상 첫 임기 2년을 마친 후 1년씩 연장하는 '2+1년' 방식이 일반적이다. 정 행장은 2023년 취임해 2024년 말 이례적으로 2년의 추가 임기를 부여받았다. 나머지 세 행장은 지난해 취임해 올해 말 첫 2년 임기를 마친다.
그러나 최근 KB금융을 계기로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선 분위기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양 회장 체제에서 KB금융은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갔지만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이재근 부문장(차기 회장 후보자)을 선택했다.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를 이유로 들었다. 최대 실적과 주주환원을 이뤄 낸 현직 CEO도 연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선례가 만들어진 셈이다.
상반기 순이익은 신한은행이 2조4585억원으로 4대 은행 중 가장 많았다. 국민은행 2조2254억원, 하나은행 2조1211억원이 뒤를 이었다. 우리은행은 1조373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9% 감소했다.
신한은행 정 행장은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나 재임기간이 걸림돌이다. 연말이면 재임 4년을 채워 다시 선임될 경우 사실상 2연임(세 번째 임기)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세대교체 흐름을 고려해 정 행장이 신한금융지주 부문장으로 이동하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교체 시에는 최혁재·이봉재·강대오 부행장 등이 후임 후보로 꼽힌다.
하나은행의 이 행장도 실적만 보면 연임 명분이 충분하다. 하나은행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최대 실적을 냈다.
다만 기업대출 확대 과정에서 고정이하여신 등 일부 건전성 지표가 악화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이 은행장을 맡았던 이후 지성규·박성호·이승열 전 행장이 모두 첫 임기 뒤 물러난 인사 흐름도 변수다. 교체할 경우 김미숙 부행장과 성영수 하나카드 대표, 남궁원 하나생명 대표 등이 차기 은행장으로 거론된다.
국민은행 이 행장과 우리은행 정 행장은 각각 다른 시험대 위에 섰다.
이 행장은 올해 KB금융 회장 후보군에도 포함될 만큼 그룹 내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다만 이재근 체제 출범 후 첫 계열사 CEO 인사라는 변수가 생겼다. 나이도 이 후보자보다 두살 많다.
새 회장이 세대교체 범위를 계열사까지 넓히면 정문철 KB라이프생명 대표와 김재관 KB국민카드 대표, 은행 내 차세대 부행장들이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
정 행장은 자본 체질을 개선했지만 수익성 부문에서는 과제를 남겼다. 우리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2024년 말 13.1%에서 올해 6월 말 15.3%로 높아졌지만 상반기 순이익은 11.9% 줄었다. 고정이하여신 비율도 상승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에 따른 경영 연속성은 긍정적인 요인이지만 실적과 건전성까지 감안하면 정 행장의 연임을 예단하기 어렵다. 정 행장 경쟁 상대로는 이정수 우리금융 전략경영총괄 사장과 이해광 우리은행 부행장 등이 차기 후보로 거론된다.
금융감독당국의 시선도 은행권 연말 인사를 향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임원회의에서 대부분 금융지주의 자회사 CEO 승계절차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추상적인 자격요건과 형식적인 상시후보군 관리, 불투명한 후보 압축·검증 등을 문제로 들며 후보 선정부터 검증·평가·기록까지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금감원도 실제 승계절차에 대한 점검을 강화할 방침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KB금융의 이번 선택은 당국 입장에서도 좋은 선례가 된 만큼 다른 금융지주에도 비슷한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며 "좋은 실적이 CEO 한 사람의 성과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세대교체와 조직 쇄신까지 함께 보는 분위기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EO가 장기간 자리를 지키면서 조직이 경직되는 데 대한 당국의 우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기업의 경영진 인선인 만큼 이 과정이 관치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우섭 기자(coldplay@inews24.com)